다시금 눈시울이 붉어진다. 지난 5일 슬프게 봄비가 내린던 그날 세월호 유가족과 시민들은 광화문 광장에 모였다.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의 전면폐지를 주장하면서 말이다. 유가족들과 시민들은 “잊지 않겠습니다”며 얼싸안고 통곡을 했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1년이 다 되어 가는데 유가족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일은 아직도 요원한 게 현실이다.
지난달 해양수산부는 ‘4·16세월호참사 진상 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 이른바 세월호 특별법의 시행령을 입법예고했다. 그러나 이 시행령은 3무(三無) 시행령이다. 진상규명 의지도 없고, 책임을 질 의지도 없고, 안전사회를 위한 대안 마련의 의지도 없는 껍데기뿐이다.
세월호 특별법은 지난해 온 국민의 염원 속에 숱한 산고를 거쳐 만들어졌다. 특별조사위원회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부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지만 결국은 조사권만 부여하는 것으로 타협됐다. 아쉽지만 국민들은 받아들였다. 무엇보다도 정부를 믿었기 때문이다. 위원회가 독립성을 부여받고 철저히 조사를 한다면 진상규명과 안전사회를 위한 대책마련이라는 열매를 아직도 맺을 수 있다고 생각해서다. 그리고 이제나 저제나 하며 특별조사위원회가 꾸려져서 진상규명 작업에 나서기를 고대했다.
세월호 특별법은 “세월호가 침몰함에 따른 참사의 발생원인·수습과정·후속조치 등의 사실관계와 책임소재의 진상을 밝히고 피해자를 지원하며, 재해·재난의 예방과 대응방안을 수립하여 안전한 사회를 건설·확립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특별조사위원회의 독립성도 보장됐다. 특별법의 내용에 따라 특별조사위원회의 활동 등을 구체적으로 규정해야 할 하위법령인 시행령은 이 같은 모법(母法)에 충실해야 함은 당연하다.
그러나 이런 믿음을 정부는 철처히 배신했다. 진상규명의 의지가 없다는 것은 조사대상 업무를 임의적으로 축소한 데서 확인할 수 있다. 시행령 상 조사1과의 업무는 “4·16세월호참사의 원인 규명에 관한 정부조사 결과의 분석 및 조사”로 규정되어 있다. 성역없는 진상규명조사가 아니라 정부조사결과의 분석으로 한정될 여지가 있는 조항이다.
책임지겠다는 의지도 읽히지 않는다. 실무를 총책임질 기획조정실장과 기획총무담당관은 정부가 파견하는 고위공무원 몫이다. 기획조정실장이 실무 총 책임을 맡고 기획총괄담당관은 그의 지휘를 받는다. 담당관은 위원회 업무의 종합·조정, 진상규명에 관한 종합 기획 및 조정, 안전한 사회 건설을 위한 종합대책 수립 관련 기획 및 조정, 피해자 지원대책의 점검에 관한 기획 및 조정 등 위원회의 모든 업무를 총괄한다. 이석태 특별조사위원장이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꼴”이라고 한 이유다. 위원회의 독립성을 보장한다는 특별법의 규정은 시행령에 의해 사실상 사문화되었다. 진상규명에 따라 책임을 져야 할 정부가 책임 회피를 위한 꼼수를 부렸다고 볼 수밖에 없다.
세월호 특별법은 비극적 참사의 원인과 책임소재를 규명하고 다시는 이러한 불행이 없도록 안전사회 마련을 위한 대책 수립도 그 목적으로 한다. 유가족들도 자녀들의 희생이 더 안전하고 상식이 통하는 사회로 나아가는 밑거름이 되길 바란다. 그러나 안전사회에 대한 의지마저도 실종됐다. 시행령은 일반적인 안전사회 대책이 아니라 세월호 참사의 원인을 제공한 법령, 제도, 정책, 관행 등 해양사고에 대한 대책 수립만으로 그 역할을 제한할 가능성이 있는 조항을 두고 있다. 정부의 시행령을 두고 폐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은 것도 이래서다.
아직 늦지는 않았다. 진상규명과 안전사회 수립의 희망이 더 깊은 심연으로 가라앉기 전에 제대로 된 법안 마련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