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시대는 '필터링 시대'다. 인터넷이라는 '필터'가 개인이 관심이 있는 것을 알아서 골라준다. 구글이나 페이스북 같은 기업들이 그렇게 한다. 개개인이 인터넷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분석해 그가 원하는 것, 그와 관련이 있는 것을 예측해 보여준다.
구글의 지메일을 열어보다가 무심코 페이지 한쪽에 있는 광고를 보면 ‘나와 관련된 것들‘이 떠 있곤 한다. 검색 결과나 뉴스피드도 마찬가지이다. 앞으로 데이터 분석과 인공지능 기술이 더 발달하면 그 ‘인터넷 필터’는 더욱 강력해질 것이다. 개인은 편해졌다. 내가 따로 노력하지 않아도 인터넷이 알아서 내가 클릭하고 싶은 것들을 보여주니 말이다.
언론도 비슷한 서비스를 시작하고 있다. 이용자에 따라 맞춤형 콘텐츠를 제공하고 있는 로이터 TV가 대표적이다. ‘뉴스의 개인화’시대가 열리고 있는 것이다. 인터넷 시대에 맞는 자연스럽고 예견된 수순이다.
방법은 쉽다. 데이터의 시대에 사용자의 ‘어텐션’(attention:관심)을 수집해 분석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특정 개인이 어떤 분야의 뉴스를 보는지, 반대로 어떤 분야의 콘텐츠는 관심을 보이지 않고 건너뛰는지 수집한다. 어느 국가, 어느 도시에서 로그인하는지, 그의 위치정보도 파악한다. 로이터 TV는 이렇게 다양한 ‘개인 정보’를 모아 분석한 뒤 그에 맞는 ‘개인화된 뉴스’를 제공한다.
앞으로 이런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언론은 계속 늘어날 것이다. 이유는 두 가지이다. 첫 번째는 고객의 ‘입맛’에 맞기 때문이다. 사용자들은 자신에게 맞춰주는 이런 서비스에 호감을 갖기 마련이다. 두 번째 이유는 그것이 언론의 ‘수익’에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사용자 입장에서는 클릭하고 싶은 콘텐츠들이 많이 보이니 자연 그 사이트에 오래 머문다. 광고 유치나 유료화 시도에 유리한 환경이다. 그리고 효과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광고주의 입장에서 보아도 사용자 개개인의 취향에 맞는 맞춤형 광고를 할 수 있으니 매력적인 사이트가 된다.
그런데 한 가지 걸리는 문제가 있다. 그런 맞춤형 서비스가 과연 우리가 생각해온 언론의 ‘사명’에 부합하느냐에 대한 고민이다. 전통적인 언론은 지면 ‘배치’나 9시 또는 8시 뉴스 ‘편성’을 통해 오피니언 리더의 역할을 해왔다. 한 공동체의 문제들을 중요도에 따라 가중치를 매겨 제시하며 ‘아젠다 세팅’을 해왔다. 그리고 사설이나 논평이 아닌 분야에서는 최소한 공식적으로는 사안에 대해 균형과 불편부당함을 추구했다.
그런데 언론이 인터넷 시대에 맞춰 ‘뉴스의 개인화’를 계속 발전시켜 간다면 언론의 이런 전통적인 사명을 사실상 포기해야하는 상황을 맞이할지도 모른다. 개인은 이미 지금도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같은 소셜네트워크 서비스를 통해 자신과 생각이 비슷한 사람이나 콘텐츠를 주로 접함으로써 편협한 시각을 갖게 될 우려가 커진 상황에 살고 있다. 미국의 경우 공화당 지지자와 민주당 지지자, 개발론자와 환경보호론자는 자신의 성향에 따라 각각 완전히 다른 검색 결과나 뉴스피드를 본다. 자신과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과 차단되는 필터 효과의 부작용이다.
그런데 상업적인 인터넷 서비스 뿐만 아니라 언론까지 이런 필터링 경쟁에 가세한다면 공동체는 어떤 영향을 받을까. 우리가 마음 한 켠에 간직하고 있는 언론의 사명은 또 어떻게 되는 건가. 아니 이제 세상이 바뀌었으니 언론도 국민을 이끌겠다는 과거의 ‘오만한’ 생각에서 벗어나야하는 것인가. 똑똑하고 강해진 개인의 등장을 인정하고, 언론은 개개인이 원하는 정보를 효율적으로 제공해주는 역할에 ‘만족’해야 하는 것인가.
인터넷에 적합한 맞춤형 서비스의 확산은 언론이 자신의 미션을 앞으로 어떻게 정립해야 할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