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주의' 뒤로 숨은 메르스 보도

[언론다시보기] 김준현 변호사

아직 메르스 사태가 진정되지 않았지만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지점이 있다. 언론은 정부의 공식발표 때까지 재난관련 정보에 대한 보도를 자제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이다. 지난달 7일 정부가 공식적으로 병원명단을 공개하기 전까지 극소수 언론을 제외하고는 삼성서울병원 등의 이름을 공개한 곳은 없다. 6월 초부터 일부 해당병원이 스스로 공개하거나 관련 병원을 다녀간 환자들의 입소문을 통해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급속히 많은 정보가 쏟아졌는데도 말이다. 보건복지부 등 관련 부처를 취재하는 기자들이 모를 리 없다. 그러나 정부의 공식 발표 전까지 언론은 입을 다물었다. 


정부의 비공개 방침은 혼란을 부추긴다는 이유에서였다. 더욱이 비공개 방침이었지 특정시점까지 보도유예를 의미하는 엠바고도 아니었다. 박원순 서울시장의 긴급 브리핑 같은 외부 변수가 없었다면 끝까지 비공개로 갈 수도 있는 사안이었다. 물론 비공개 방침에 대한 비판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언론은 정부 방침에 충실했다. 


언론의 보도 자제도 근거가 없지는 않다. 먼저 병원 명단 공개는 사태 확산 방지보다는 혼란을 부추길 것이라는 정부 설명이 합리적이라고 판단했을 수 있다. 나아가 정부가 적절히 대처하고 있다고 믿었기 때문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전망은 최초 환자 발생 당시에 적절한 격리와 방역대책이 동시에 진행됐을 때나 가능한 시나리오다. 결과론적으로 이런 예측은 시작부터 전제조건을 충족하지 못했다. 명단 공개가 빨랐으면 오히려 더 나은 결과를 가져왔을 것이다. 


지난해 세월호에 대한 아픈 기억을 들 수도 있다. 세월호 참사 때 보여 준 언론의 행태는 비난의 대상이었다. 사실 언론이 정보를 정확하게 파악하기 어려운 사건에 대하여는 공신력있는 기관의 브리핑에 의존하는 것이 가장 쉬운 길이고 리스크가 적은 방법이다. ‘정확성’을 ‘신속성’보다 우선시해야 한다는 보도 원칙에 충실히 따른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확성’을 정부 발표와 동일시하는 순간, 위험은 싹튼다. 이번에 언론은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야 할 의무를 저버리고 정부의 비공개 방침이라는 장막 뒤에 숨어 버렸다. 


삼성서울병원이라는 국내 최대 병원이 진원지 중 하나라는 사실은 언론이 공개를 선뜻 꺼리게 하는 요소였음에 분명하다. 관련 병원과의 이해 관계는 지나친 몸 사리기의 요인의 하나로 꼽을 수 있다. 


대부분 언론은 이번 보도에 있어서 적어도 선방했다고 스스로 자평하는 분위기인 것 같다. 그리고 신속한 보도보다는 정확한 보도를 요구하면서, 정부가 공식 발표하지도 않은 병원 명단을 언론이 보도하지 않았다고 비판하는 것은 이중잣대라고 푸념할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만약 세월호 침몰 당시 선장이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고 퇴선하라는 방송을 적절한 시점에 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안타까운 질문을 던져보자. 메르스 사태 초기에 정확한 정보 공개와 그에 따른 대처가 이뤄졌다면 지금처럼 병원을 중심으로 한 감염확산은 분명 줄어들었을 것이다. 침묵의 카르텔을 형성한 대가는 이처럼 혹독하다. 


이번 사태는 국민의 알 권리와 해당 병원의 사적 이익 보호, 또는 정부의 방침 등이 상충할 경우 접근하는 방식에 대한 언론의 고민이 너무 얕았다는 점을 보여준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식으로 뒤늦게 병원 명단 공개 등이 법제화되긴 했지만 그 이전까지 관련 법이 없었다는 것은 언론을 위한 변명이 되지 못한다. 


언론이 정부 발표 전까지 정말로 병원 명단을 몰랐다면 무능한 것이다. 알면서도 스스로 보도를 자제하였다면 그것은 언론으로서 역할의 포기에 다름 아니다. 이번 사태 확산의 1차적 책임이 정부에 있다고 하더라도 무능과 역할의 포기, 그 어느 비판에서도 언론이 자유롭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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