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행정예고로 온 나라가 진동하고 있다. 지금 우리는 정부가 불을 지핀 불필요한 논쟁과 갈등에 내몰리고 있다. 국정화는 역사 발전의 물줄기를 되돌리려는 반민주적 행위다. 유신 정권의 합리화를 위해서 시작된 국정화는 반민주적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국정화가 실시되는 시기에 나온 보고서들조차 대부분 자유발행제가 지향해야 할 가치이며 국정체제는 권위주의나 통제 사회에 어울리는 것이라 평가하고 있다.
한국교육개발원 연구가 그렇고 국사편찬위원회가 지원한 연구 결과도 마찬가지다. 심지어 국정화를 주도하던 김재춘 전 교육부 차관도 그가 책임연구자인 보고서에서 국정 체제는 독재국가나 후진국가에 있는 제도라고 규정하였다 한다.
그런데 국정화를 주장하는 세력들은 그들의 역사관에 따라 역사를 지배할 목적으로 교과서 국정화와 검인정 대립 구도를 이념문제로 치환하려 한다. 다양한 교과서를 인정하려는 검인정 교과서 제도 도입을 마치 노무현 정권이 역사를 왜곡하기 위해 시도한 것인 양.
하지만 검인정 제도의 도입은 국정화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오랜 논의의 결과일 뿐이다. 그런데 지금 친일독재 미화로 역사 왜곡을 시도했던 세력들이 다시 국정화를 기도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이 펼치고 있는 이념 전쟁의 본질을 감추는데 기여하는 언론들의 행태가 있다. 따옴표 저널리즘이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를 비롯한 국정화론자들은 우리나라 역사학자들의 90%가 좌파라는 말을 반복한다. 역사학자들이 좌파인지 조사를 해본 결과는 당연히 아니다. 90%는 아니어도 역사학자들의 다수가 새누리당의 역사인식에 비판적일 수 있겠다.
오른쪽으로 그리고 오른쪽으로 치우친 사람들에게 대부분의 사람은 좌파로 보일 수밖에 없다. 그런 점을 고려하더라도 우리 사회에서 좌파가 어떤 의미로 이해되고 있는지를 감안하면 이들의 의도적인 왜곡 발언을 비판 없이 그리고 사실 확인 없이 그대로 인용하는 언론은 어떤 책임을 져야 할까?
역사학자 대부분을 좌파로 몰아세우는 좌파 프레임을 동원하는 배경에는 검인정 교과서 대부분이 좌편향 됐다는 결론을 이끌어 내기 위한 수사학적 전략이다. 좌편향 돼서 국정교과서로 그 시각을 교정하겠다는 것이다.
김무성 대표를 비롯한 새누리당도 자유발행제를 지향하지만 일단 ‘정비’가 필요하다고 했다는데 그 ‘정비’가 무엇을 뜻하는지는 짐작 가능하다. 대다수 언론은 또 교과서가 좌편향 됐다는 말을 그대로 기사에 인용했다. 다양성을 보장하기 위한 검인정 제도가 좌편향에 악용됐다고 몰아세우고, 단일 교과서가 다양성을 강화한다는 형용모순의 주장을 하지만 이 역시 언론이 그대로 인용할 뿐이다.
비록 10여 년에 불과하지만 자유민주주의 사회를 경험한 사람들이 역사인식을 지배하려는 우파들의 정치적 기도에 반발하는 것은 당연하다. 전술한 좌파 프레임은 국정화에 대한 반대를 이념 대결과 진영 논리로 몰아세우는데 적절히 활용된다. 그리고 이런 프레임 역시 언론은 그대로 전달한다.
극우 보수 이념을 단일 역사인식으로 강요하고 역사의 장을 정치적 장으로 악용하려는 국정화 기도에 대한 반대를 이념 갈등 또는 진영 논리라고 몰아세우는 유체이탈 화법의 대통령과 정부 여당의 주장도 여과 없이 전달한다. 물론 대부분의 언론들은 이에 대한 사실 확인도 비판도 하지 않았다.
그래도 언론은 책임은 없다고 할 것이다. 단지 그들의 발언을 따옴표 속에 있는 사실 그대로 실어 주었을 뿐이라고 자기 합리화할 것이다. 그 사실을 진실이라고 믿게 될 수용자들에게 언론은 정말 책임이 없을까? 사실이 곧 진실이 아닐 수 있음을 언론은 모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