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종 아는 기자들이 문의를 한다. 그 중엔 보도할 내용이 혹시 명예훼손에 걸리는 것 아니냐는 질문도 상당수다. 답변은 한결같다. 취재 내용이 사실인지, 공익적 사안인지를 되물어 본다. 두 관문을 모두 통과한다면 ‘걱정 안해도 되겠네요’라고 응답한다. 이른바 사실이거나 사실이라고 믿을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고, 공익에 관련된 사안이라면 명예훼손이 되더라도 처벌되지 않는다는 대법원 판례를 풀이해서 설명한 것이다. 그렇지만 가끔은 수사기관에서 조사를 받게 되었다는 항의성 전화를 받을 때도 있다. 이럴 때는 정말 난감하다.
현행법은 명예훼손이 성립하는 행위를 크게 두 가지로 상정하고 있다. 사실을 알리는 경우와 허위사실을 적시하는 경우다. 보도한 내용이 허위사실이라면 다른 도리가 없다. 사실을 보도한 경우는 대법원 판례처럼 처벌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문제는 사실과 허위사실의 구분이 언론의 취재·보도단계에서는 명확하게 판명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다. 언론 종사자들이 답답해하는 부분도 여기다. 결국은 수사나 재판단계에서 사실여부가 법적으로 확정되어야 혐의를 벗을 수 있는데 일단 조사부터 받아야 되기 때문이다. 더욱이 우리 법 규정은 명예훼손을 당했다는 피해자의 고소가 없더라도 수사에 착수하고 재판에 넘길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피해자가 아닌 제3자의 고발만으로도 수사가 시작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세월호 참사 당일 대통령의 7시간 행적에 대한 의혹을 보도했던 일본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 사건은 피해자인 박 대통령이 고소한 것이 아니다. 한 보수성향 단체의 고발로 인해 수사가 시작돼 형사재판에까지 이르게 된 경우다. 언론의 감시와 비판의 대상인 권력과 자본이 얼마든지 명예훼손 규정을 악용할 가능성이 있음을 보여준 사례다. 더욱이 최종적으로 사실여부가 확정되고, 또한 진실성과 공익목적이 인정되어 처벌되지 않는다고 치더라도 되풀이되는 조사 과정에서 언론종사자들은 시간과 노력을 허비해야 한다.
이러니 명예훼손죄가 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목소리가 높을 수 밖에 없다. 사실 전 세계적으로 명예훼손죄를 두고 있는 곳은 일본과 독일 등 몇 나라밖에 없다. 게다가 이들 나라는 명예훼손죄를 피해자의 고소가 있어야 하는 친고죄로 정하고 있다. 미국은 몇 개 주에서만 형사규정을 두고 있으나 실제론 민사적 분쟁으로 처리할 뿐이다.
UN자유권위원회는 수 차례 우리정부에 사실을 적시하는 경우의 명예훼손죄를 폐지할 것을 권고한 바도 있다. 지난 19대 국회 때도 사실을 적시하는 경우의 명예훼손죄는 폐지하자는 법률안이 제안된 바 있다. 그러나 19대 국회는 문을 닫았고 제출법률안은 자동폐기됐다.
오랜 기간 동안 명예훼손의 형사처벌은 당연하게 여겨졌다. 언론에 비리의혹이 나면 당사자는 고소나 고발부터 한다. 가만히 있으면 의혹을 인정하는 꼴이 된다고 보고 고소부터 하자는 식이다. 인터넷공간에서의 개인 간의 명예훼손 분쟁도 형사적으로 해결하려는 추세다. 한마디로 형벌규정이 고소·고발을 부추기는 형국이다.
최근 서울지방변호사회의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의 폐지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에서는 찬반의견이 거의 절반씩 나왔다. 이걸 보면 명예훼손죄 폐지나 개선에 대한 사회적 분위기는 완전히 무르익지 않은 듯 하다. 그러나 명예훼손죄가 존속하는 한 권력자 등은 언제든지 고소·고발을 남발할 수 있으며, 이는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키는 부정적 효과를 가져온다.
명예훼손을 형사처벌의 대상에서 제외하고 민사적 해결과 피해구제책으로 보완하자는 사회적 인식의 변화가 필요하다. 새롭게 구성된 국회에서 가장 기본적인 권리인 표현의 자유를 고민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