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사태는 한국 언론의 마지막 기회다." 한국기자협회가 주최한 'Reboot 저널리즘 - '최순실 게이트' 언론의 역할과 과제' 토론회에서 나온 이준웅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의 진단이다.
18일 오후 2시30분 서울 프레스센터 외신기자클럽에서 열린 토론회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보도 과정에서 나타난 언론의 문제점, 역할과 과제 등을 논의하는 자리였다.

윤태진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교수가 사회를 맡았고 이준웅 교수가 발제자('2016년 한국 언론의 마지막 기회')로 나섰다. 이어 윤창현 전국언론노동조합 SBS본부장, 김보협 한겨레 디지털 에디터, 강혜란 한국여성민우회 이사, 심인보 뉴스타파 기자, 정준희 중앙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박사(발언 순)가 토론을 벌였다.
나라를 뒤흔든 대형 권력비리 앞에 언론의 중요성은 날로 커지고 있다. 이 교수는 지금이야말로 언론이 제 역할을 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 언론은 민주화의 기여자였다기보다 수혜자"라며 "민주화 과정이 아니라 그 이후 폭발적으로 증가한 정보·광고 수요에 대응하며 성장해 왔기 때문"이라고 말문을 열었다. 그러면서 "언론은 대통령과 그 측근들의 권력형 범죄를 고발하면서 민주화에 진 빚을 갚을 기회를 찾은 것"이라고 했다.
이 교수는 언론이 침체를 겪는 상황에서도 최순실 정국을 만들고 이끌었다는 데 큰 의미를 부여했다. 그는 먼저 △독립성 훼손 △기사 품질 외면 △언론을 향한 국민의 불신을 한국 언론의 심각한 문제로 지적했다.
독립성은 외부 요인뿐 아니라 언론사 내부의 자기통제로도 크게 훼손될 수 있다고 봤다. 이 교수는 "2014년 이정현 당시 청와대 홍보수석이 KBS 길환영 사장과 김시곤 보도국장에게 세월호 보도 관련 압력을 가했고, 공영방송은 이에 굴복했다"며 "길 사장은 내부인사지만 외부와 결탁해 스스로 통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뉴스의 품질은 언론인이 목숨 걸고 고민해야 할 목표지만 우리 언론은 그렇지 않다"며 "저품질 뉴스를 제공하고 독립성을 훼손한 결과 대중은 주류 언론을 불신하게 됐다"고 꼬집었다.

그럼에도 언론이 이번 사태를 주도할 수 있었던 것은 '정상관행'이 작동했기 때문이라고 이 교수는 말했다. 정상관행은 △언론사에서 발제-취재-보도로 이어지는 과정 △타사 간의 특종 경쟁 △그 결과로 얻은 동료 간 명성이나 조직 내 평판으로 주어지는 보상을 의미한다.
또 이 교수는 최순실 보도의 특성으로 △언론이 독자적으로 정국을 이끈 것 △한국 언론의 '정상관행'이 사태를 발전시켰다는 점을 꼽았다. 그러면서 "언론이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더라도 정상관행이 작동하면 언론의 가장 중요한 임무인 권력비판을 할 수 있다"며 "정상관행을 유지할만한 규모의 조직·환경을 갖췄는데도 보도하지 못한 언론은 무의지, 무능력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최순실 사태는 한국 언론이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며 "이런 기회가 자주 있는 것도 아닐뿐더러 정상관행이 다음에 또 작동하리란 법도 없다"고 주장했다.
언론이 얻을 수 있는 긍정적 효과도 제시했다. 이 교수는 "언론과 역사적 순간을 함께한 이용자들은 연대감을 형성하며 언론사의 가치·이념적 기반이 될 것"이라며 "최순실 보도는 우리사회에서 언론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하고, 할 수 있는지 판단하는 기준으로 자리 잡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교수는 최순실 보도가 한국 언론의 질적 성장도 이뤄냈다고 덧붙였다. 그는 "TV조선, 한겨레, JTBC의 보도는 공식 서류, 당사자 증언, 컴퓨터 이용 기록 등 사실에 기반을 둔 증거가 주장으로 이어진 것"이라며 "당파성을 넘어 사실 확인으로 권력비판에 나선 것은 역사적 전진"이라고 말했다.

발제 후 이어진 토론에서 윤창현 전국언론노동조합 SBS본부장은 "(최순실 보도는) 저널리즘의 기본 원칙을 지킨 보도가 경쟁력을 발휘한다는 게 명제가 아니라 데이터로 증명되기 시작한 기념비적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윤 본부장은 "2008년 미국 리먼브라더스 사태 후 전 세계에서 언론사가 늘어난 곳은 우리나라 뿐이다. 극심한 경쟁에 노출된 언론사들은 미디어환경 변화까지 맞닥뜨려 극심한 경쟁에 노출됐다"며 "민영방송인 SBS는 언론사로서 공적 책무와 주주의 이익 실현 사이에서 끊임없이 충돌했다. 저널리즘 원칙을 훼손하지 않으면 회사가 죽는다는 논리를 강요받아 왔다"고 전했다.
윤 본부장은 "JTBC 태블릿PC 보도 후 SBS도 삼성 개입 등 수차례 특종기사를 냈지만 주목받지 못했다"며 "반성 없이 보도 방향을 바꾸면 언젠가 또 그럴 수 있다는 경험적 의심을 시청자들은 하고 있다. 어떻게 해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 지속적으로 논의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보협 한겨레 디지털 에디터는 "한겨레가 9월20일부터 지속적으로 보도하지 않았다면 지금처럼 모든 언론이 뛰어든 상황은 아니었을 것"이라며 "다만 JTBC에 태블릿PC를 건넨 제공자가 한겨레와 먼저 접촉했는데도 우리가 그것을 확보하지 못했다는 게 뼈아픈 부분"이라고 했다.
김 에디터는 "한국보다 유럽, 미국 언론인들의 자질이 더 뛰어나다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며 "현장에서 만난 우리 언론인 대부분은 기자정신이 투철하지만 정보공개 청구의 어려움, 정치권력의 폭압성, 서양과 다른 언론 토양 등으로 탐사보도나 데이터저널리즘에 나아가지 못하는 측면이 있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강혜란 한국여성민우회 이사는 최순실 보도로 저널리즘이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는 접근에 신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강 이사는 "총선 결과에서 여당이 참패하지 않았다면 TV조선의 보도가 가능했겠느냐는 의문이 든다"며 "최순실 게이트에 대한 언론들의 대응은 정권 교체를 염두에 둔 전략의 연장선상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강 이사는 "언론의 기회주의적 태도를 다시 한 번 확인하는 계기로 최근 보도의 흐름을 이해하고 있다. 지금 언론은 국민 눈치를 보면서 최소한의 역할을 해내고 있는 것"이라며 "진정한 의미의 언론개혁이 이뤄질 수 있도록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과 부역 언론인을 걸러내는 데 사회가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당부했다.
심인보 뉴스타파 기자는 "몇 년 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와) 비슷한 이야기를 들어본 적 있다. 당시 취재 단서를 잡지 못했지만, 저처럼 권력 핵심과 떨어진 기자도 알았다면 권력과 가까운 주류매체 기자들은 많은 부분을 인지하고 있었을 것"이라며 "2년 전 세계일보가 비선 실세를 폭로했을 때 다른 기자들은 받아 쓰지 않았다. 이번에 훌륭한 보도를 했더라도 그때의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고 꼬집었다.
심 기자는 "언론 상황이 나빠진 데다 SNS의 발달과 독립언론의 역할로 수용자들이 언론의 민낯을 많이 알게 됐다"며 "뉴스 수용자들의 높아진 인식을 언론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지금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관련) 좋은 보도로 그 틈이 메워진 것처럼 보이지만 여전히 의구심과 견제의식을 가지고 지켜봐야 할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정준희 중앙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박사는 "언론의 위기는 언론이 자초했다. 기사 품질의 문제이기도 했지만 소문, 루머, 지라시로 대체 가능한 정보들을 제공했기 때문"이라며 "사장이나 편집국장이 상위에 올렸어야 할 정보들을 빼고 (특히 공영방송에서) 언론을 이용해 이해관계를 충족하려 했다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정 박사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이후) 언론은 지라시를 소스로 삼지 않고 이전과 다른 탁월한 정보들을 보여주고 있다"며 "정보덕후적인 언론인이 탁월성을 발휘하면 상업적으로 성공하고 명성을 얻어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순환구조가 만들어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언론의 기회주의적 행태들이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김달아 기자 bliss@journalist.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