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안의 위험한 보수

[언론 다시보기] 김진혁 한국예술종합학교 방송영상과 교수

인지언어심리학자인 조지 레이코프는 보수와 진보를 ‘사고체계’를 통해 구분하였는데, 보수적 사고체계는 ‘엄격한 아버지’에 진보적 사고체계는 ‘자애로운 어머니’에 비유했다.


‘엄격한 아버지’는 거친 세상에 맞서 아이가 강하게 자라나길 바라는 것으로 아이를 훈육하고 통제하며 무언가에 맞서 싸워 스스로 극복해 내기를 바라는 사고방식이다. 반면 ‘자애로운 어머니’는 아이가 홀로 서기 위해서는 훈육보다는 돌봄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서는 세상이 아이를 보호하고 아이에게 감정이입하고 격려해야 한다는 사고방식이다.


사실 보수와 진보라는 표현을 다들 너무나 자주 또 쉽게 사용하지만 막상 무엇이 보수이고 진보인지에 대해 명확하게 설명하는 경우는 매우 드문데 조지 레이코프의 이러한 비유는 대단히 쉽고 명쾌하며 무엇보다 이 기준을 가지고 어떠한 대상이 보수인지 진보인지 가늠하기도 매우 편리하다. 어떤 세력이 혹은 어떤 사람이 ‘엄격한 아버지’처럼 구는지 ‘자애로운 어머니’처럼 구는지를 판단하는 건 누구에게나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최근 발생한 구의역 스크린 도어 사고에 대한 모 정치인의 SNS 글을 보며 조지 레이코프가 제시한 보수와 진보의 구분법이 떠올랐다. 해당 글이 논란이 된 부분은 ‘조금만 여유 있었다면 덜 위험한 일을 택했을지도 모릅니다.’란 표현인데 이것이 조지 레이코프의 비유에 따르면 ‘보수적 사고체계’의 전형이기 때문이다.


엄격한 아버지는 문제 해결의 주체와 책임을 ‘아이’로 여긴다. 어차피 세상은 거칠고 정글 같으며 무엇보다 그런 세상이 개인의 노력으로는 잘 바뀌지 않을 거란 세계관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그것을 해결해 나갈 주체는 결국 세상이 아닌 아이가 될 수밖에 없다. 훈육의 정당성도 바로 책임의 주체가 아이, 즉 개인에게 있다는 생각에 기초한다.


이처럼 어떤 문제의 귀책사유가 세상 혹은 사회나 구조보다는 ‘개인’에게 있다는 것이 보수적 사고체계의 핵심이다. ‘조금만 여유가 있었더라면...’은 문제의 귀책사유를 개인에게 두고 있다. 물론 해당 정치인은 선의에서 안타까운 마음에서 한 말이라고 생각한다. 진정성을 의심하는 게 아니라 이러한 사건에서 과연 ‘보수적 사고체계’를 사용하는 것이 적합한가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세월호 참사를 ‘교통사고’로 보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구조 실패’라는 개념과 비교해 보면 왜 보수적 사고체계인지 더 확연하게 드러난다. 구조 실패가 책임을 해경이나 국가라는 ‘구조’로 보는 반면 교통사고는 상대적으로 사고를 당한 ‘개인’에게 두고 때문이다. 어쩌다 재수가 없어서 세월호를 탔다는 생각도, 애초에 수영을 잘 가르쳤으면 좋았을거란 생각도 문제의 원인과 해결책 모두를 개인에게 둔다는 점에서 역시 ‘보수적 사고체계’에 해당된다.


이 정도면 ‘보수적 사고체계’가 우리 사회에 지나치게 과도하다고 말해도 무방하지 싶다. 보수적 사고체계를 적용할 상황인지 아닌지를 전혀 따져 보지 않고 그냥 마구잡이로 적용해대는 것이다. 이건 단지 ‘보수 정당’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우리 머릿속에서 벌어지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사람들의 ‘머릿속’ 일에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치는 언론은, 언론인들은 먼저 자신의 머릿속에 존재하는 보수적 가치체계의 내용과 사용 정도에 대해 반드시 객관적으로 성찰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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