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 기어 바꾼 디지털 혁신…구성원 힘 모아 속도 낼까

지면용 발제 않고 온라인기사 송고
신문제작 라이팅에디터제 도입
3개월마다 조직개편·인사 실시
기자들 "공감하지만 혼란스러워"
양질의 콘텐츠·경쟁력 확보 관건

“올해 안에 강을 건너야 한다.” 홍정도 중앙일보 사장은 지난달 28일 ‘디지털 혁신 설명회’에서 연내 디지털 전환을 끝내겠다는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홍 사장은 “조간 전환, 디지털 전환 모두 강을 건너는 일에 비유하고 싶다”며 “지금 딛고 있는 땅은 서서히 가라앉고 있다. 건너편 땅을 밟으려면 차가운 강을 건너야 한다”고 말했다.


중앙일보의 본격적인 ‘디지털 전환’ 선언은 홍 사장의 발언에서 보듯 “가만히 있으면 살아남기 어렵다”는 위기감에서 출발했다. 앞서 중앙일보는 창간 50주년을 맞은 2015년부터 자체 혁신보고서를 발간하며 디지털 전환에 속도를 냈다. 이듬해 후안 세뇨르 미디어 컨설턴트의 진단을 받은 뒤 통합뉴스룸을 구축했고 아이(EYE)24, 에코(ECHO) 등 새로운 디지털 조직을 선보였다.


이어 지난해 12월 조직된 뉴스룸혁신추진단이 지금까지의 실험을 바탕으로 구체적인 ‘디지털 퍼스트’ 방안을 마련했다. 취재기자들은 온라인 중심으로 기사를 작성하고, 지면 콘텐츠는 별도 인력이 전담하는 새로운 업무구조다.


중앙일보 관계자는 “기자들이 지면에 쏟는 힘을 줄여 디지털에 열중하도록 한 것”이라며 “2015년 혁신보고서와 2016년 후안 세뇨르 보고서로 상황을 진단했고 EYE24 등으로 실험했다. 이제 뉴스룸혁신추진단이 만든 실행안을 적용하는 단계”라고 설명했다.


중앙일보는 전면적인 디지털 이행의 강물에 뛰어들었다. 지난 3일부터 취재기자들의 업무는 디지털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 기자들은 지면용 발제를 하지 않고 먼저 온라인에 기사를 송고한다.


지난달까진 지면과 온라인 기사를 따로 생산하거나 오후 4~5시 마감시간에 온라인 기사를 지면 글자수나 형식에 맞춰야 했다. 하지만 이제 이 과정을 거치지 않는다. 중앙일보 A기자는 “업무 구조가 달라진 첫날, 아직까지 큰 차이는 없지만 지면 마감이 사라졌다는 데 적응이 필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지면 기사는 ‘신문제작담당 라이팅에디터’가 맡는다. 중앙일보는 이 직책을 신설하면서 3일자로 차장~선임기자급 기자 10명을 발령했다. 이들은 사회, 외교안보, 고용노동, 문화, 경제, 산업 등 각 분야에 정통한 기자들이다. 온라인에 출고된 기사를 지면형식으로 다듬고, 여러 스트레이트 기사를 모아 비교·분석·해설을 더해 깊이 있는 콘텐츠로 만드는 역할이다. 중앙일보는 4일자 1면 톱으로 배치한 ‘뉴스분석’ 기사에 라이팅에디터와 취재기자의 바이라인을 함께 달았다.


콘텐츠 역량을 지면에서 디지털로 옮기는 개편을 통해 중앙일보는 하루 평균 500만인 사이트 페이지뷰(PV)를 2배로 늘리겠다는 목표를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실시간 이슈나 연성기사는 속보대응팀인 아이24가 맡고, 에코팀이 디지털 플랫폼별 이용자를 분석해 콘텐츠를 확산한다. 취재기자들이 작성한 ‘차별화된, 통찰력 있는’ 온라인 기사로 이용자들을 사이트에 오래 머물게 한다는 전략이다. 기사는 PV, 체류시간, 순환율(사이트 내에서 다른 기사를 보는 비율) 등을 기준으로 평가한다.


중앙일보는 이 업무구조를 3개월간 유지한다. 홍 사장은 설명회에서 “이번 실험이 실패한다면 3개월 이후 조직개편 및 인사를 통해 다른 열쇠를 만들어 다시 실험할 것”이라며 “이를 반복하고 또 반복해 연내에 성공의 실마리를 찾아보겠다”고 밝혔다.


‘디지털 퍼스트’라는 방향에 중앙일보 기자 대부분은 공감하고 있다. 하지만 새로운 혁신안이 발표된 후 그 방식과 절차에 혼란스러워하는 분위기도 있었다. 디지털 중심 기조는 2년 전부터 이어졌고 몇 주 전부터 이번 업무 개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긴 했지만, 공식 설명회에서 실제 적용까지 걸린 시간은 단 일주일이었다.


중앙일보 B기자는 “디지털 혁신을 해야 살아남는다는 것에 모두 동의하지만 막상 그 대상이 된 우리는 혼란스럽다”며 “인사는 보통 당사자의 의사를 반영해 조율하는데 이번엔 급작스럽게 이뤄져 다들 뒤숭숭했다. 3개월 뒤에도 반복될 것 같다”고 전망했다. C기자는 “디지털로 가자는 공감대가 있지만 이번엔 실질적인 여론 수렴 없이 위에서 급하게 실행한 측면이 있다”고 덧붙였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디지털 드라이브에 대한 기대감과 회의적인 시각이 교차하고 있다. D기자는 “그동안 우리가 (디지털 퍼스트를) 몰라서 못했던 것인지 알면서도 하기 싫어했던 것인지 등 현실적인 이야기가 나온다”며 “어차피 안 될 것이란 패배주의도 있다. 하지만 일단 닥쳤으니 해보자는 생각”이라고 밝혔다. E기자는 “이 방향에 동의한다면 전사적으로 가야 하는 게 맞다”며 “관성에 젖어 지면을 계속 붙잡고 있으면 실패할 것이다. 혁신의 주체인 기자들이 그 대상이 대선 안 된다”고 했다. A기자는 “다들 갸우뚱하면서도 가라니까 가긴 한다”며 “이제 막 시작했으니 어떻게 되는지 지켜보자는 반응이 많다”고 전했다.


국내 언론계는 전례 없는 중앙일보의 실험에 주목하고 있다. 한 일간지 간부는 “특히 신문사라면 중앙의 시도에 촉각을 세울 수밖에 없다. 다들 언젠간 그렇게 가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섣불리 도전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라며 “연내 자리를 잡는다면 우리도 따라가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중앙일보가 올해 안에 차가운 강을 건너 새로운 땅에 안착하려면 여러 과제를 풀어야 한다. 먼저 품질이 좋으면서 온라인에서도 ‘잘 팔리는’ 콘텐츠를 만들어야 한다. PV 상승뿐 아니라 온라인 광고단가를 높이거나 온라인에서 또 따른 수입원을 찾는 것도 중요하다. 오세욱 한국언론진흥재단 선임연구위원은 “질 높은 콘텐츠를 디지털에 먼저 공개한다는 관점에서 중앙의 시도는 긍정적”이라며 “다만 자칫하다 온라인 속보에 치우친다면 기자들의 노동강도만 높아지고 혁신은 없던 일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새로운 직책인 라이팅에디터의 역할 정립, 온라인·지면 기사의 경쟁력 확보 등도 필요하다. 최진순 한국경제 기자(건국대 언론홍보대학원 겸임교수)는 “종이신문 제작에 투입되는 물리적 업무를 줄여 디지털에 매진한 것은 국내 언론 환경에서 굉장히 중요한 전환점이다. 다른 신문들에 반면교사가 될 것”이라며 “디지털 뉴스의 이해도를 높이기 위한 기자 재교육, 지면 콘텐츠의 재해석이 필요하다. 구성원이 공감대를 얻을 수 있는 성과 측정모델도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달아 기자 bliss@journalist.or.kr
최승영 기자 sychoi@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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