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널리즘 가치 스스로 입증해야

[언론 다시보기] 김서중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불공정 편파보도 시비가 끊이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애초 완벽하게 공정한 보도는 불가능하니 불공정 시비는 어느 때나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의 불공정 시비는 그 차원을 넘어선다. 이명박 정부 때도 비슷했지만 이 정부 들어서서도 많은 사회적 현안이 발생했다. 굵직한 문제들만 거론해도 국정원 개입 선거 부정 논란부터 세월호 참사,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개성공단 철수, 누리과정 비용 떠넘기기, 한일 위안부 협상 그리고 국정원 강화 테러방지법 도입, 민중대회 강제진압과 백남기 농민 물대포 공격 등. 이런 현안들이 진행되면서 파생한 또 다른 현안들까지 생각하면 참 탈도 많고 말도 많은 정권이다. 문제는 이런 현안들마다 주류 언론들이 편파성을 보였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사례인 세월호 ‘보도’ 참사는 길영환 KBS 사장을 퇴진시킬 정도로 언론계에 충격적인 일이었다. 이제 ‘기레기’가 기자들의 별칭이 되고 시민들은 당연한 듯이 언론을 불신한다. 공영방송 KBS가 해서는 안 되는 보도 참사를 벌였지만, 그리고 이 과정에서 사장이 보도의 독립성을 침해하고 내용에 간여했지만 그것이 ‘KBS’만의 문제가 아님은 삼척동자도 안다. 주류 언론 대부분에서 사장 또는 편집국 간부들의 정치적 성향이 보도에 작용했음은 명백하다. 그리고 이런 현실은 지금도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사실을 확인하지도 않고 내보내거나 심지어 사실을 왜곡하는 일도 있다. 우리 사회의 기득권자들이 제공하는 정보는 대부분 그대로 기사가 된다. 이미 그들의 존재 그 자체로 기사 가치를 부여받고 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정보들을 아주 기사화하기 좋게 정제한 보도 자료는 기자들의 기사화 부담을 덜어 준다. 여기서 저널리즘은 사라진다. 감시견으로서 사실 여부를 의심하고 심층 취재로 진실성을 확인하는 저널리즘 행태는 찾아보기 힘들다.


언론은 무엇보다도 사실과 이에 기반을 둔 진실을 전달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다일까? 어쩜 더 중요한 것은 의제설정의 문제일 수도 있다. 언론은 의제를 왜곡하거나, 때로는 의제를 회피하는 행태를 보인다. 중요한 사회적 현안이 있을 때마다 대중의 호기심을 끄는 연예인 사건이 일어난다는 세간의 인식은 이제 상식이 되고 말았다. 진실 여부를 떠나 대중이 그렇게 인식할 지경까지 왔다는 점이 중요하다. 언론의 신뢰가 땅에 떨어졌다.


예로서 국정원의 선거개입을 국정원 직원 개인의 문제로, 한국사 국정 교과서의 문제를 정파적 대립구도로, 대통령 공약인 누리과정 지원 불이행을 중앙정부와 지자체 대립구도로 치환하는 등의 의제의 왜곡은 권력이 설정한 의제를 언론이 그대로 수용하는 행태를 보여준다. 언론이 진실을 취재하려 노력했다면, 취재한 진실에 기반하여 보도하려 했다면 그런 의제 왜곡이 가능할까?


그나마 이것들은 비록 왜곡됐다 할지라도 의제가 되기라도 하니 다행이다. 세월호 문제는 의제로 다루지도 않기 때문에 더 심각하다.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는 1·2차 청문회에서 비록 제한적이나마 새로운 사실을 발견해냈다. 그러나 주류 언론에서 발견할 수 있는 기사는 청문회 내용 자체가 아니라 청문회에서 의분을 참지 못한 김동수씨의 자해 사실 정도였다. 언론은 기레기라 불리던 2년 전의 악몽에서 벗어난 것일까? 아니면 현실 권력의 자장이 여전히 막강한 것일까?


올바른 저널리즘을 위해 기자는 취재원인 권력으로부터 독립한 감시자로서 공공의 비판과 협의를 위한 공론의 장을 제공하고 이를 통해 수용자이자 주권자인 시민에게 최우선 봉사해야 한다. 플랫폼이 이동하고 전통적인 미디어가 위기라고 한다. 그 변화 속에서 저널리즘도 같이 소멸하지 않으려면 올바른 저널리즘 가치의 구현을 통해 존재 이유를 스스로 입증해야 한다.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