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제설정, 용기가 필요하다

[언론 다시보기] 문소영 서울신문 논설위원

‘1인 미디어 시대’를 실감한 6월 셋째 주였다. 디지털 시대에 의제설정이 더 이상 신문이나 방송 등 전통 미디어나 직업 기자들의 배타적 권한이 아니라는 점을 잘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도 평범하지는 않지만 아주 유명하지도 않은 두 사람이 자신이 속한 세계에서 매장될 각오를 하고 용기를 내 던진 두 가지의 문제제기는 이 사회를 환기시키기에 충분했다. 시민들은 신속하게 공론장을 형성하며 불의에 대해 변화를 촉구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었다. 


언론이 보도를 결정하는 뉴스의 가치 판단의 주요한 기준 중에 시의적절성이라는 것이 있다. 그런데 이번 두 가지 사례는 ‘발화(發話)’하는 그 순간에 ‘현재 시점’을 확보했다. 마치 영구미제사건의 파일을 새로 열어 수사를 시작한 것처럼 여론은 열광했다. 뉴스 소비자들은 그 사건의 시점이 15년 전 일이냐 또는 7년 전 일이냐고 따지지 않았다. 대신 왜 문제의 ‘불의’가 아직도 해결되지 않았는가를 성토했다. 


그 첫 번째는 ‘소설가 신경숙’의 표절논란이었다. 이응준 소설가이자 시인은 지난 16일 인터넷매체 ‘허핑턴 포스트’에 <우상의 어둠, 문학의 타락; 신경숙의 미시마 유키오 표절>이란 제목의 글을 올렸다. 신경숙이 1994년에 쓴 소설 ‘전설’이 일본의 극우작가이자 탐미주의 작가인 미시마 유키오의 ‘우국’을 표절했다고 했다. 이응준의 글에서 신경숙의 표절논란은 처음도 아니었다. 문학평론가 정문순이 2000년 ‘문예중앙’에서, 한겨레가 1999년 신씨의 다른 작품으로 표절의혹을 제기했다. 15년 전 찻잔 속의 태풍도 되지 못했던 일이, 디지털 시대에 지금 한국문단의 ‘침묵의 카르텔’을 싹 쓸어내려는 토네이도가 된 것이다. 김지하의 시 ‘타는 목마름으로’가 프랑스 시인 엘뤼아르의 ‘자유’를 표절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등 광범위한 표절논란이 제기됐고, 문단의 자정을 요구하고 있다. 이게 다 이응준 소설가가 용기를 낸 덕분이다. 


두 번째는 지난 19일 시작된 ‘진보 논객 한윤형의 데이트 폭력 논란’이다. ‘한윤형의 구(舊)여친’이 자신의 블로그와 트위터를 통해 ‘한윤형의 데이트 폭력에 관하여’라는 글을 공개했다. 문제의 ‘데이트 폭력’은 두 사람이 사귀던 2008년에서 2012년의 일이었고, 관계는 3년 전에 청산되었다. 뒤늦은 문제제기에 한씨는 20일 페이스북 계정에 공개적으로 사과와 해명을 올렸지만 구여친을 ‘구타유발자’라고 지칭해 논란이 됐다. 이에 ‘구여친’은 데이트 폭력을 구체화했다. 한씨는 22일 마침내 페이스북 계정에서 진정한 사과와 함께 공식적인 활동을 접는다고 밝혔다. 이런 논란 속에 또 다른 진보논객의 데이트 폭력을 고발하는 등 데이트 폭력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의 이슈가 됐다. 전통 언론의 온라인신문들이 이 데이트 폭력의 확성기가 됐다. 구여친의 용기는 데이트 폭력을 의제화하는 데 성공했다. 


2000년 5·18광주민주화운동 기념일 전날 ‘국회의원 광주 술판 보도’나 2002년 ‘효순·미선이 사건’, 2008년 ‘미네르바 사건’ 등 개인이 발화해 사회적 의제가 된 일이 적지 않았지만, 이 두 개의 사건처럼 신속하고 폭넓게 여론을 움직이며 사회의 변화를 촉구한 사례는 거의 없었던 것 같다. ‘뒤늦게 표절의도를 제기하는 의도가 뭐냐’거나 ‘맞을만 했으니 맞은 거 아니냐’는 식의 물타기는 힘을 받지 못했다. 


‘메르스 확산 방지’와 ‘가뭄 극복’을 위한 박근혜 대통령의 노력을 홍보하는 청와대 사진들이 논란이다. 진지한 궁서체의 ‘살려야 한다’는 구호 앞에서 전화를 하고 있는 대통령의 모습을 ‘MBC 해직 3주년’인 뉴스타파의 최승호PD는 ‘알려야 한다’는 패러디로 응수했다. 


쩍쩍 갈라진 논에 물대포를 쏘듯 직사로 물을 뿌리는 박 대통령의 사진 홍보에 농사를 아는 사람들은 아연했다. 국민일보는 ‘살려야 한다’는 패러디를 보도해 김성우 청와대 홍보수석의 노여움을 샀고, 그 탓에 홀로 정부의 정책광고 수주에서 누락됐다. “그게 기사가 되느냐”는 청와대 홍보수석의 전화 압력에 “기사가 된다”고 당당히 버틴 국민일보의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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