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벌어진 강남역 살인사건 및 신안 집단 성폭행 사건에서 언론의 보도행태에 대한 비난이 일었다. 여전히 인권과 안전, 젠더에 관한 감수성이 크게 미흡하다는 것이다. 특히 모 경제신문의 <만취한 20대 여교사 몸속 3명의 정액...학부형이 집단강간>이라는 기사 제목은 읽는 순간 ‘행패’라는 단어가 떠오르는 수준이었다. 언론의 고질적 병폐로 지적된 이런 기사를 들여다보면 현장에서 취재기자가 판단미숙으로 정보를 잘못 판단해 벌어진 경우는 오히려 드물다. 대부분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태도와 방식, 즉 사건보도를 통해 이루고자 하는 목적과 방향성의 문제이다.
최근 벌어진 위의 두 사건의 공통점은 젠더와 폭력이 결합된 것이다. 이런 사건에는 당연히 드라마틱한 요소들이 포함돼 있다. 그 부분을 전달하자면 프라이버시를 건드릴 수밖에 없다. 또한 그것은 인간적 관심사일 수도 있어 피해갈 수만은 없다. 문제는 극적이고 디테일한 요소를 끌어들여 얻고자 하는 목표가 무엇이냐는 것이다. 좋은 보도는 거기서 공감을 통해 사건의 근본 원인을 두루 살피게 하고, 사건의 구조에 대한 통찰을 전하며 넓은 시야로 종합적 이해에 접근토록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선정적이고 자극적이며 인식의 부족을 드러낼 뿐 깊이와 시각에서 미흡하다는 것이 시청자와 독자들의 비판이다.
과거 미국 컬럼비아 대학에서 진행된 ‘우수 저널리즘 프로젝트’에서 보고된 사례 한 가지를 살펴보자. 텍사스의 주도인 오스틴 지역 언론사들은 “뉴스는 피가 흘러야 먹힌다.”는 언론계 통념대로 사건사고들을 선정적이고 자극적으로 다루고 있었다. 그런데 지역 방송사인 KVUE TV가 폭력사건 기사를 사회 정치적 의미에 비추어 걸러내기로 결단했다. 그 기준은 다음과 같다.
1. 시민행동이 필요한 상황인가?
2. 안전을 직접 위협하는가?
3. 가장 약자인 아이들이 위협받는 상황인가?
4. 이 범죄 사건이 지역사회에 의미 있는 충격을 주었는가?
5. 이 기사를 내보낸다면 범죄 예방에 도움을 주는가?
이 지침이 결정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마을 술집에서 총격이 벌어지며 (발사된 총탄은 세 발) 사망사건이 일어났다. 총기가 허용되지 않은 우리로서는 술병이 흉기로 쓰였다 해도 피해자가 사망에 이르렀다면 보도할만한 가치가 충분하다 판단할 것이다. KVUE TV는 새로 마련한 기준에 따라 기사를 판단한 결과 5개 항목 중 어디에도 해당되지 않는다고 보고 메인 뉴스 격인 밤 10시 뉴스에서 빼버렸다. 물론 다른 언론사들은 관행대로 크게 보도했다. 그날 KVUE TV 뉴스시청률은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의미와 가치를 지닌 뉴스의 보도에 다른 방송사보다 훨씬 더 긴 시간을 할애해 뉴스의 질과 품격을 높이거나 타 언론사가 기피하는 정부정책 이슈를 꾸준히 다루어 성공한 사례는 이 보고서에 다수 수록돼 있다. 굳이 멀리서 찾을 것 없이 JTBC 보도의 약진도 이를 적용할 수 있는 예이다.
‘자극적으로 보도하면 먹히는 건 분명하지 않냐?’는 반문도 가능하다. 이것은 독자나 시청자들이 이런 저런 뉴스에 두루 관심을 갖는 게 아니라 뚜렷이 자극적이고 격한 뉴스를 반기는 부류와 사실 정보에 근거해 기본에 충실한 접근방식을 원하는 부류로 나뉘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우리의 문제는‘어느 쪽 사람들에게 부응할 것인가?’와 ‘어느 쪽에 부응하는 것이 우리의 책무인가?’하는 것이다. 달리 표현해 뉴스는‘시장을 고려해 내보내야 하는가?’아니면‘정치권력이나 금권으로부터 독립된 언론사의 공적 기준에 근거해 내보내야 하는가?’이다. 부인할 수 없는 건 그 기준에 ‘우리가 비즈니스맨인가 저널리스트인가’... 라는 기자의 정체성도 걸려 있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