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와 청와대가 한 판 크게 붙었다며 다들 난리다. 특히 양쪽 모두를 좋아하지 않던 이들 입장에선 무척이나 흥미진진한 모양이다. 마음에 안 든 두 편이 서로 죽일 것처럼 사생결단의 싸움을 펼치니 그 모습이 재밌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강 건너 불구경’ 중에 하나 놓치고 있는 게 있다. 세월호 청문회 중에 나온 김시곤 전 KBS 보도국장의 청와대 개입에 대한 추가 폭로나, 벌써 20일에 가까워지고 있는 세월호 유가족들의 단식 농성, 불과 몇 주 전까지만 해도 가장 큰 이슈였던 성주의 사드 반대 촛불 등은 언론으로부터 완전히 외면 받고 있다는 점이다.
악재로 악재를 덮는다는 걸 현 정권의 주요 언론 전략으로 꼽는 이들도 있지만, 이번 경우는 그래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은 언론이 ‘알아서’ 스스로 연출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좀 비약하면, 현재의 언론은 정권의 어떤 악재든 ‘호재’로 만들어 주고, 다른 악재를 덮어주는 걸 ‘알아서 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 셈이다.
더 씁쓸한 건, 이런 상황에 대한 문제의식조차 희미해진 점이다. 그따위 일들이 무슨 기삿거리라며 호통을 치는 모습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오히려 나름의 관전평으로 한마디씩 던지는 모습들이 대부분이다. 마치 주변부내지는 관객으로서의 역할에 너무 익숙해져버려 자신들이 한 때 이슈의 중심에 서 있거나 이슈의 생산자였다는 걸 잊어버린 것처럼 말이다.
언론의 그런 모습을 보니 이미 20~40세대(혹은 50까지)는 팟캐스트로, 그 이상 연장자들은 종편으로 떠난 상태라는 속설에 마음이 더 기울어진다. 한 때 팟캐스트를 임시적인 ‘보완재’로서 바라보던 주류 언론인들은 지금도 같은 생각일까? 아니면 사실상 대체재로서 자리를 잡았다고 생각할까? 그리고 이 상황에서 과연 ‘언론 정상화’가 되더라도 국민들이 기성 주류 언론으로 다시 돌아올 거라고 믿는지 궁금하다.
특히 공영언론의 중요성과 필요성에 무척 공감하는 입장에서 걱정이 많이 된다. 여소야대 국면에서 공영 언론 정상화를 위한 움직임을 기대하는 이들이 많을 텐데 과연 이런 상황에서 정치권이 알아서 이런 부분들을 해결해 줄까? 국민들은 이런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져주고 지지를 표시해줄까?
심지어 그런 생각도 든다. 그냥 이러고 있다가 언론 외적인 요소의 변화로 인하여 정말 공영 언론이 갑자기 정상화 되면 어떤 기분일까? 아 이제 제대로 방송하면 되겠구나 싶을까? 그 때 제대로 방송을 할 수는 있을까?
이런 질문들을 던진 이유가 언론인들에게 어떤 당장의 행동을 촉구하기 위함은 아니다. 그보다는 정말 그런 상황이 왔을 때가 걱정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이 오랜 시간을 인내하며 버티는 많은 이들이 기다리고 예상하는 정말 ‘그런 상황’의 모습일지가 걱정되기 때문이다.
만약 예상과 다르다면, 다른 부분을 바로 잡을 만큼의 에너지를 지니고 있긴 한걸까? 당장의 해법까진 아니더라도 거기에 대해 충분히 고민을 하고 있을까? 최소한 지금부터 고민을 해야만 한다는 문제의식을 공유하고는 있을까?
이렇게 얘기하니 내가 스스로를 무슨 대단한 선지자나 전략가인냥 내세우는 것 같아 부끄럽다. 고백하건데 조선일보와 청와대의 싸움에 대해 너무 많은 언론인들이 세심하고 꼼꼼한 관전평들을 열심히 날리는 걸 보면서 갑자기 슬퍼진 마음에 든 생각들, 이어진 생각들일 뿐이다. 그저 그들의 촌철살인을 제대로 된 이슈에 대한 것으로, SNS가 아닌 공영 언론에서 보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전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