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조선 ‘최순실 보도 암흑기’에 대한 기록

<김성후의 미디어, 안과 밖> 이진동 TV조선 기자의 '이렇게 시작되었다'

김성후 기자 | 2018.03.12 18:45:59

이진동 TV조선 기자의 국정농단 취재기 '이렇게 시작되었다'. 이진동 TV조선 기자가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1주년을 맞아 박근혜·최순실의 국정농단 취재기 <이렇게 시작되었다-박근혜-최순실, 스캔들에서 게이트까지>를 펴냈다.

 

이 기자는 이 책에서 국정농단 사건의 취재를 시작하게 된 일련의 과정, 조선일보가 청와대로부터 공격받을 때의 내부 상황, 보도 의지를 가진 기자들과 회사와의 갈등, ‘고영태 녹음파일’ 등장 후 그에 대한 조선일보의 내부 조사 과정 등을 밝히고 있다.

 

특히 최순실이 박근혜 전 대통령의 의상을 챙기는 CCTV영상을 2014년 말에 입수하고 왜 뒤늦게 보도했는지, 2016년 7월6일 첫 기사를 시작으로 <안종범 수석, 미르재단 500억 모금 지원-7월26일>, <또 다른 재단에도 380억 모아줬다-8월2일>, <미르재단, 대통령 순방TF에 참여…비선조직이었나-8월11일> 등에서 보듯 최순실과 박근혜를 향해가던 TV조선 보도가 9월 이후 왜 갑자기 끊겼는지 등에 대해 말하고 있다.

 

2016년 9월20일 한겨레 기사를 통해 최순실은 주요 일간지 1면에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최순실의 이름이 처음으로 실린 한겨레 보도 <대기업 돈 288억 걷은 K스포츠재단 이사장은 최순실 단골 마사지센터장-2016년 9월20일자 1면>가 나오기 전 최순실 기사를 써야 한다고 위에다 요청했다.

 

2016년 9월2일 당시 김의겸 한겨레 선임기자에게 연락이 와 종로 인근에서 만나고 난 뒤 변용식 TV조선 대표실로 들어가 변 대표와 마주 앉았다.

 

“이렇게 무기력하게 있을 순 없습니다. 돌파구가 필요한 시점 같은데, 대표께서 방상훈 사장을 만나 얘기하실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미르·K스포츠재단 기사가 어떤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쓴 건 아니지 않습니까. 대표께서는 늘 ‘특종’을 주문해왔고, 언론이라면 당연히 해야할 일이니 정면승부로 맞서는 게 맞다고 봅니다.”

 

그의 말에 변 대표는 물끄러미 쳐다보며 “알았다”고 고개만 끄덕였다.

 

당시 청와대는 TV조선의 모회사인 조선일보가 7월18일 우병우 민정수석의 비리 의혹을 보도한 것을 계기로 조선일보를 매섭게 몰아쳤다. 이 와중에 송희영 당시 조선일보 주필이 대우조선해양에서 골프 접대 등 향응을 받았다는 폭로가 나와 송 주필이 사퇴하고 조선은 8월31일 1면에 사과문까지 실었다.

 

그 이후 최순실을 드러내기 위해 준비한 기사들은 TV조선에서 사라졌다. TV조선은 7월16일 밤 11시 10분, 최순실을 그가 사는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인터뷰하는데 성공했다. 이 기자는 책에서 “9월2일 김의겸이 찾아왔던 날부터 9월20일 한겨레 보도가 나올 무렵까지 20일 가까운 시간 동안 ‘최순실’을 드러낼 1차 기회는 ‘조선일보와 청와대의 싸움’ 프레임에 갇혀 이렇게 흘러가버렸다”고 했다.

 

그는 이 기간 세월호 특조위 청문회(2016년 9월1일)에서 “미르·K스포츠재단의 배후는 비선실세인 최순실이다”는 식으로 폭로할 생각도 했고, ‘기자연합군’으로 보도를 이어갈까도 했다고 고백하고 있다.

 

2016년 10월17일부터 국정농단 보도가 폭발 조짐을 보이고 있었다. 그날 아침에 경향신문이 1면에 <수백억 모금 K스포츠재단, 설립 후에도 한 대기업에 “80억 더 내라”>기사가 나왔고, 한겨레 역시 1면에 <K스포츠, 최순실 딸 독일숙소 구해주러 동행했다>를 실었다. JTBC는 17일 최순실이 한강 고수부지에서 만나 이성한 전 미르재단 사무총장을 회유했던 상황을 담은 녹취파일을 보도했다.

 

10월17일 기사들을 보고 이진동 기자의 속은 까맣게 타들어갔다. 그는 “CCTV를 보도할 때가 됐다”고 말했지만 계속해서 “아직 아니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는 8월21일부터 10월 중순까지 ‘최순실 보도 암흑기’였다고 책에 썼다.

 

TV조선의 최순실 보도는 JTBC의 ‘태블릿PC’ 보도가 터져 나온 다음날인 2016년 10월25일을 기점으로 풀렸다. TV조선은 10월25일 의상실 CCTV영상과 최순실 지하주차장 인터뷰 등을 이 기자의 표현을 빌리면 ‘재고 방출하듯 쏟아냈다.’

 

JTBC가 2016년 10월24일 보도한 '최순실 PC 파일 입수…대통령 연설 전 연설문 받았다' 리포트 갈무리.

 

2016년 10월25일 TV조선이 보도한 '최순실, 순방 일정 미리 받아... 대통령 의상 결정' 보도 영상 갈무리. 그는 책에서 “왜 10월24일 태블릿PC 보도 전까지 그토록 의상실 CCTV영상 보도를 반대했는지는 의문이다. 짐작해보면 CCTV영상을 보도하느냐 마느냐의 지점에서 기자들과 회사 상층부의 이해관계가 엇갈렸다고 생각한다…조선일보와 TV조선 상층부는 ‘박근혜 정권을 조선이 앞장서 주저앉혔다’는 대목만은 피하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썼다.

 

그는 의상실 CCTV영상과 관련해 “조선일보와 TV조선 상층부 역시 ‘박근혜-최순실의 관계’를 보여주는 결정적 물증이라는 것을 최소한 2016년 9월20일 한겨레의 ‘최순실 보도’ 이후쯤에 알았을 것이다. 당연히 우리가 손에 쥔 ‘실탄’이 뭔지 상층부에도 보고됐다는 게 합리적”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10월24일 태블릿PC 보도가 나오기 전주에는 ‘최순실’에 대한 의혹이 광범위하게 증폭되던 상황이라, 적어도 그 무렵엔 보도했어야 했다. 태블릿PC 보다 최소한 2~3일만 앞서 썼더라도 CCTV 영상을 묵혔다는 비난은 많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이진동 기자는 국정농단 사건 전반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큰 도움을 줬던 취재원으로 박관천 전 경정과 차은택의 후임으로 문화창조융합본부 본부장을 겸직했다가 40여 일만에 쫓겨난 여명숙 당시 게임물관리위원회 위원장을 꼽았다.

 

검찰 간부 A도 빼놓을 수 없다. 고영태로부터 구한 의상실 CCTV 영상을 방송에 써도 법적인 문제가 없는지 확인하기 위해 만난 이래, 여러 차례 법적 자문을 해주었다. A는 TV조선의 보도가 주춤하자 김의겸 기자에게 ‘미르재단이 본질이며 배후에는 최순실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최순실을 뱉어버린 A에게 이 기자가 물었다. "또 뭘 얘기했는데요?" A는 "정권의 명줄이 달려 있다고 했고, '영상이 있는 것 같더라'고 했다"고 답했다.

 

한편으로 국정농단 세력과 내통한 언론인이 있었다는 사실도 털어놨다.

 

“모 언론인은 이성한과 안종범 사이에서 메신저 역할을 하고, TV조선의 동향이 전달하는 통로가 되기도 했다…모 언론인이 어떤 의도로 그렇게 했는지는 모를 일이다. 아마도 불가근 불가원을 넘어선 취재원과의 ‘관계’에서 비롯됐을 것으로 이해는 되지만, 그의 행동은 국정농단 사건 보도를 망칠 뻔했다. 그 모 언론인은 아마 지금쯤은 스스로를 돌아보고 있을 걸로 생각한다.”

 

이진동 기자는 “이 책은 ‘촛불 혁명’의 불이 어떻게 댕겨졌는지에 대한 기록이다. 팩트를 발굴하고 확인해가는 기자 한 명 한 명의 ‘땀의 흔적’에 대한 얘기이기도 하다…정말 고마운 사람은 ‘이게 나라냐’며 촛불을 들었던 ‘촛불 국민’”이라고 머리말에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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