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헐!” 2016년 6월24일 오후 2시, 영국의 EU탈퇴가 확정된 국민투표 결과에 경악의 감탄사가 저절로 흘러나왔다. 그날 한국의 주식시장은 초반부터 영국의 EU 탈퇴, 즉 브렉시트(Brexit)를 예상했는지 폭락하며 마감했지만, 영국의 EU 탈퇴를 예상하기는 쉽지 않았다. 그 전날 도박사들도 EU 잔류에 걸었으니 말이다. 게다가 영화 ‘브레이브 허트’로 잘 알려진 스코틀랜드가 2014년 국민투표에서 영국에서의 독립을 부결시킨 사례를 봤던 터라 영국의 브렉시트 국민투표도 부결될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것 같기도 하다. 게다가 영국의 여론조사도 조 콕스 하원의원의 사망 여파 등으로 브렉시트 부결 쪽이 더 높다고 하지 않았던가.
한국의 4·13총선에서 여론조사가 엉터리였듯이, 영국의 여론조사도 엉터리였다는 것이 결과적으로 드러나긴 했다. 세계적으로 여론조사의 말로를 보는 것 같기도 하다. 투표 직전에 이런 ‘설레발식 여론조사 결과’ 보도는 사실 ‘잔류 표’의 결집력을 흩뜨렸을 수 있다. 내가 ‘잔류(Remain)’에 투표하지 않아도 다른 훌륭한 유권자들이 투표하겠지 싶은 안이한 마음을 갖게 했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선거 때마다 피를 말리는 정치인들이 진술하기를, 최악의 기사는 ‘여론조사에서 압승’과 같은 기사라고 했다. 그러면 지지자들은 마음이 풀어져 투표장에 덜 가게 된다는 거다. 설상가상으로 브렉시트 투표 날에 영국에 폭우가 오는 등 악천후였다. 투표 이후 밝혀진 바대로 잔류파는 영국의 젊은이들이, ‘탈퇴파’는 영국의 노인들이 다수였다. 영국의 18~44세는 잔류를, 45세 이상은 탈퇴에 더 많이 투표했다. 24세 이하는 73%가 잔류를 원했으나, 날씨가 궂다고 투표장에 안 나가는 세대는 대개 젊은이들 아니었을까. 이제 투표하지 않는다면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없다는 교훈을 한국뿐 아니라 영국의 젊은이들도 알게 됐을 것이다.
브렉시트가 결정된 뒤 트위터 등에 “우리가 뭔 짓을 한거야(What have we done?)”라고 해시태그를 붙인 후회의 글들이 돌아다녔다. 더 재미있던 현상은 구글 검색으로 “EU를 떠나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요?(What does it mean to leave the EU)”와 “EU가 뭐에요?(What is the EU?)”와 같은 질문들이 첫 번째 두 번째 가장 많이 검색된 질문이었다. 이 검색은 브렉시트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또 EU를 떠난다는 것이 얼마나 심각한지 모르고 투표했다는 상황을 방증한다. 한쪽에서는 벌써부터 국민투표와 같은 직접 민주주의를 회의하고 있다.
브렉시트가 결정된 뒤로 한국의 신문은 1면부터 관련 기사를 도배하다시피 한다. 그러나 그 신문들의 온라인 판은 그렇지 않다. 홈페이지 머리기사에서 브렉시트 기사들은 올라갔다가 내려지기도 하고, 처음부터 머리기사에 올리지 않기도 했다. 왜 그랬을까. 브렉시트 기사로는 돈 버는 ‘클릭 저널리즘’에 도달할 수 없었던 탓이다. ‘신고립주의’의 도래일 수도 있는 브렉시트가 결정된 날에도 뉴스 소비자들이 더 많이 찾고 더 많이 클릭한 기사는 ‘홍상수-김민희 열애’ 사건과 같은 가십성 기사였다. 염증이 나지만 그것이 현실이다.
포털에서 모바일까지 진화한 디지털저널리즘이 시작된 뒤로 한국은 1980년대 이후 최고의 ‘사건·사고 기사 전성시대’를 구가하고 있다. 1면에는 나가지도 못하는 끔찍한 살인사건이나 유명인들의 자살과 방종, 성폭력과 같은 성범죄 기사들이 선정적으로 범람하고 있다. 온라인에서만, 디지털에서만.
앞으로 알고리즘에 따라서 ‘맞춤형 뉴스’시대가 열린단다. 뉴스를 취향대로 쇼핑하는 시대라는데, 주요한 결정이 있을 때마다 구글검색에 ‘그것이 무엇인가요’라는 질문들이 쏟아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골 아프게 국제뉴스를, 정치기사를, 경제기사를 읽지 않는 시대에 양질의 뉴스 콘텐츠가 생산될 수 있을까. 소비되지 않는 뉴스상품일텐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