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전주 국제영화제에선 최승호 피디가 두 번 등장한다. 한번은 연출자로, 다른 한번은 출연자로. 그가 직접 연출한 ‘자백’과, 해직언론인으로 출연하는 ‘7년-그들이 없는 언론’이 공교롭게도 전주 국제영화제에서 함께 상영되기 때문이다.
현재 뉴스타파에서 메인 앵커를 담당하고 있는 최승호 피디는 MBC 출신 해직 언론인이다. 2012년 김재철 사장 퇴진과 공정방송쟁취를 내걸고 무려 170일간 파업했던 MBC는, 그 과정에서 능력 있는 언론인들을 대거 잃게 된다. 최승호 피디도 그 중 한명으로 어느덧 해직 4년차를 맞고 있다. 매주 뉴스타파를 통해 얼굴을 마주하다보니 해직언론인이란 생각이 잘 떠오르지 않지만 그가 원래 있던 자리는 분명 MBC고, 피디수첩이다.
그와 함께 해고된 박성제 기자는 아예 언론인의 길을 벗어나 다른 일을 하고 있다. 이제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수제 스피커 제작 업체를 운영하며 해당 분야에서 나름의 인정을 받고 있다. 평소에 관심 있던 분야의 일이라 즐겁게 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현재 언론보도의 문제점에 대해 날카롭게 지적할 땐 영락없는 방송사 데스크다.
YTN 파업을 이끌었던 노종면 기자는 얼마간의 공백기를 마감하고 최근 다시 대중 앞에 나섰다. ‘일파만파’라는 이름의 새로운 언론이 현재 그가 몰두하고 있는 대상이다. SNS를 기반으로 한 일종의 ‘뉴스 에디팅’ 서비스로 일정 정도의 SNS 유저들로부터 동의를 얻어 그들의 언론 소비 형태를 분석하고, 이를 근거로 뉴스를 취사선택하여 제공하는 서비스다. 돌발영상을 처음 기획한 기획자답게 일파만파에도 아기자기한 아이디어들과 반짝거림이 가득하다. 그 역시 해직 언론인으로, 다른 두 명의 동료와 함께 2015년 대법원에서 해고 최종 확정 판결을 받았다. 법적으로 그의 해고가 번복될 가능성은 없는 셈이다.
조승호, 현덕수 두 기자도 노종면 기자와 함께 해고 확정 판결을 받았다. 두 사람은 현재 뉴스타파 소속이다. 반면 복직 판결을 받은 우장균, 권석재, 정유신 기자는 YTN에서 근무중이다. 당연히 그들의 복직은 해직 못지않게 가시방석이다. 지난해 말 해직 7주년 행사 때 해고 확정 판결을 받은 선배들이야말로 YTN을 너무나 사랑하는 보석들이라고 외치던 정유신 기자는 비록 예전 같진 않지만 해직된 선배들이 돌아올 때까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겠다며 흐르는 눈물을 삼켰다.
정영하 MBC 전 노조위원장은 해직기간 제빵을 시작했다. 오디오 엔지니어인 정 위원장에게 제빵은 ‘오디오와 비슷한’ 것이었는데 실제로 해직 전 후배들에게도 ‘오디오는 요리와 비슷한 것’이란 말을 여러 번 했다고 한다. “일단 손으로 하는 거고 손으로 하는데, 손으로만 화려한 기술로 하는 게 아니라 듣고 느끼고 해야 하는 거고, 그게 너만 좋으면 안 되고 같이 듣는 사람도 좋아야해. 너만 맛있으면 안 되는 거야. 요리가 그렇지 않니?”(정영하 위원장 인터뷰 중)
권성민 피디는 말이 피디지 속칭 ‘입봉’(피디데뷔)도 못한 상태에서 해직이 됐다. 해직 당시 입사 3년차였던 권 피디는 한 인터넷 게시판에 ‘엠병신 피디입니다’라는 제목으로 글을 올렸던 게 해고의 결정적 사유였다. 언뜻 과격해 보이는 제목이지만 글의 내용은 과격과는 거리가 멀었다. ‘MBC 내부에서 공정 보도를 하려고 애를 쓰는 언론인들이 적지 않은데, 그런 언론인들을 비보도, 비제작 부서로 보내버리고 있다, 그러니 MBC 전체에 대해 너무 실망하진 마시라’는 골자였다. 그는 해당 글을 쓴 이유를 시청자들에게 MBC 보도의 문제에 대한 소상한 내용을 알려주는 것만이 아니라, 자신의 글을 보고 너무나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을 보도국 동료 선후배들이 힘을 냈으면 하는 이유가 컸다고 한다.
위 해직언론인들을 포함하여, 이명박 정권이 들어선 이후 현재까지 해직된 언론인은 총 22명이다. 그 수 십 배에 해당하는 언론인들이 해직만 아니라 뿐 정직 등의 징계를 받았다. 그리고 그 결과 대한민국 언론은 ‘기레기’라는 별명을 얻게 됐다. 다행히 이번 총선 결과로 언론의 공정성 회복에 대한 기대가 여기저기서 비춰진다. 그렇다면 추상적이고 사변적으로 길게 말할 필요가 굳이 있을까? 딱 한 마디면 충분하다. “이제 다시 해직언론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