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이 촉발한 범죄의 파도'(Media Crime Wave)라는 개념이 있다. 특정 범죄에 대해 언론이 집중보도를 하면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그 유사한 범죄가 증가한다. 그러면 언론은 그것 보라며 이후에 등장한 유사범죄를 다시 연이어 보도한다. 그렇게 보도의 홍수와 모방범죄, 범죄신고가 맞물려 돌아가며 사회 전체가 쓰나미에 휩쓸린다. 언론이 선정적이고 과장된 보도를 통해 하나의 트렌드를 만들어내면 그 트렌드는 허구의 세계를 형성하고 그 허구의 세계는 권력과 자본, 미디어의 메커니즘에 의해 실체를 가진 정치사회적 현실로 환생할 수 있음을 경계하라는 의미이다.
대표적인 것이 종북몰이다. 굳이 따로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어떤 이는 지금 벌어지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언론의 집중포화도 미디어의 하야몰이(?)가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다. 그러나 국민 다수가 국정농단을 비판하고 100만의 촛불이 연일 밝혀지는가 하면 권력과 유착한 언론을 국민이 질타하며 정국을 주도하는 작금의 상황을 미디어의 하야몰이로 설명하는 건 난센스다. 언론이 성역으로 금기시하던 최고 권력자의 비리에 이제 겨우 포문을 열고 비리의 일각이 드러나기 시작하는 데 그 부작용을 걱정하는 것도 기우라 본다.
그것이 기우이자 난센스임을 보여주는 실례가 청와대 기자들의 침묵이다. 권력의 핵심부에 접근해 비선실세의 국정농단을 최일선에서 감시할 기자들이 질문을 삼가고 국정농단 관련 청와대 발 기사도 찾아보기 힘든 상황이다.
“청와대가 허용하지 않았고 기자단이 계획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기자라면’ 물어야 한다. 물음을 금지하는 자들이 누구인지 밝히고 싸워야 한다. 국민의 탄식과 분노가 하늘을 찌르고 있는 오늘, 언론의 본령과 사명이 무엇인지 절대 잊지 않길 바란다.”
언론단체 비상시국회의가 지난 15일 기자회견까지 열어 질책한 내용이다. 비상시국회의는 청와대 출입기자들을 향해 “대통령에게 질문하라”, “질문하지 않는 청와대 출입기자? 언론 책무 방기행위”라고 일갈했다. 일부에서는 청와대 기자들에게 “질문을 하지 않는 수준을 넘어 권력과 밀착관계에 있다고 생각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박근혜·최순실 체제의 부역자를 다루는 뉴스타파 기획시리즈에서는 청와대 출입기자가 5번째 부역자 그룹으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기자는 취재원에 의존해 기사를 쓴다. 그러나 취재원이 감추고 싶은 것이 많고 부정직하고 조직적이라면 기자의 취재보도는 어지러워진다. 특히 정치권력은 언론을 속이고 이용해 자신들의 이미지를 구축하고 이미지 구축에 성공하면 이를 바탕으로 허구의 세계를 창조해 낼 수 있다. 그리고 정치세력에 대한 허상은 그 정치세력을 선거에서 이긴 집권세력이란 실체로 바꾸어 내는 배경이 된다.
미디어가 뉴스를 마구 쏟아내는 Media Crime Wave를 이야기했지만 거꾸로 쏟아져 나와야 할 뉴스가 전혀 나오지 않는 ‘무작위의 작위’도 마찬가지이다. 최고 권력을 날카롭게 감시하고 무섭게 질타할 담당 취재진이 비판적 시각을 잃고 받아쓰기에 골몰한 것이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허구의 세계를 만들어 낸 것이 아닌지 반성하자. 박근혜 대통령 지지율 50%, 콘크리트 지지율 30%는 언론의 굳게 다문 입, 찬양일색의 청와대 기사가 그리 만든 것은 아닌가…. Media Crime Wave를 역으로 적용한 사례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부정직한 취재원인 최고 권력에게 의존해 거짓투성이 발언과 부정확한 이미지를 장기간 보도할 경우 국민은 언론에 의해 정치무능과 권력비리에 대한 경각심을 잃게 되고 마땅히 필요한 정치적 행동에 나서지 못할 수 있다. 이것도 언론의 책임이다.
결국 박근혜·최순실은 우리가 만들어 온 진격의 거인이다. 이번 게이트는 우리가 만든 허구의 세계가 곪아 터지고만 사건이다. 글을 닫으며 차라리 청와대 내부를 몰라서 하는 소리라는 반박이 기다려진다. 이렇게 무기력하게 입을 닫을 리 없는 후배들이라고 믿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