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대선자금 수사와 잡초 제거론

[언론 다시보기] 문소영 서울신문 논설위원

‘도시농부’라며 집근처에 텃밭을 마련해 농사를 지은 지가 올해로 6년째다. 농사의 ABC를 알아가고 있다. 5월 중순부터 잡초를 제압하지 않으면 농작물보다 우월한 속도로 자란다. 출장으로 2주 연속 주말에 들여다보지 못하면 3주째의 텃밭은 잡초가 무성하다. 


공부나 세상살이에 요령이 있듯이 잡초제거에도 요령이 있다. 일단 비가 온 다음날에 잡초를 제거하는 것이 좋다. 특히 대형 잡초는 뿌리를 깊게 내렸기 때문에 땅이 단단하게 굳어 있을 때 두 손으로 잡아 뽑으면 어깨에 근육통이 생길 뿐 ‘근원’인 뿌리까지 제거하기가 어렵다. 비 온 뒤에는 땅이 말랑말랑하기 때문에 쉽게 뿌리까지 뽑아낼 수 있다. 물론 이런 날은 장화나 옷, 바지 등에 흙이 많이 묻거나 튀기 때문에 농부 자신이 더러워진다. 


또 잡초 제거에도 순서가 있다. 밭 한구석부터 이 잡듯이 샅샅이 잡초를 훑기 시작하면 제풀에 지쳐 ‘잡초와의 전쟁’을 포기하게 된다. 우선 대형 잡초를 시작으로 중간 잡초, 작은 잡초 순으로 제거해야 한다. 특히 시간이 부족하고 일손이 달릴 때는 무조건 햇빛을 독차지하며 우뚝 자란 잡초를 대강이라도 뽑아내야 한다. 아니면 낫으로 쳐내야 한다. 농작물보다 먼저 자란 잡초를 없애 햇빛의 길을 터줘야 상추, 아욱, 고추, 가지, 토마토 등이 건강하게 자란다. 또 대형 잡초를 제거해야만 그 옆에서 숨어서 자라는 중간 잡초들의 존재가 선명하다. 대형 잡초를 제거하지 않으면 중간 잡초는 마치 ‘선한’ 농작물처럼 농부의 눈을 속일 수 있다. 중간 잡초를 제거하고 나서 호미질을 해야 수월하다. 또는 태평농법이라고 낮게 깔려 자라는 잡초를 남겨두기도 한다. 그래야 농작물이 이들 잡초와 물과 영양물을 먹기 위해 경쟁하는 가운데 더 맛좋은 농산물이 된다는 것이다. 


한국의 정치와 사회는 소설보다 더 소설 같다. 지난해 4월 ‘세월호 참사’에 이어 올 4월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2012년 새누리당의 불법대선자금을 제기하는 ‘성완종 리스트’를 남기고 자살해 소설 같은 세상이 또다시 펼쳐졌다. ‘성완종 리스트’의 8명 중 이완구 국무총리는 낙마해 검찰조사를, 홍준표 경남도지사는 2011년 한나라당 당대표 경선자금으로 검찰조사를 받고 있다. 나머지 6명 중 성 전 회장은 홍문종 새누리당 의원에게 2억원을 2012년에 줬는데 회계처리 되지 않았다는 육성녹음까지 남겼다. 홍 의원은 박근혜 대선 후보 캠프 조직총괄본부장이었다. ‘3억원 유정복 인천시장’은 대선캠프의 직능총괄본부장이었고, ‘2억원 서병수 부산시장’은 당시 새누리당 살림을 맡아보던 사무총장이자 대선캠프 당무조정본부장이었다. 박근혜 정부의 1대 허태열(7억원), 2대 김기춘(10만달러), 3대 이병기 등 청와대비서실장도 명단에 있다. 


‘친박 인사 7명+홍준표 경남도지사’로 구성된 ‘성완종 리스트’를 두고 박 대통령은 “과거부터 현재까지 완전히 밝혀야 한다”거나 “정치개혁 차원의 수사”라고 ‘지시’했다. 황교안 법무장관은 국회에서 “8명만 조사할 수는 없다”고 한다. 농부가 잡초를 제거할 때도 요령과 법칙과 순서가 있다. 그런데 이미 드러난 부패를 덮어둘 작정이 아니라면 ‘과거도 같이 꺼내야 한다’고 지시해선 안된다. 보자. 이미 ‘성완종 리스트’라는 비가 쏟아졌다. 제거해야 할 대형 잡초도 드러났다. 자신의 손과 옷과 장화를 더럽힐 각오를 하고 대형 잡초를 제거하고, 그 뒤에 숨어 있는 중간 잡초를 제거해야 수순이 아니겠는가. 검찰의 수사 인력이 부족한 상태라면 더욱 그렇다. 


언론은 1면에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을 받아쓰고 의도를 해석하는 데만 골몰해선 안된다. 국민 84%는 여당의 2012년 불법대선자금 의혹을 폭로한 ‘성완종 리스트’가 대체로 사실이라고 믿는다. 그러니 언론은 한 번 물면 놓지 않는 ‘진돗개 정신’으로 불법대선자금 수사가 궤도에 올라 부패청산을 할 수 있도록 책임있는 기사로 압박해야 하지 않겠나. 훌륭한 기자정신을 기대한다.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