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거는 거대한 스토리텔링이다. 집권세력을 겨냥한 야당들의 비판을 통해 국정이 심판받고, 여야의 공약들을 통해 국정의 향방이 조정된다. 또한 전국 방방곡곡의 민심과 갈등, 지역주민의 숙원이 드러난다. 해당 선거구의 1위를 놓고 벌이는 싸움에서는 숙명의 대결도 절치부심한 복수전도 펼쳐진다. 무명의 반란이 있는가하면 생명이 다한 듯 했던 노정치인의 부활 스토리도 등장한다. 이렇게 선거에 담길 스토리는 무궁무진하다. 그렇기에 총선거는 언론의 취재보도 아이템에서 가장 거대하고 흥미진진한 사건이다.
그러나 이런 거대한 스토리텔링을 옮겨 담기에 우리 언론은 너무 작고 몹시 왜곡돼 있다. 언론의 왜곡 중에는 ‘부작위의 작위’도 포함된다. 특정의 사안을 보도하지 않거나 의도적으로 축소하여 보도함으로써 사실상의 왜곡을 저지르는 것이다.
최근의 사례는 더불어민주당 대표 문재인 의원이 대표직을 공식사퇴하는 날 한 지상파 방송 메인 뉴스 프로그램의 보도이다. 해당 뉴스 프로그램은 이 사안을 주요 뉴스에 포함시키지 않았고 뉴스 시작 16분이 지나서야 보도했다. 그것도 별도의 꼭지로 보도한 것이 아니라 안철수 국민의당과 박주선 의원의 통합신당이 통합하기로 한 내용, 그리고 녹취록 관련해 이희호 여사에게 사과의 뜻이 전달된 것까지를 함께 묶어 보도했으니 3건의 굵직한 정가 현안이 한 꼭지로 뭉뚱그려진 것이다. 그 앞에 자리한 뉴스는 여당의 공천관리위원장에 누가 오를 것인가라는 내용이었다. 공천관리위원장이 결정된 것도 아니고 누가 오를지 난항이라는 뉴스이다. (그 후 닷새가 지나도록 여당 공천관리위원장은 결정되지 않고 있다). 총선을 석 달 앞두고 야권의 재편이 선거정국의 최대 쟁점인 시점에서 제 1 야당 대표의 사퇴, 야권 두 신당의 전격적인 통합 합의를 합쳐도 여당 공천관리위원장 난항 이하의 비중으로 다뤄진다는 건 고의적인 축소가 아니면 설명이 어렵다.
80년대와 90년대에서도 지상파의 부작위에 의한 작위의 왜곡은 총선 왜곡보도의 백미라 할 만 했다. 선거유세 등을 보도하면서 특정 지역구 여당 후보에게 한 꼭지가 배정되고 나머지 야당 후보를 한꺼번에 싸잡아 한 꼭지가 배정되는 방식이었다. 여당은 1개이고 야당은 여러 개니 모두 다루면 여당이 불리해 역차별이 생긴다는 것이 늘 반복되는 해명이었다. 그것은 집권세력의 기준에서 우리 당과 나머지 야당들로 나눌 때의 논리이다. 모든 당과 모든 후보를 살펴 주권을 행사해야 하는 국민의 편에서는 누가 누구인지 가능한 두루 그리고 고루 살필 수 있어야 한다.
야당 관련 보도를 축소하기 위해 벌인 다른 왜곡으로는 야당 후보 유세장에서는 청중 운집이 허술한 밀도가 낮은 공간을 위주로 찍고, 여당 후보 유세장은 꽉 들어찬 밀도 높은 공간을 찍어 보도하는 방식도 있었다. 또 야당 후보 유세장의 청중 표정은 심드렁 아니면 찡그린 표정을 포착해 잡고, 여당 후보 유세장 청중은 밝고 열정적인 표정을 포착해 내놓는 방식도 사용됐다. 오죽하면 총선보도 시민 감시단이 발족되어 뉴스 프로그램에서의 여야 각각의 보도 건 수를 세고, 기자 리포트에 삽입된 여야 각 당 후보 인터뷰의 길이까지 일일이 시간을 재는가 하면 카메라에 찍힌 청중의 표정까지 확인하는 지난한 작업이 펼쳐졌을까? 제 1 야당, 제 2 야당이 하나의 야권 소식이 아닌 각각의 뉴스 꼭지로 구분되어 방송되기 시작한 건 그런 지난한 싸움을 거친 덕분에 주어진 공정보도이다.
저널리스트와 언론은 집권세력이 역차별 당할까 신경 쓸 필요가 없다. 그 사회의 가장 힘센 지위와 관점에 도전하고 기회를 얻지 못하는 소수자의 그늘을 살피는 것이 우선이다. 그렇게 애를 써도 집권세력은 늘 기울어진 운동장이 된 선거판에서 각종 특혜를 챙긴다. 하물며 언론이 스스로 기울어진 운동장이 되어서야 쓰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