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감독 책무 내던지고 경영진 ‘호위무사’ 전락

해체론까지 나오는 방문진·KBS이사회

이진우·김달아 기자 | 2017.09.13 14:15:45

금쪽 같이 아끼던 방송을 내려놓은지도 벌써 10일째. 고대영(KBS)·김장겸(MBC) 사장의 사퇴를 요구하며 파업에 뛰어든 언론인은 6000여명이다. 지난 8일에는 KBS PD 부장 15명이 보직을 사퇴, 파업에 동참했다. 대세가 기우는 징조일까. 지난 정부에서 추천을 받고 선임된 유의선 방문진(방송문화진흥회) 이사가 자진 사퇴했다. 철옹성 마냥 굳건하던 MBC와 방문진에 균열이 일기 시작한 것이다.


기자협회보는 지난 7일부터 11일까지 KBS이사회와 방문진 이사진(이사장 포함)을 상대로 전수조사(전화, 이메일, 메신저)를 진행했다. 내용은 △이사장 및 사장에 대한 사퇴 여론 △방문진·KBS이사회 책임론 △공영언론의 보도 불공정성 △총파업 해결 방안 등이다.


“정권 비호 방송으로 공영성과 방송 품질을 떨어뜨리고, 부당한 인사로 내부 갈등을 일으켰는데 당연히 책임 물어야죠.” 옛 야권 추천 이사진은 KBS MBC 너나할 것 없이 사장과 이사장의 즉각 사퇴를 촉구했다. 권태선 KBS 이사는 “지난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때도 그렇고 올해 불거진 황교익 맛칼럼니스트 출연금지 문제 등 정치적 독립성과 균형이 심각하게 파괴됐다”고 지적했다. 유기철 방문진 이사는 고영주 이사장에 대해 “‘문재인은 공산주의자’ 발언과 같은 편향된 이념으로 방문진을 이끌어왔다. ‘극우들의 놀이터’라는 말이 괜히 나오는 말이 아니”라고 했다.

외면받는 공영언론, 경영진 사퇴가 해법
이명박-박근혜 정부 하에서 KBS와 MBC 등 공영언론은 ‘청와대 방송’으로 전락했다는 질타를 받으며 끊임없이 논란에 휩싸였다. 세월호 참사나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와 같이 대형 이슈에도 정부를 비호하고자 애쓰는 언론에 국민들은 외면했다.


MBC에서 지난 2012년 파업 이후 해고와 징계, 전보 등을 당한 언론인은 200여명. 정부가 꽂아 넣은 경영진은 내부 반발의 목소리를 징계로 묵살했다. 바른 말 하는 언론인들은 일터에서 쫓겨나 스케이트장 관리 등을 하는 ‘유배지’로 쫓겨났다. KBS도 5년 전 파업을 이끌었다는 이유로 20여명의 언론인이 무더기 징계를 받은 이후 기자들은 극심한 보도 검열에 시달려야 했다.


전영일 KBS 이사는 “지난 2년 동안 사내 민주주의를 무너뜨린 고대영 KBS 사장의 행태를 보면 벌써 쫓겨났어야 했다. ‘공정보도 해라’ ‘무리한 조직개편 하지 마라’ ‘기자들 징계 말라’고 했는데도 거부해왔다”고 비판했다. 장주영 KBS 이사도 “경영인들의 보도 개입이나 프로그램 자율성 침해가 KBS의 신뢰도와 영향력을 끝없이 추락시켰다. KBS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진 상황에서 구성원들은 더 이상 방송을 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고 전했다.

방문진, ‘김장겸 감싸기’ 어디까지
곪을 대로 곪은 공영언론을 손질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수년째 이어졌지만, 이를 관리 감독하는 KBS이사회와 방문진은 별다른 조치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 방송의 공공성과 공정성을 실현해야 하는 책무가 있는 이들 기관이 사실상 무용지물로 전락하며 해체론까지 나오고 있는 이유다. 옛 야권 이사진은 입을 모아 “방문진과 KBS이사회의 직무유기가 극에 달했다”고 지적했다.


특히 방문진은 그간 MBC 경영진의 막무가내식 보도 경영에 비호하기에만 급급해왔다는 지탄을 받고 있다. 지난해 ‘백종문 녹취록’으로 직원들이 증거 없이 해고된 사실이 드러났을 때도, 경영진이 노조를 불법 사찰한 ‘트로이컷’이 불거질 때도 옛 야권 추천 이사들의 반발 속에 축소 은폐해왔다는 지적이 일었다.


이완기 방문진 이사는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방송을 보호하자는 취지로 설립된 방문진이 권력의 도구로 전락했다”고 증언했다. 최강욱 방문진 이사는 이번 파업 사태에 대해 “방문진 옛 여권 추천 이사들이 현 경영진의 호위무사가 돼 문제를 확대시켰다. 이를 막지 못한 책임을 통감 한다”고 했다.


방문진은 지난 7일 열린 정기이사회에서도 MBC 시사보도의 불공정성을 지적한 ‘2016 경영평가보고서’를 폐기하며 ‘김장겸 감싸기’ 논란에 휩싸였다. 보고서를 채택하면 지난해 보도본부의 수장이었던 김 사장에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는 만큼 일부러 엎어버렸다는 것이다. 이날 방문진 관계자는 “보고서 폐기 결정으로 6000여만 원의 예산은 물거품이 됐다”고 귀띔했다.

이사회, 고대영 사퇴 여론에 묵묵부답
방송 파행으로 이어질 수 있는 현 파업 상황에서 KBS이사회도 고대영 카드를 움켜쥐며 꿈쩍 않고 있다. 최근 노조가 “사장이 사퇴하면 파업을 중단하겠다”고 밝혔지만, 이사회는 아무런 대책도 내놓지 않고 있다. 방문진 관계자는 “KBS든 MBC든 옛 여권 이사진 입장에서는 현 경영진을 비호해야 끝까지 자리보존하지 않겠나. 이사회 안팎의 거센 사퇴 여론에도 아랑곳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KBS이사회는 지난 2015년 고 사장 선임에 청와대 홍보 수석이 관여했다는 주장이 제기될 당시에도, 고 사장을 비호하며 ‘해프닝’으로만 처리하는 데 앞장섰다는 비판을 받았다. 당시 청와대 홍보수석과 수차례 통화하며 큰 그림을 그린 것으로 지목된 이인호 이사장은 관련 의혹을 모두 부인했고, 당시 여권 추천 이사들의 비호로 ‘청와대 개입설’은 정식 안건으로 채택되지도 못했다.


전영일 KBS 이사는 “비단 고대영 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명박 정부 이후 이병순-김인규-길환영-조대현 5명의 낙하산 사장들 때도 똑같은 행태가 벌어져왔다. 이사회 구조를 바꾸지 않고 방송법을 손질하지 않으면 이 상황은 계속 딜레마”라고 설명했다.

“이사회 대대적 수술 불가피”
이번 전수조사에서 옛 야권 추천 이사들이 이사회 구조의 전면 개편을 강조한 이유다. 현재 KBS이사회(7:4)와 방문진(5:4)은 모두 옛 여권 추천 이사들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이들이 반대표를 던지면 해임 안건을 올려도 부결될 수밖에 없다.


김서중 KBS 이사는 “KBS가 정상화되려면 이사회 전체를 재구성해야 한다. 또 방송법 개정과 함께 내부 구성원들이 동의할 수 있는 새로운 사장을 뽑을 수 있는 제도 개선이 절실하다”고 제시했다. 유기철 방문진 이사는 “방송법 개정과 별개로 MBC만의 ‘맞춤형 해결책’이 추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 이사는 “MBC는 지난 10년간 폐허가 됐다. 방송장악의 대표 사례인 만큼 ‘시행착오 없는 속도전’으로 진행해나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대다수 옛 여권 추천 이사진은 조사에 응하지 않은 가운데, 고영주 방문진 이사장과 김광동 방문진 이사는 지난 11일 기자협회보와의 통화에서 “방문진 이사에 대한 부당한 사퇴 압력은 언론 공정성을 말살하려는 부당한 행위이자 민주 헌정 질서에 대한 유린으로 즉각 중단돼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고 이사장은 “(나에 대한 사퇴 여론은) 언론노조에서나 그렇지, 다른 곳에서는 언론의 자유를 위해서 버텨야 한다고 압박받고 있다”고 항변했다. 파업에 대해서도 “사장 퇴진이라는 요건을 관철시키기 위해 파업을 하는 건 불법”이라며 “복귀하는 게 파업 사태를 해결하는 길”이라고 답했다.


김 이사 또한 “방문진에서 사장 사퇴가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는 제안이 있던 건데, 일반적인 의견이거나 다수의 의견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는 “김 사장은 3월에 취임했다. 당시에는 부당노동행위를 할 수 있는 여건도 아니었다. 현직 사장이라는 이유만으로 모든 책임을 뒤집어쓰고 가라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며 “파업의 원인을 새겨보면 사장 퇴진으로 결론이 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이진우 기자 jw85@journalist.or.kr
김달아 기자 bliss@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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