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라 취재 가능했던 건 선의·성의 가진 사람들 덕분"

'그날 그곳 사람들' 펴낸 이가혁 JTBC 기자

지난해 1월 기자사회에 논쟁거리를 던져준 사건이 있었다. JTBC 취재진이 덴마크에서 정유라씨를 경찰에 신고하고 체포 장면을 보도한 일이다. 언론계에선 ‘기자가 보도윤리를 어겼나’, ‘기자는 관찰자여야만 하나’ 등을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이 보도의 당사자였던 이가혁 JTBC 기자가 ‘정유라 취재기’를 담은 책을 최근 펴냈다. 이 기자는 지난 18일 기자협회보와 만나 “어떤 선택이었든 논란이 됐을 것”이라며 “그때로 돌아간다 해도 같은 판단을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보도 과정이 ‘신고-취재’로 단순하게만 알려지면서 논란을 키운 측면도 있다고 봤다. 독일을 거쳐 덴마크에서 정씨의 거처를 찾아내기까지, 또 그 앞에서 36시간 넘게 ‘뻗치기’하며 느낀 감정을 책에 고스란히 담았다.



“정씨의 집 문을 두드리고 경찰에 신고하기 전에 고민을 많이 했어요. 먼저 여러 경우를 생각해봤습니다. 신고를 안 하고 버틴다? 어려웠을 것 같아요. 독일에서 출발했던 시간까지 포함하면 48시간 동안 차 안에만 있었거든요. 잠도 거의 못 잤고 화장실도 가고 싶었어요. 무엇보다 휴대폰, 카메라, 노트북 배터리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었고요.”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정씨 일행이 떠날 가능성도 있었다. 마을 주민에게 신고를 부탁하는 건 속임수라고 생각했다. 신고만 하고 보도하지 않는 건 더 쉽지 않았다.


“신고 후에 특검이 정씨의 체포 소식을 공식 발표했어요. 먼저 보도하지 않았다면 저희도 특검발로 썼겠죠. 현장에 있는 기자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것 같아요.”


지난한 취재와 경찰 신고 끝에 정씨가 모습을 드러냈다. 경찰차에 오르는 정씨에게 질문을 던지면서도 믿기지 않았다. 이화여대를 출입하며 수도 없이 들었던, 국정농단의 장본인 최순실씨의 딸 정씨가 그의 눈앞으로 지나가고 있었다.


“자진해서 간 거라 부담이 컸지만 정씨를 찾을 거란 생각은 못 했어요. 의미 있는 흔적, 단서라도 잡아보자는 심정이었죠.”


막상 현지 취재에 나서자 작은 실마리를 찾는 것조차 힘에 겨웠다. 그때 “선의와 성의를 지닌 사람들”이 나타났다. 교민들은 자기 일처럼 취재진과 머리를 맞댔고 한국과 독일에서도 제보가 이어졌다.


“카메라기자 이학진 선배와 단둘이 간 해외 출장이었는데 외롭지 않았어요. 현지 교민분들이 늘 도와주셨고 곳곳에서 결정적인 제보도 있었고요. 기자로서 제 일을 한 건 데도 고맙다고 해주셨어요. 모두 JTBC 뉴스룸에 대한 신뢰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가혁 JTBC 기자가 펴낸 <그날 그곳 사람들> 표지.


이 기자는 현장을 기록하고 거기서 만난 사람들을 기억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했다. 그래서 책 제목도 <그날 그곳 사람들>이다. 책에는 독일-덴마크 정유라 추적기와 함께 팽목항, 목포신항, 광화문광장, 헌법재판소 등 역사적인 현장도 실려 있다.


현재 노조 전임자인 이 기자는 오는 7월 다시 현장에 선다. 그는 책 ‘들어가며’ 끝머리에 이렇게 썼다.
“저는 점처럼 흩어진 그 선한 마음을 선으로 이어보는 사람 정도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이런 선한 마음을 가진 분들이 있는 한 필연 같은 그 우연은 앞으로도 계속 일어날 것이라고 믿습니다.”

김달아 기자 bliss@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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