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중재위원회가 위원회의 법적 근거인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에 관한 법률(언론중재법)’ 개정을 시도하려는 모양이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개정안은 언론보도 피해자가 정정보도, 반론보도 그리고 손해배상 청구에 더해 기사 삭제 청구까지 가능하게 하려는 것이다. 그리고 이 기사를 전재한 블로그·카페의 복제물까지 삭제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댓글로 인한 피해구제도 맡고 댓글 자체의 위법성도 심리할 수 있게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한다.
피해자의 관점에서 보면 매우 긍정적인 조치로 보일지도 모르겠다. 언론의 무분별한 보도로 인해 피해자가 겪는 고통과 인터넷을 통한 피해의 확산을 고려하면 ‘무한정’ 피해를 구제해줄 수 있는 기관이 필요해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모든 조치에는 적절한 권한을 가진 기관의 적정한 수단을 필요로 한다. 중재위원회가 원하는 권한은 사법부가 아닌 ‘조정’위원회가 가질 수 있는 권한을 넘어서며, 피해구제 조치는 가장 적정한 수단이 아니다.
언론중재위원회는 현직 부장판사가 중재부장을 맡기는 하지만 법관의 자격으로 심리하고 결정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것은 아니다. 부장판사의 법적 전문성이 중재 과정에 도움이 되는 것은 분명하지만 중재부는 증거와 심리로 진행되는 법정이 아니며 부장판사의 판단이 ‘판결’일 수 없다. 조정에는 분명 한계가 있다. 만약 중재부의 권위로 기사 삭제까지 조정할 수 있다면 그게 온당할까? 언론사의 관점에서 보면 기사 삭제는 사형에 가깝기 때문이다. 언론사가 조정에서 이것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중재부의 권위(?)가 과도하다는 뜻이며, 법이 규정하고 있는 현 중재부의 위상을 고려하면 기사 삭제는 거의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다. 실익이 없는 규정이라는 뜻이다.
또 기사 삭제는 적정한 피해구제 조치가 아니다. 기사 삭제는 정정보도나 반론보도와 성격이 다르기 때문이다. 만의 하나 전적으로 허위인 기사가 있을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기사는 그 속에 허위가 있더라도 동시에 사실 또는 진실한 내용을 담고 있기 마련이다. 수용자는 원문과 정정보도문, 반론보도문을 비교해서 볼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일부 진실이 아닌 것에 대한 정정과 다양한 해석(반론)을 접할 기회를 가지는 것과 동시에 기사가 전달하는 또 다른 진실 역시 놓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기사 삭제는 기사 속에 포함된 또 다른 사실 그리고 또 다른 진실을 소멸시키는 것이다. 결국 언론사의 표현의 자유를 본질적으로 침해하는 것이다. 동시에 일반 수용자가 또 다른 진실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하는 것이며 이 또한 그 수용자의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다. 블로그, 카페, 댓글 등이 잘못된 기사에 의해 영향을 받았다면 정정보도문 또는 반론보도문과 비교할 수 있도록 연결하는 조치만 가능하게 하면 된다. 그런데 삭제하겠다니! 기사와 연결된 블로그의 다른 표현 행위는 보호받지 않아도 되는 것일까?
댓글에 관여하려는 시도에 대해서는 더욱 심각성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언론이 야기한 피해를 구제하려면 언론사의 표현의 자유라는 또 다른 법익과 충돌함으로써 사법부의 판단을 받아야 마땅하지만, 언론의 권위와 영향력을 고려할 때 그 피해의 확산을 막기 위해 빠른 화해 절차를 도입한 것이다. 중재위원회가 댓글 작성자와 피해자의 조정을 다 감당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위법 심리를 하여 댓글을 삭제하겠다는 것인데 중재위원회가 그에 걸맞은 권한을 가진 기관인가? 중재위원회가 자신의 위상에 대해 단단히 착각하고 있는 것임에 분명하다.
언론 매체 환경의 변화로 표현의 자유 못지 않게 피해 구제의 확대 필요성이 존재함은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서로 다른 법익이 충돌할 때 그 실체에 맞는 조정이 필요하다. 언론중재위원회는 월권을 꿈꾸고 있다. 그런데 더 심각한 것은 가장 중요한 이해당사자인 언론이 여기에 무관심하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