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법’의 시행령이 입법 예고됐다. 공직자와 언론인, 사학교원이 9월28일부터 3만원 이상의 식사 대접, 5만원 이상의 선물, 10만원 이상의 경조사비를 받으면 과태료를 물게 된다는 내용이다.
신문과 방송에 관련 보도가 쏟아졌다. 시행령이 발표된 날(9일) 네이버 정치 분야를 보니 톱 기사의 제목은 ‘청렴한 공직 사회와 내수 위축 우려 사이서 ‘줄타기’’였다. ‘“도시락 간담회만?”…김영란法에 공직사회 ‘벙어리 냉가슴’’이라는 제목의 기사도 있었다. 경제부처의 한 과장이 말했다는, “주변에서 이제 도시락 시켜놓고 간담회를 해야 하는 거 아니냐는 우스갯소리도 하곤 한다”라는 내용을 언론이 굳이 별도 기사로 보도해야 했나 싶었다.
경제 분야를 보니 ‘축산·화훼농가 반발’, ‘재계, 기업활동 위축 가능성 우려’라는 기사가 눈에 들어왔다. 긍정과 부정 양쪽의 생각을 병기한 기사도 있었지만, ‘내수 위축’을 우려한다는 톤의 기사가 많이 보였다.
#1990년대와 2000년대 초에 기자생활을 했다. 초창기에 식사와 관련해 ‘문화충격’을 느꼈다. 취재원과 호텔이나 일식집에서 식사를 하는 일이 종종 생겼기 때문이다. 어느 날 좋아하는 선배에게 조언을 구했다. “마음이 불편하다. 이것도 일종의 뇌물이 아니냐.”
그 선배의 기준은 이것이었다. ‘돈 봉투는 무조건 거절한다, 식사는 취재를 위한 불가피한 것으로 보고 수용한다.’ 나는 수긍했고, 그 기준으로 기자생활을 했다. 언론사를 떠난 후 ‘국민의 시선’으로 돌아보니, 그건 현실과의 ‘타협’이었다.
#요즘 기자를 ‘비하’하는 댓글을 인터넷에서 자주 접한다. 기사에 대한 생각 차이나 오해가 이를 더욱 악화시킨다. 이번 보도도 그랬다. 위 기사들에 대한 댓글은 일반 국민의 생각을 보여준다.
“내수를 위해 부정부패를 용인하겠다는 ○같은 논리는 어디서 나온 거냐?” “김치찌개 먹어. 6000원이면 잘 먹을 수 있다. 물론 이 6000원짜리도 니 돈 내고 먹어. 왜 남한테 받아○먹냐?”
3만원은 적은 금액이 아니다. 친구나 동료와의 ‘삼겹살에 소주’ 같은 평범한 식사를 떠올리면 그렇다. 매출에 타격을 받는 고급식당도 있겠지만, 서민들이 운영하는 더 많은 평범한 식당들은 오히려 손님이 늘어날 수도 있다.
#‘김영란법’은 제기된 헌법소원에 대한 헌재의 판결을 앞두고 있다. 언론인과 사립 교원을 포함한 것이 위헌인지 여부가 핵심 쟁점이다. 나도 안다. 정부가 자의적으로 법을 악용해 언론 탄압을 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있다는 걸. 이는 주시해야 할 문제다. 하지만 그건 또 다른 차원의 이슈다.
이제 언론이 ‘김영란법’에 대해서 좀 더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으면 좋겠다. 천재일우의 기회이기 때문이다. 단기적으로 일부 업종의 매출하락이 발생할 수 있겠지만, 장기적으로 부패가 사라지면 경제성장에 도움이 된다. 청탁과 뇌물로 공무원의 정책결정이 왜곡되어 세금이 줄줄 새는 것을 줄일 수 있다. 기업도 단기적으로는 불편함을 느낄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는 ‘기업하기 좋은 환경’ 속에서 ‘선진기업’이 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공무원이나 기자, 교원 개인도 그게 마음 편할 수 있다.
그래서 이런 생각을 해보았다. 9월 법 시행 전까지 투명하고 청렴한 선진국들의 모습을 소개하는 ‘특집 기사’들이 우리 언론을 앞 다퉈 ‘도배’하는 것을 보고 싶다는 생각. 선진 기업이나 공공기관들이 얼마나 엄격하게 식사나 선물 규정을 운영하고 있는지도 ‘시리즈 기사’로 자세히 접하고 싶다. 그러면 언젠가는 ‘김영란법’이라는 강제조항에 의존하지 않고도 조직의 자체 규정과 문화에 의해 우리 사회가 깨끗하게 운영되는 날이 올 수 있을 것이다. 그 중요한 변화를 내 ‘친정’이기도 한 언론이 ‘뒷다리’를 잡은 것이 아니라, 앞장서서 이끌어갔다는 ‘찬사’를 국민들에게 받게 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