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간 속보로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관련 접촉자가 급증하고 있다는 소식이 올라온다. 처음엔 4명이라더니 어느덧 확진 환자와 접촉한 사람의 수가 5배로 증가했다. 재집계 과정에서 수가 증가한 것일 뿐이라는 정부의 발표를 보니, 마치 지난해 4월16일의 ‘단원고 학생 전원구조 오보’를 다시 보는 듯한 느낌이다. 과연 앞으로 메르스에 대한 정부 발표를 사람들이 신뢰할 수 있을까?
상황이 이런데도 경찰은 메르스 루머 유포자를 색출하겠다며 엄포다. 메르스를 잡는 게 아니라 메르스에 대한 ‘루머’를 잡으려 드는 셈이다. 물론 정부 입장에선 자신들의 잘못에 대해 되도록 감추고 싶은 마음일 것이다. 더불어 과도한 불안감은 사회 안정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나 메르스 발병처럼 국민들의 목숨이 걸려 있는 국가적 위기 상황에선 말 그대로 ‘국민의 목숨’을 가장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한다. 루머 유포자를 색출한다고 메르스가 색출되는 게 아니다. 오히려 위기 상황을 적극적으로 알리고 루머 내용 중에 혹시라도 타당한 점이 있는지 살펴 추가 전파를 막는데 활용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그것이 국민의 목숨을 지켜야만 하는 정부의 역할에 보다 일치하는 것이고, 그것이야말로 루머를 줄이는 방책이다.
아니나 다를까, 정부가 ‘루머’라고 지칭한 ‘공기 감염 가능성’을 언급한 최초 유포자가 다름 아닌 정부 산하 기관이란 소식이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기사로 올라온다. 정부 스스로 손발이 맞지 않는 것도 문제지만, 정말 ‘공기 감염 가능성’이 얼마나 되는지에 대해 이 정부가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음을 방증하는 셈이다.
심지어 이 글을 쓰는 2일 현재, 사망자가 2명 발생하고 3차 감염자도 2명이 확인됐다. 그런데도 정부는 중앙안전대책본부 설치를 요구하는 목소리에 신종 인플루엔자의 경우 300만 명이 감염됐을 때 중대본을 설치했다며 아직은 그럴 필요가 없다고 한다. 기사를 보는 내 눈을 의심했다. 좌충우돌, 뒤죽박죽인 방역 체계에 더해 안전 불감증까지. 이 정도면 가히 무정부 상태라고 해도 정부는 할 말이 없을 것이다.
메르스에 대해 어처구니없는 대응을 하는 정부를 보니 문득 북한이 국지적 도발을 일으키는 국가적 위기 상황이 발생한다면 이 정부가 제대로 대처할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든다. 이런 의구심이 드는 이유는 이 정부가 과거 어떤 정부보다 북한의 위협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자신들이 강조하는 북한의 도발에 대해서라면 과연 일사불란한 대응 태세를 갖출 수는 있을까?
혹시 도발 상황 자체에 대한 대응보다 ‘루머 차단’에 골몰하진 않을까? 그래서 전방의 북한군과 싸우는 게 아니라, 후방의 루머 유포자와 싸우지는 않을까? 전투에 온 신경을 써야 할 야전 지휘관들은 정부에 보고서 쓰는데 더 많은 신경을 쓰게 되지는 않을까? 그 과정에서 애꿎은 국군 장병들만 스러져 가는 건 아닐까?
생각이 여기에 미치니 문득 새로 지명된 총리 지명자 황교안씨가 과거 검사 임관식에서 애국가 4절을 완창하지 못한 검사들을 훈계했다는 이야기가 떠오른다. 나라 사랑의 출발은 애국가이고, 따라서 4절까지 부를 줄 알아야 애국심이 있다는 게 훈계의 이유였다. 그러고 보니 이 정부와 참 결이 잘 맞는 인물이란 생각이 든다. 뭐랄까, 요즘 말로 ‘정신 승리’ 정부랄까? 실질적으로 해야 할 일엔 별 관심도, 능력도 없고 오로지 ‘정신’만을 강조하며 국민은 물론 자기 자신까지 기만하는 태도가 참으로 닮았다. 부디 북의 도발에 대한 대응책이 애국심 같은 정신 승리가 되지 않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