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찾사’. 최순실을 찾는 사람들을 줄여 부른 것으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취재한 한겨레 특별취재반을 말한다. 최찾사의 치열한 취재가 없었다면 대통령과 재벌의 검은 거래, 특정 문화·예술인을 정부 지원에서 배제하는 ‘블랙리스트’ 등은 지금도 진행되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최찾사는 최순실을 추적하면서 100명이 넘는 취재원을 만났다. 그 가운데서 가장 중요한 취재원은 K스포츠재단 사무총장을 지낸 정현식씨 가족이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와 같은 취재는 아무리 유능한 기자라도 실체적 진실에 접근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내밀한 사정을 잘 아는 내부고발자의 조력이 있어야 은폐된 진실의 문을 두드릴 수 있다. JTBC의 태블릿PC 보도도 건물관리인 노광일씨의 도움 때문이었다. 그런 점에서 정현식씨 가족도 ‘숨은 의인’이었다. 정씨는 최순실의 지시로 SK, 롯데, 부영 등을 찾아가 돈을 요구했고, 그때마다 안종범 수석이 어찌됐냐고 전화했다고 진술하고 구체적인 증거를 제시해 청와대와 재벌 간 뇌물의 연결고리를 확인해줬다. 부인은 진실을 말하는 것이 최선이라며 남편을 설득했고, 아들은 기자 뺨치는 취재력과 정보력으로 언론 보도 수개월 전부터 최순실을 추적한 자료를 한겨레에 제보했다.

 

기자협회보는 지난 3일 경기도 남양주시 한 카페에서 정현식씨 가족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정씨는 “세간의 주목을 받는 걸 원치 않는다”며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이다. 침소봉대해서 나를 부각시키지 말아달라”고 말했다.

 

-최찾사는 선생님 가족을 중요한 취재원으로 꼽았습니다.

 

“사건이 표면화한 초기에는 언론이나 사법당국이 K스포츠재단 내부에서 일어난 일을 소상히 파악할 수 없었던 단계였습니다. 그 때문에 아무래도 제가 역할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생겼던 같습니다.”

 

-처음엔 “K스포츠재단 운영은 잘 모른다”며 인터뷰를 계속 거부하셨죠?

 

“재단을 떠난 입장이라 관심을 받는 게 부담스럽다고 말했지만 속으론 무섭고 두려웠어요. 한 미약한 개인이 살아있는 권부에 맞설 결심이 서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류이근 기자는 2016년 9월초 남양주 마석으로 향했다. 최찾사가 꾸려진 며칠 후다. ‘K스포츠재단에 집중하자’는 김의겸 선임기자의 취재 방향에 맞춰 재단 사무총장을 지낸 정현식을 만나러 간 것이다. 하지만 정현식은 지방에 있었다. 갑자기 찾아와 결례를 범했다며 부인에게 명함만 건네고 돌아섰다. 류이근은 며칠 뒤 정현식과 통화에 성공했으나 “재단에 대해 할 말이 없다”는 말만 들었다.

 

-한 달 만에 인터뷰에 나선 이유는?

 

“차츰 제 결심이 굳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절대 다가오는 위험으로부터 등을 돌리고 달아나려 해서는 안 된다. 그러면 위험은 배로 늘어난다. 진실을 알면서 부정하거나 덮어 두는 것은 비겁하고 위선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원래 낙관론자입니다. 뉴욕타임즈 칼럼니스트 토마스 프리드만은 ‘비관론자는 대체로 옳고 낙관론자는 대게 그르다. 하지만 대부분의 위대한 변화는 낙관론자가 이끌어낸다’고 했습니다. 어쩌면 제가 감내하기 힘든 시련이 다가올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진실을 밝히는 것이 옳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JTBC 태블릿PC 보도 하루 전인 10월23일 김의겸·류이근 기자를 만났습니다.

 

“모든 것을 밝히기로 결심하고 맞이했으나 걱정이 들기도 했습니다. 이 분들이 민감한 얘기를 팩트 위주로 공정하게 알려줄까라는 생각, 어떤 성향을 가지고 이 사건을 보고 있을까도 궁금했죠.”

 

김의겸은 정현식과 인터뷰에 앞서 한겨레 20년의 역사를 담은 ‘희망으로 가는 길’을 건넸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했다. “한겨레는 가난하고 작은 신문사입니다. 정치적 견해는 선생님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불의를 보고서는 절대 타협하지 않는 신문입니다. 그리고 정직합니다. 저희들의 입맛에 맞게 사실을 왜곡하지 않습니다. 저희들을 믿고 선생님이 보고 들으신 걸 말씀해주십시오.”

 

-김의겸의 말이 마음의 빗장을 여는 데 영향을 미쳤을까요?

 

“이 일이 있기 전까지 저는 한겨레신문에 대해 큰 관심을 두지 않고 있었습니다. 태생이 경상도에 정치적 성향도 그때까진 보수에 가까운 편이었거든요. 영어 속담에 ‘To see is to believe’라는 말이 있죠. 두 분을 직접 뵙고 그런 말을 들으니 마음이 움직였습니다. 터놓고 얘기해도 되겠다 싶더군요. 두 분의 진솔한 말과 눈빛에서 강직함과 진실을 추구하는 의지를 읽을 수 있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제 판단이 틀리지 않았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한겨레와 두 차례 인터뷰(10월23일, 10월26일)를 했습니다. 이 때만해도 박근혜 정부의 위세는 서슬 퍼랬는데 두렵지 않으셨나요?

 

“형언할 수 없는 두려움이 엄습했죠. 하지만 저로서는 물러설 수 없는 상황이라 배수의 진을 친 셈이죠. 설사 일이 잘못돼 곤경에 처한다 하더라도 진실을 밝히는 데 밑거름이 되었다는 한 줄 기록만이라도 남기고 싶었습니다. 단테는 <신곡>에서 지옥의 입구에는 ‘여기 들어오는 자는 모든 희망을 버려라’고 쓰여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진실을 알려 변화의 희망을 남길 수 있다면 그것이 제 소임이라 결심했습니다.”

 

정현식이 인터뷰를 작심하기까지 그의 부인과 아들의 활약이 컸다. 10월18일 정현식의 부인 이정숙씨는 류이근에게 먼저 전화를 걸어 검색창에 더블루케이를 쳐보라고 제보했다. 이씨를 통해 통화가 연결된 아들은 “더블루케이의 등본을 5개월 전에 떼어봤다. 최순실이 K스포츠재단의 자금을 빼내려고 만든 회사”라고 말했다. 당시 최찾사를 비롯해 경향신문과 JTBC 등은 더블루케이의 정체를 추적하고 있던 참이었다. 그런데 두 사람은 5개월 전에 더블루케이의 실체를 알고 있었다. 모자의 정체가 궁금했던 류이근은 10월20일 두 사람을 직접 만났다. 공교롭게도 아들 이름은 ‘의겸’이었다. 최찾사를 이끄는 김의겸과 똑같았다.

 

-2016년 5월이면 언론도 K스포츠재단의 존재를 모를 때인데, 더블루케이의 등기부등본을 떼어봤네요.

 

“아버지가 한 번은 지나가는 말로 이러셨어요. K스포츠재단 업무 회의를 더블루케이에서 최순실 주재로 한다고. K스포츠재단은 더블루케이와 전혀 관계가 없는 조직인데 왜 그럴까 생각했죠. 그래서 더블루케이의 법인등기부를 떼어 봤는데 최순실의 이름은 없더군요. 하지만 K스포츠재단을 이용해서 더블루케이로 돈을 빼돌리려는 게 분명해보였어요. K스포츠재단에서 기획하면 정부가 움직여 사업이 이뤄졌거든요.” (의겸씨)

 

결정적 제보의 발단은 경향신문이 10월17일 1면 머리기사로 K스포츠재단 핵심관계자 등 2명이 재단 설립 직후에 한 재벌그룹(나중에 SK로 밝혀짐)을 찾아가 80억원을 요구했다는 내용의 기사를 실은 것이다. 이정숙씨는 남편이 SK에 가서 돈을 뜯어내려 한 범인으로 몰리는 상황을 걱정했다. 가만히 있다가는 남편이 억울하게 누명을 쓸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9월 초 남편을 찾아왔던 예의바르고 겸손했던 기자가 생각났다. 류이근에게 전화를 걸었다.

 

-류이근 기자에게 검색창에 더블루케이를 쳐보라고 하셨죠?

 

“남편이 다니는 회사의 ‘회장님’이 최순실인줄 꿈에도 몰랐어요. 아들이 인터넷에서 보여준 사진(2013년 7월19일 서울 승마경기장에서 정윤회와 함께 찍힌 최순실의 모습)을 보고 얼마나 놀랐던지. 염려가 되는 데 왜 그리 안하겠어요. 최순실이 어떤 사람인지 알려야 했죠. 남편한테 불리한 기사가 나오는데 증거는 인멸이 되고, 검찰은 아직 수사에 적극적이지 않고…. 하루속히 진실이 드러났으면 하는 심정이었죠.” (이정숙씨)

 

-왜 한겨레에 제보를 했나요?

 

“국민들이 최순실 사건을 접하면서 ‘황당하다’ ‘어이가 없다’라고 하다가 점점 시간이 지나면서 ‘어떻게 이럴 수가 있나’라고 분노했죠. 언론 보도 두세 달 전부터 진실의 얼개를 알고 있던 저는 분노가 켜켜이 쌓였어요. 청와대는 뻔뻔하게 거짓말을 하고 검찰은 수사에 미적거리고, 한 언론은 보도하다가 중단해버리고. 타이밍을 보다가 이제는 제보를 하자고 결심했죠. 처음부터 한겨레를 염두에 뒀어요. 언론 보도를 지켜봤는데 한겨레가 고군분투하며 계속 끌고 가더군요. 김의겸 기자의 칼럼 ‘조선일보 방상훈 사장님께’를 보고선 확신이 들었습니다. 한겨레는 정부에서 꼬투리 잡으려고 해도 계속 싸울 수 있고, 흔들리지 않겠구나 생각했죠.” (의겸씨)

 

경향신문은 10월21일 1면에 <‘대기업 80억’ 요구했던 사람은 K스포츠재단 정현식 사무총장>이라고 보도했다. 기사에 정현식의 이름까지 등장하자 가족들의 충격은 컸다. 의겸씨는 하루빨리 진실을 증언하는 게 살 길이라고 믿고 아버지를 설득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미국에 잠시 나가있던 정현식은 10월22일 입국했다.

 

-경향신문 보도를 보고 어떤 생각이 들었나요?

 

“당시 저는 집안 일로 미국에 체류 중이었는데, 그 보도를 접하고 바로 귀국을 했습니다. 귀국하자마자 한겨레와 접촉을 했어요. 독자들이 그 기사를 읽어보면 최순실은 독일로, 차은택은 중국으로 도피 중이고 정현식도 같은 목적으로 미국으로 도피한 것처럼 해석할 여지가 충분히 있었습니다.”

 

-30년 넘게 은행원으로 일했는데, K스포츠재단은 어떤 인연으로 참여하게 됐나요?

 

“2006년 말 은행을 그만둔 후 미국에서 조그마한 사업체를 경영하다 교통사고로 중상을 당했습니다. 2011년 5월 귀국해 모 법무법인에 금융전문위원으로 근무하다 알게 된 분이 있었어요. 2015년 11월쯤 그 분에게 지나가는 말로 일자리 하나 좀 알아봐 달라고 했어요. 며칠 후 자기가 아는 사람이 신설 추진 중인 재단에서 일할 사람을 찾는다고 하면서 제 이력서를 달라고 하더군요.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안다는 사람이 최순실씨의 지시로 사람을 찾고 있었던 겁니다. 최씨와 면접을 본 후 이듬해 1월부터 일하게 됐습니다. 당시엔 최씨의 신원에 대해 전혀 듣지도 알지도 못한 상태였죠. 나중에 은행 후배에게 들어보니 청와대에서 제 신상을 조회했다고 하더군요. 돌이켜 보면 그건 하나의 운명적인 만남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K스포츠재단에서 일하면서 수상하다는 생각은 안 해보셨나요?

 

“최씨가 어떤 건을 지시하고 하루, 이틀 지나면 안종범 수석이 동일한 내용을 언급했기 때문에 청와대가 관련돼 있다는 확신이 들었죠. 추가 출연금 모금 때도 이미 얘기가 됐다고 했어요. 재무담당인 저도 재단의 재정을 충실히 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해 기업들을 만났죠. 그러나 SK의 경우 청구 금액이 많다거나 지원 내용에 대해 꼬치꼬치 캐묻고, 부영은 세무조사의 부당성을 얘기하더군요. 이런 일을 경험하면서 머지않은 장래에 권력형 비리 문제가 터질 것은 예감이 들었어요. 일에 흥미가 떨어지고 두려움이 마음에 자리하기 시작했습니다.”

 

-6개월 만에 그만두고 나오셨죠?

 

“네. 어차피 오래 다닐 직장은 아니라고 판단했는데, 초대 정동구 이사장이 취임 후 한 달여 만에 밀려났습니다. 그런 와중에 K스포츠재단의 연구용역을 더블루케이 앞으로 주고 용역비를 더블루케이로 지급하라는 최씨의 지시가 있었습니다. 제가 여러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그 일이 성사되지 못했어요. 그때부터 최씨의 눈 밖에 나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정동춘 이사장이 새로 부임했습니다. 원래 이사장 자리는 비상근이라 급여, 업무추진비, 승용차 등을 제공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최씨가 그 자리를 상근으로 바꾸고 정동춘씨를 이사장으로 앉히면서 저와는 연락을 거의 단절해 버립니다.

 

그 후 재단에서 창단을 추진하던 태권도시범단 지도교수 연봉 책정을 위한 후보자 면접이 있었습니다. 이미 사무총장으로서 실질적 기능을 못하던 저는 흥미를 잃고 있었지만 정동춘 이사장의 요청도 있고 해서 그냥 참석만 하고 아무런 의사표현을 하지 않았습니다. 정 이사장이 연봉 합의 결과를 최씨에게 보고한 며칠 후 연락이 없던 최씨가 전화를 걸어 왔습니다. ‘지도교수 연봉을 왜 그렇게 높이 책정했느냐’, ‘이 재단이 어떻게 설립되었는데 재단을 말아먹으려고 하느냐’며 날카로운 음성으로 따지고 ‘독일에 가는데 다녀와서 보자, 그냥 두지 않겠다’고 폭언을 했어요. 그런 일이 있은 후 정동춘 이사장이 ‘안종범 수석이 총장님을 비상근으로 일하게 하면 어떻겠느냐고 물어 본다’라는 취지로 말을 했고, 그만 두라는 얘기로 받아 들여 미련 없이 사직서를 던졌습니다.”

 

-K스포츠재단을 나올 때만 해도 최순실이 국정농단의 주범으로 비화될 줄은 상상도 못하셨죠?

 

“그렇죠. 저는 최씨가 개입한 일을 전부 알 수 있는 위치가 아니라 단순히 재단 관련 일만 집중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건이 봇물처럼 터지면서 자고 나면 또 다른 일에 관여한 것이 드러나더군요. 그 수렁에서 빠져 나오길 정말 잘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최찾사는 최순실 게이트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담은 책 ‘최순실 게이트’에서 “정현식이 인터뷰에 나서서 세상에 진실을 알리는 나팔을 불지 않았다면, 지금 우리 눈앞에 펼쳐지는 역사는 조금 다르게 진행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라며 선생님 가족의 용기를 평가했습니다.

 

“그렇게까지 의미를 부여해주니 감사합니다만 저의 가족이 아니었어도 이 사건을 가릴 수는 없었다고 생각해요. 단, 한 가지 말씀 드릴 수 있는 사실은 집사람은 평범한 가정주부지만 불의 앞에서는 시비를 분명하게 가리는 성격이고, 아들은 그 엄마를 닮아서 용감하기도 하지만 사물을 직관하고 판단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능력이 남다른 데가 있는 편입니다.”

 

사실 그랬다. 이정숙씨는 창조한국당 서초구 여성위원장을 할 만큼 진보적 성향의 정치의식을 지녔고, 아들 의겸씨는 이 사건이 벌어지기 훨씬 전부터 최순실을 뒷조사할 정도로 정의감이 남달랐다. 의겸씨는 아버지 휴대전화의 데이터를 복구해 아버지가 최순실, 안종범과 주고받은 문자, K스포츠재단과 더블루케이, 문체부 내부 자료 등을 최찾사에 건넸다. 빼도 박도 못하는 물증이었다. 류이근은 ‘최순실 게이트’에서 “의겸씨는 법리에 밝았을 뿐만 아니라 웬만한 형사 못지않은 수사력도 지니고 있었다”며 “취재원이 아니라 취재를 함께 하는 동료였다”고 썼다.

 

-문화계 블랙리스트 등 국정농단 관련 재판 1심 선고가 대부분 마무리됐습니다. 소회를 듣고 싶습니다.

 

“나라의 불행이고 비극입니다. 국가와 사회의 리더들이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 보여준 극명한 사례들이죠. 세상사 흐름은 사필귀정이라 생각합니다.”

 

-참고인 신분으로 검찰에 수차례 출석하고, 증인으로 법정에 서기도 했습니다.

 

“검찰, 국회, 헌법재판소, 법정 등으로 수없이 많이 불러갔어요. 정신적 육체적 스트레스가 말할 수 없었지만 기피한 적은 없었습니다. 이 일이 있기 전까지 비교적 안정된 직장에서 별 굴곡 없는 사회생활을 했습니다. 평범했던 일상에 거대한 태풍이 들이 닥치니까 일종의 결기 같은 것이 생기더군요. ‘힘들지만 진실을 말할 기회를 준 것이다. 스스로 정치적인 계산은 하지 말자. 확실한 원칙 하나만 고수하자. 내가 경험하고, 기억하고 있는 사실을 그대로 증언하자.’ 그렇게 다짐하니 나아가야할 방향이 뚜렷해졌습니다.”

 

-이재용 뇌물재판 1심 선고가 8월25일, 박근혜 1심 선고는 10월로 예정돼 있습니다. 시민의 한 사람으로 재판부에 하실 말씀이 있다면.

 

“엄정 중립을 지켜서 진실에 입각한 현명한 판결을 내릴 것으로 기대합니다. 부탁을 드린다면 ‘지금 내가 내릴 결정에 대해 나 자신에게, 국민에게, 그리고 내 아들 딸에게 한 점 부끄럼 없이 떳떳하게 설명할 수 있다’라는 부동의 결심을 갖고 임해 주십사 하는 것이죠.”

 

-새 정부가 들어서는데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새 정부에 바라는 말씀이 있다면

 

“먼저 새 정부가 들어서는데 큰 역할을 하신 분들은 저보다는 추운 겨울 내내 길거리에서 진실규명을 외친 시민들입니다.

 

우리도 이제는 국가 통수권자가 바뀔 때 해피엔딩하는 장면을 꼭 보고 싶습니다. 다행히 새 정부는 현재까지 좋은 반응과 지지를 얻고 있어서 대다수 국민의 기대에 잘 부응하리라 믿습니다. 다만 한 가지 말씀드린다면 아무리 통치권자가 잘 하려고 해도 사람의 일인지라 국내외 여건의 변화나 불가피한 정책의 변경 등으로 가끔은 국민의 지지를 얻지 못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습니다. 이럴 경우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는데, 제 생각엔 문 대통령께서는 충분히 그런 소리에 귀 기울이신 분이라고 믿습니다만 적극적인 지지층에서도 이런 비판을 받아들이는 포용력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약간 우려스러운 것은 조금이라도 비판 의견이 나오면 이걸 용납하지 않는 듯한 분위기를 감지하게 됩니다. 이는 다수의 국민이 엄청난 대가를 치르고 얻은 건전한 민주주의 발전에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올해 1월 정현식씨 가족은 김의겸·류이근과 남양주 마석에서 재회했다. 용기를 내서 진실을 밝혀준 데 대한 고마움을 표시하고 싶다며 두 기자가 찾아온 것이다. 아파트 입구까지 나와 기다리던 정현식은 김의겸을 와락 껴안았다. “나도 모르게 울컥했어요. 험난한 과정을 겪어온 생각들이 머리에 스치고 만감이 교차하더군요. 진실을 말하려는 저를 믿고 꾸준하고 일관되게 팩트 위주의 보도를 해주었습니다. 너무나 고마운 기자들입니다.”

 

김성후 기자 kshoo@journalist.or.kr

강아영 기자 sbsm@journalist.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