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시인이라오. 무얼 하고 사냐면, 쓴다오. 그냥 그렇게 산다오. 그저 가난하지만 기쁘게, 부자처럼 지낸다오. 시와 사랑의 노래, 꿈과 이상의 나라. 저 아름다운 낙원. 마음만은 백만장자라오.’ 오페라 ‘라 보엠’에서 주인공이 부른 ‘그대의 찬 손’을 들었을 때 이보경 MBC 기자는 전율을 느꼈다. 바람에 머릿결이 흩날리며 장엄하게 노래 부르는 주인공의 모습이 뇌리에서 잊히지 않았다. 운율에 맞춘 아름다운 가사, 노래가 주는 직접적인 호소력. 기악곡과는 또 다른 매력을 가진 오페라를 들으며 그는 고통스럽고 힘든 시간이 치유되는 느낌을 받았다.
때는 2012년 봄. 이 기자가 한창 MBC의 공정방송을 외치며 파업에 참가하던 시기였다. 곧 끝날 것 같았지만 쉬이 끝나지 않았던 파업, 어느 날 그는 이채훈 당시 MBC PD의 초청으로 모차르트 강연을 듣게 됐고 강연 내용을 검색하던 도중 연관 자료로 붙어 있던 오페라 아리아를 듣게 됐다. 아리아를 듣는 순간 ‘힐링’을 경험했던 그가 이후 오페라에 푹 빠지게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렇게 오페라를 통해 위로받고 심신의 치유를 경험하는 4년여의 시간이 시작됐다.
그가 오페라에 몰두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공짜’였기 때문이다. 유튜브와 각종 동영상 사이트에는 좋은 오페라 공연이 다수 올라와 있었다. 오페라의 종주국이라고 자부할 만한 이탈리아, 독일 등이 자기네 문화를 자랑하기 위해 오페라 공연을 고화질·고음질로 재깍재깍 올렸기 때문이다. 안나 네트렙코라는 오페라계의 마돈나는 심지어 공연한 지 나흘 만에 영상을 올리기도 했다. “인터넷으로 오페라 영상을 볼 때마다 돈을 버는 느낌이었어요. 이런 좋은 공연을 공짜로 보다니 믿겨지지 않았죠. 정말 시도 때도 없이 감상했어요. 밤에 잠이 안 오면 3시간짜리 공연 한 편을 다 보고 다시 잠자리에 들기도 할 정도로요.”
그 중에서 이 기자가 가장 좋아했던 공연은 ‘돈 조반니’였다.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3시간동안의 모든 곡이 하나같이 멋지고 완벽했기 때문이다. 그 때문인지 이 기자는 가장 좋아하는 오페라 가수로 돈 조반니 주인공 역을 많이 맡은 스웨덴 출신 성악가 페테르 마테이를, 좋아하는 작곡가로 돈 조반니를 작곡한 모차르트를 선택했다. “처음 발을 들이게 된 계기가 모차르트 강연이라 그런지 모차르트의 작품들을 좋아해요. 돈 조반니만 20번은 본 것 같아요.”
그렇게 오페라에 푹 빠져 100여편을 넘게 본 어느 날, 그는 그동안 본 오페라를 책으로 정리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턱대고 찾아봤는데도 어느 순간 줄기가 잡히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인터넷을 통해 오페라의 정수를 느끼기에는 부족함이 없거든요. 지금까지 157편을 봤는데 그 정도로 많은 영상이 있고 우리말 자막도 많죠. 많은 사람들이 흥미를 갖고 오페라를 들여다볼 수 있는 책을 써보고 싶었어요.”
최근 이 기자가 펴낸 ‘오페라홀릭’은 바로 그 결과물이다. 인터넷 오페라에 대한 보고서이자 오페라를 통해 위로받던 4년여 시간의 경험담이기도 하다. “가벼운 마음으로, 즐기면서 오페라를 봤으면 좋겠어요. 다음번에는 모차르트 오페라 22편을 모두 보고 심화판을 써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