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터게이트에 밥 우드워드와 칼 번스타인이 있었다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김의겸과 이진동이 있었다. 20대 기자 우드워드와 번스타인은 공조하고 때론 경쟁하며 워터게이트 사건의 문을 열고 들어갔지만 50대 기자 김의겸과 이진동은 후배들을 격려하며 국정농단의 전모를 파헤쳤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거대한 촛불의 불쏘시개 역할을 했다. 언론이 만든 촛불은 지난해 10월부터 올 4월까지 타오르며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상식을 확인시켜줬다. 구체제가 무너져 내리는 계기가 된 촛불집회가 29일로 1년을 맞는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보도의 주역 김의겸 전 한겨레 선임기자와 이진동 TV조선 사회에디터를 지난 20일 프레스센터 13층 한국기자협회에서 만났다.
-박근혜 전 대통령 파면을 이끈 촛불집회가 1년이 된다. 촛불집회 1주년을 맞은 심경은.
김의겸(김) “1년이 지난 지금 보면 성과도 있고 결실도 맺었지만 현실의 벽은 강고하고 개혁은 참 지난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특히 북핵문제나 대미관계, 대북관계 등 분단 구조에서 빚어진 일들을 보면 개인적으로 참담한 무력감도 든다. 촛불의 힘이 더 커지고 질적으로 발전, 비약해야 이런 문제가 해결될 수 있겠구나 하는 현실적 한계를 느낀다.”
이진동(이) “정권교체를 이뤘지만 아직 멀었다는 생각을 한다. 정권교체로만 끝나서는 안 되고 권력구조 개편이라든가 투명성 확대 등 우리 사회가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어야 한다. 지금 새 정부를 평가하기에 이른 감이 있지만 아직까진 잘하고 있다고 보는 쪽이 맞다. 이제부턴 실력으로 평가받지 않을까. 국민들의 높은 기대에 맞춰 잘 해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작년 10월29일 서울 청계광장에서 시작된 촛불은 해를 넘겨가며 1700만명이 참석했다. 시민이 광장으로 나온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이 “어이없는 국정농단에 대한 분노가 촛불을 끌어낸 원동력이었다. 그 기저에는 청년실업과 양극화 문제 등이 쌓여 있었다. 특히 ‘돈 가진 부모 만난 것도 실력이다’는 정유라의 발언이 기름을 끼얹었다. 80만명, 100만명이 모여도 자제력을 잃지 않았다. 경외심도 들고 한편으로는 자랑스럽고, 자부심을 가져도 된다고 본다.”
김 “전적으로 동의한다. 하나 덧붙인다면 분노다. 보통 분노라면 약자가 강자에게 저항해서 생기는 건데 돌이켜보면 지난 촛불은 강자에 대한 약자의 항거가 아니었다. 시민이 대통령보다 우월한 위치에서 도덕적인 것뿐만 아니라 지적인, 정치적인 수준에서 대통령을 훈계하는 그런 정서를 깔고 있었던 게 아닌가 생각한다. 그래서 시민들이 느긋하고 여유가 있었고, 비폭력으로 또 일관되게 축제 같은 분위기에서 촛불이 지속될 수 있었다.”
-언론이 촛불이 타오르는 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하나.
김 “자화자찬이기는 하지만 언론이 촛불을 점화시키는 시작점이었다. 그건 객관적인 사실이라고 생각한다. 권력형 비리 보도는 크고 작고, 무겁고 가볍고의 차이는 있겠지만 항상 있어왔다. 그런데 모든 권력형 비리에 대한 폭로가 다 시민혁명으로 이어진 건 아니었다. 언론보도가 촉발시킨 측면도 있지만 시민들의 정서에 인화물질이 넓게 퍼져 있었던 거다. 이 부장이 얘기한 청년실업, 양극화 등 인화물질이 깔려있었기에 폭발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 “언론 역할은 상당히 중요했다고 본다. 시작점인 건 맞다. 뭉뚱그려서 언론이라고 하지만 저는 기자 한 명 한 명의 직업적 소명의식이 나타났다고 보고 있다. 그렇기에 진영에 상관없이 진보·보수언론 모두 국정농단의 실체를 벗겨내려고 노력했던 거다.”
-TV조선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시작을 알렸고, 한겨레는 최순실을 드러내면서 게이트를 확산시켰다. 상대방 보도에 대한 의미를 말한다면.
김 “성경에 ‘태초에 빛이 있었다’는 말이 있다. 게이트 보도 태초에 TV조선의 전파가 있었다. TV조선의 보도가 있었기에 한겨레 보도가 있었고, 한겨레 보도가 있었기에 JTBC의 태블릿PC 보도가 나왔다. 그게 결과적으로 촛불로 이어졌다. 한 가지 더 짚자면 저를 포함한 ‘최찾사팀’은 한겨레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취재했던 반면 이진동 부장과 팀원들은 쉽지 않은 상황에서 보도를 해나갔다는 점에서 평가를 더 받아야 하는 측면이 있다.”
이 “TV조선이 불씨 역할을 했다면 불을 지핀 건 한겨레였다. 그걸 불꽃으로 만들어낸 건 JTBC였다. TV조선의 역할은 로드맵을 그린 것이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어떤 부분이 문제라는 걸 보여준 거다. TV조선이 최초 설계자라면 한겨레는 대중화시켰다. 이 사건의 핵심은 최순실과 박근혜의 관계고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의 배후에 최순실이 있는 게 핵심 요체였다. 한겨레는 그걸 끌어낸 공이 있다.”
-TV조선의 경우 최순실 의상실 동영상(2014년 12월), 최순실 지하 주차장 동영상(2016년 7월)을 확보해 놓고도 보도 못한 점, 한겨레는 결정적 물증인 태블릿PC를 입수하지 못한 데 대한 아쉬움이 클 것 같은데.
이 “반드시 그렇진 않다. 보도를 안 한 게 아니라 다 했다. 다만 타이밍을 못 맞춘 거다. 의상실 CCTV를 갖고 있었고 최순실 인터뷰도 다 돼 있었다. 로드맵에 따라 어느 단계에서 최순실과 박근혜에 초점을 맞춘 방향으로 진행하려 했는데 중간에 청와대의 공격이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힘들었던 게 동료 언론인들의 진영적 시각이었다. 보도에 대한 순수성, 진정성을 의심하기 때문에 당장 보도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그 과정에서 한겨레가 중간에 길을 열어준 측면도 있었다. 큰 틀에서 보면 아쉬운 점이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후배들에게도 얘기했다. ‘이건 혼자 하는 거 아니다. 언론이 다 같이 하는 거다. 지금 외롭다고 하는데 조금 있으면 다 붙는다.’ 조금 아쉬웠던 건 CCTV를 최순실과 박근혜 관계 부분에서 보도하려 했는데 태블릿PC가 나올 줄 몰랐던 거다.”
김 “태블릿PC 코앞에까지 갔다가 놓쳤기 때문에 많이 아쉽다. 결과적으로 한겨레가 태블릿PC를 입수해 보도한 것보다는 JTBC라는 많은 시청자가 보는 매체, 영향력 있는 매체가 보도하는 게 나았을 거라 본다. ‘손석희’라는 언론인이 가지는 국민적 신뢰도가 바탕이 돼서 더 폭발력이 있었고 촛불을 빠르게 확산시키는 데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한다.”
이 “저도 그런 생각은 해본다. 여건의 문제를 떠나서 만약에 태블릿PC가 저에게 왔다면 손 사장이 했던 것처럼 잘 할 수 있었을까 여러 번 물어봤다. 아마 힘들었을 거다. 소위 말하는 여건의 문제가 아니라 저의 역량 문제를 얘기하는 거다.”
김 “보도 내용이야 TV조선이 더 잘하면 잘했지 덜하지는 않았을 거라 생각한다.”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부분이 많지 않나.
김 “우병우 문제다. 최순실 보도는 우병우와 처음부터 떼래야 뗄 수 없는 관계였는데 최순실로 가면서 우병우가 묻혀 버렸다. 우병우가 직권남용 등 몇 가지 혐의로 기소됐지만 경미한 처벌을 받을 수밖에 없는 사안이다. 우병우가 최순실 문제에 깊이 관여했다는 건 당장 추명호 전 국정원 6국장의 비선보고 의혹만 봐도 짐작할 수 있다. 실제로 취재 과정에서 추명호의 역할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는데 진척을 못 시켰다. 워낙 구중궁궐 깊숙이 일어난 일이라 벽에 막혔던 거다. 남은 과제라면 검찰 수사에서 우병우 부분이 추가로 밝혀져야 하지 않나 싶다.”
이 “우병우 문제도 중요하지만 우선 미르와 K스포츠재단 사건이 왜 일어났는지에 대한 게 아직 없다. 최순실과 박근혜가 40년 지기이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그것만으론 이유가 분명치 않다. 이 부분은 미르와 K재단을 왜 만들었는지와 맞닿아 있다. 최순실 박근혜 정윤회 정유라 네 사람의 관계가 정확하게 드러나야 밝혀진다고 본다. 세월호 7시간 문제도 남아 있다. 세월호 참사 당일 오전에 이영선 전 청와대 행정관이 대통령 올림머리를 해준 강남의 한 미용사를 청와대에 데려왔다 다시 데려다 줬다고 하는데 그 이후의 행적은 나오지 않았다. 정윤회가 자주 다니는 한정식 집을 취재할 때 문고리 3인방과 십상시들이 모였다는 증언들이 있었다. 세계일보에서 건드렸지만 덮인 게 정윤회의 국정개입 진실이다. 지금 감사원에서 조사하고 있는 F35 전투기와 관련된 것이나 최순실 재산 형성 의혹도 투명하게 밝혀져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오촌 조카 살인사건도 더 드러나야 할 문제다. 너무 많나? 실제로 보면 아직 끝난 게 아니다.”
-최 게이트 취재 과정에서 두 분이 만나기도 했다. 어떤 사정이 있었는지 궁금하다. 지라시에는 김의겸이 이진동에게 자료를 통째로 넘겨받아 기사를 썼다는 음모론도 나왔는데.
이 “지난해 9월 초, 김의겸 선배가 저도 아는 법조인에게 얘기를 듣고 확인하러 찾아왔다. 우리가 최순실을 인터뷰했단 거까지 알고 있었다. 취재의 핵심은 최순실이 있다는 건데, 최순실이 있다는 것으로 취재가 완성되는 건 아니잖나. 지라시에는 자료를 넘겨줬다고 돼 있는데 그런 일은 없었다.”
김 “당시 보도가 안 나올 때였다. 조선일보와 청와대가 갈등을 빚자 이 부장이 취재를 해놓고도 못 나간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무모한 짓을 잘 안 하는데 한 번 가서 부딪혀 보자, 자료를 나에게 달라고 억지를 부렸다. 사실 이 부장이 얘기했듯 최순실을 알면 뭐하나, 어디서부터 어떻게 취재해야할 지 참 난감한 상황이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바지자락을 잡았던 거다.”
이 “사실 보도가 뜸했던 것 아니고 8월 중순까지 미르와 K재단 보도를 끝내고, 다음 최순실 국면준비를 위해 지쳐 있던 취재팀을 전부 강제 휴가 보냈다. 그 사이에 청와대에서 조선일보를 부패 기득권 언론이라고 공격한 사건이 발생하면서 국면이 바뀐 거다. 휴가 다녀온 직후에 김의겸 선배를 만났다 ”
-JTBC의 최순실 태블릿PC 보도는 국정농단의 ‘스모킹 건’이었다. 일각에서는 태블릿PC 입수 경위에 의문을 제기하거나 ‘태블릿PC 조작설'을 내세우기도 한다.
김 “검찰 발표 내용을 보면 최순실이 태블릿PC를 사용한 근거들이 나온다. 태블릿PC에 남아 있는 사진이나 SNS에 올린 글이 최순실의 동선과 일치해서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 걸 떠나서 태블릿PC는 전체 사건에서 굉장히 지엽적인 게 돼버렸다. 태블릿이 직접적인 증거가 돼서 기소된 건 정호성 전 비서관의 공무상 기밀누설의 한 부분에 해당된다. 법적인 전체 구도에서 보면 비중이 아주 적은데 보도의 충격파가 강했기 때문에 애초의 파장을 뒤집어보려는 정치적인 시도들이 생긴 거다. 어떻게 보면 정치적인 시비걸기, 전 그렇게 본다.”
이 “같은 생각이다. 손석희 사장이 태블릿PC 관련 뉴스를 잘 만들었고 보도 다음 날 박 전 대통령이 사과를 하면서 크게 뻥 터진 거지. 태블릿은 들어있는 내용보다 박근혜와 최순실의 매개고리, 그 이상의 의미는 찾기 힘들지 않을까 싶다. 국정농단의 실체는 태블릿 빼고도 많다. 미르와 K스포츠재단 통해 돈 받은 것도 있고 삼성 뇌물도 있다. 태블릿을 문제 삼는 건 정치적인 거다. JTBC가 보도 과정에서 말이 바뀐 측면이 있는데 그걸 꼬투리 잡아 일부 매체들이 집중적으로 추적하는 것 같다. 그래도 국정농단 사건의 구도는 바뀌지 않는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보도의 수혜를 JTBC와 손석희 사장만 보고 있다는 생각은 안 해봤나.
이 “TV조선 기자들은 어느 언론도 따라오지 않는 상황에서 고군분투하면서 길을 닦았다. 한겨레도 상대적으로 많은 공력과 기간을 들여 취재했다. 그에 비하면 JTBC의 파급력은 엄청났다. JTBC 보도를 폄하하는 건 아니지만 TV조선 보도도 역사적으로 제대로 평가를 받았으면 하는 아쉬움은 있다. 진영 논리에서 접근하다보니 보수 언론이라고 애써 의미를 축소하는 경향도 있다고 본다.”
김 “TV조선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기자 개개인의 문제가 아니고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 근데 한겨레는 그게 아니어서 오히려 아프게 다가온다. 왜 한겨레가 이룬 결실이나 성과에 비해서 인정받고 충분히 애정을 받지 못했는가. 여기에 대한 고민이 있다. 신문매체의 영향력이 감퇴하는 구조적인 문제도 있지만 그것만으론 다 설명이 안 된다. 뭔가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을 텐데 거기에 대해서 고민하고 성찰해야 한겨레가 다시 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한경오 프레임’ 등 주류언론에 대한 불신이 갈수록 커지고 있는데.
김 “회사를 떠난 상태라 말하기가 조심스럽다. 한 가지 말하자면 신문과 독자가 만나는 방식이 예전과 많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한겨레 창간 초기만 해도 한겨레가 정보를 전달하면 독자는 믿고 받아들이는 구조였다. 지금은 독자 의식수준이 높아졌을 뿐만 아니라 정보를 얻는 통로도 다양해졌다. 한겨레 독자들의 스펙트럼도 분화가 이뤄져 예전 방식으로 기사를 만들고 전달해서는 독자 요구에 맞출 수 없다.”
이 “언론의 역할이 뭔가를 다시 생각해야 한다. 이번 사건만 보더라도 10월24일과 25일을 기점으로 보도가 나뉜다. 전반부는 차분하고 팩트 중심으로 갔는데 그 뒤부터는 경쟁이 시작되면서 팩트와 카더라가 뒤섞이는 상황이 됐다. 과열 경쟁이 전체 언론에 대한 불신을 부추기는 측면도 있다.”
-최순실 게이트의 본질은 무엇인가.
이 “대통령에 의한 국정농단이다. 대통령이라는 자리가 국민에게 위임받은 권력인데 무시하다가 언론 보도로 실체가 벗겨졌고 그러면서 국민 저항에 부딪힌 사건이다. 국정운영을 최순실 비선에 맡기고 박 전 대통령 본인이 사익 추구를 한 거다. 표면은 박 전 대통령 본인과 최순실의 사익 추구지만 그 안엔 권력의 사유화, 사유화된 권력과 재벌의 유착이 있었다.”
김 “그런 사람이 어떻게 대통령이 됐을까 고민도 해봐야 한다. 지금에야 박근혜의 민낯이 드러나고 그의 자질과 능력을 알게 된 것 아닌가. 그런데 대통령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대통령이 된 건 한 개인의 욕심 차원을 넘어서서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세력이 국민의 눈을 가리고 그 사람을 중심으로 새로운 권력을 창출하는 과정이 있었던 거다. 국민들이 언제든지 속을 수 있다는 걸 각성하고 매의 눈으로 계속 지켜봐야 하는 것 아닌가. 그게 본질이자 교훈이라고 생각한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언론에 던진 메시지는 무엇인가.
이 “기자들이 왜 필요한지를 보여주는 계기가 됐다고 생각한다. 김의겸 선배가 정치세력 문제를 얘기했지만 국민들이 어떻게 아느냐. 결국은 언론의 역할이다. 언론은 깨어 있어야 한다. 언론사의 정치적 성향이 나타날 순 있다고 본다. 그런데 언론사 성향·진영으로 공격할 경우 기자들이 설 자리를 잃는다. 기자가 제 역할을 하고 싶어도 못 하는 경우가 생긴다. MBC만 봐도 성향이나 경영진 논리와 상관없이 이를 변화시키려는 기자들의 노력이 있지 않나. 팩트에 진보 팩트가 있고, 보수 팩트가 있는 건 아니다. 그냥 팩트인 거다.”
김 “JTBC가 태블릿PC를 보도하고 다음날 대통령이 사과하면서 둑이 무너졌다. 10월24일까지 대다수 언론 보도는 소극적이거나 특히 공영방송 중심으로 보도가 안 나왔다. 둑이 무너지자 보도가 쏟아졌지만 확인 안 된 사실 조차 무단 방류하는 양극단의 모습도 있었다. 언론은 가만히 있는 것 자체가 공범자로서 역할을 하게 된다. 그래서 가만히 있지 않아야 한다. 공범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적극적으로 감시하고 견제해야 한다. 그게 최순실 사태가 언론에 주는 메시지가 아닌가 생각한다.”
-지난 촛불혁명 때 시민들 역시 언론적폐 청산을 외쳤다. 적폐 청산은 진행되고 있다고 보나.
이 “진통을 겪더라도 외력에 의한 청산은 주의할 필요가 있다. 언론의 자정 노력으로 적폐청산이 이뤄졌으면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KBS·MBC 파업도 자구적 노력의 일환이라고 본다. 또 하나는 언론계에 국정농단 세력의 힘을 빌어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스스로 물러나야 하는데 버티고 있다는 게 문제다. 공영방송 파업 사태를 불러온 것도 바로 그 지점이 아닌가 싶다.”
김 “언론개혁을 포함해서 전반적인 적폐청산에 대해 말씀을 드린다면 반격의 빌미를 줄 수 있는 여지가 많은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든다. 적폐청산을 위해 시민들이 광장으로 나왔는데 안 하는 건 말이 안 된다. 다만 좀 매끄럽고 질서 있게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고민해본다. 조금 무질서해 보이니 ‘적폐청산’이 아니라 ‘정치 보복’ 프레임이 작동하는 여지나 빌미가 생기는 거다.”
이 “첨언해보면 물론 단죄해야 할 사람은 단죄해야 하는데 너무 사람에 초점을 맞춘다는 생각이 든다. 시스템을 바꿀 필요가 있다. 그래야 반작용이나 반발이 적지 않을까 싶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법원의 구속 기한 연장 결정 이후 자신의 구속과 재판을 정치보복으로 규정짓고 향후 재판부 판단도 인정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런 발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이 “구속연장이 이례적이라고 주장하는데 그렇지 않다. 국정농단의 실체가 분명히 있는데 정치보복 프레임을 들고 나오다니 말도 안 된다. 친박 정치세력들은 누구 하나 책임지지 않으면서 프레임을 전환하려고 한다. 박 전 대통령이나 친박이 정신 못 차리고 여전히 음모로 보고 있다는 것 아닌가.”
김 “정치보복 발언을 보면서 대통령 집권 4년 내내 무능했는데 법정 투쟁도 무능하게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치 투쟁을 하려고 했다면 구속 전에 지지 세력을 결집해서 법원이나 집권세력에게 정치적 부담을 안기는 게 맞다. 그런데도 저항을 안 하다가 힘써볼 수 없는 상황에서 정치투쟁으로 전환했다. 지금은 자유한국당에서 출당하라고 요구하고 있지 않나. 국민 정서와 괴리된 자신만의 세계에 갇힌 거 아닌가 생각해 본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았는데.
김 “이재용 부회장 재판은 박근혜 전 대통령 재판보다 대한민국에 장기적·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생각한다. 재판부가 어떤 형량을 주느냐에 따라 재벌 문제에 던지는 분명한 충격파가 있을 것이다. 1심 재판부는 가장 가벼운 형들을 인정하고 거기에 적용되는 가장 작은 형량들을 붙여서 5년을 선고했다. 어떻게 보면 항소심에 떠넘긴 셈이다.”
이 “권력과 기업의 문제에 있어서 이재용 재판 결과는 엄청난 영향을 미칠 거다. 사회적으로 상당히 투명성을 높여주는 계기가 될 가능성이 있다. ‘우린 피해자이고 이재용은 몰랐다’는 삼성의 전략은 실패했다. 1심에서 5년을 선고하고 항소심에 떠넘긴 상황인데 항소심 재판도 만만하지 않을 거다. 1심은 미르·K스포츠 재단 뇌물공여의 경우 강요에 의한 피해자라는 주장을 받아들였지만 항소심 판단은 어떨지 주목된다. 미르와 K스포츠재단에 204억원을 낸 무렵이 정유라 승마 지원과 겹쳐 있다. 삼성이 정말 모르고 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기자정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이 “사회 정의감을 바탕으로 한 실체적 진실 추구라고 본다. 가치도 가치겠지만 팩트 추구에 대한 열정이야말로 기자정신이 아닐까. 팩트 체크는 변하지 않는 기자의 기본이다.”
김 “가끔씩 하는 말인데 기자가 기록할 기(記)자에 기자가 아니다. 물을 문(問)자에 문자가 더 적합한 이름 붙이기다. 끊임없이 묻는 거다. 왜라고. 사람이나 사물, 사회에 왜라고 묻는 것처럼 기자들도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져야 한다.”
-촛불집회 1년을 맞아 이 사회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보나.
이 “성숙한 민주주의 의식을 시민들이 확인했다. 그런 부분에서 자부심을 다들 느끼고 있을 텐데 그것만으로 안 되고 뭔가 바뀌는 게 있어야 한다. 지금 적폐 청산이 진행되고 있지만 시스템이 바뀔 필요가 있다. 그런 진통을 겪고도 우리 사회가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지 못한다면 비극이다. 과거의 폐단과 단절하는 하나의 계기로 만들어야 한다.”
김 “현실의 벽이 단단하다는 걸 깨닫는 과정이다. 지금은 대통령 개인의 인기에 의존해서 개혁이라고 하는 깃발이 지속되고 있지만 대통령의 인기는 오래가지 못한다. 우리 각자들이 자신의 촛불정신을 좀 더 근본적인 개혁을 위해서 애쓰고 노력해야 한다.”
김성후 기자 kshoo@journalist.or.kr
강아영 기자 sbsm@journalist.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