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국제부의 조은아 기자는 요즘 상복이 터졌다. 국내 미등록(불법체류) 이주아동의 인권 참상을 보도한 ‘그림자 아이들’ 시리즈로 ‘이달의 기자상’부터 제7회 인권보도상 대상까지, 1년 여 동안 사내·외 언론상 5개를 휩쓸었다. 기자생활 13년차에 찾아온 ‘황금기’다.
국제부에서 열심히 외신을 모니터하고 기사로 옮기던 그가 미등록 이주아동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순수하게 마음이 아파서”였다. “아이 엄마여서 더 그랬을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마침 당시 부장은 외신을 단순 번역하는데 머물지 말고 발로 뛰는 취재를 하라고 독려하던 참이었다. 부모의 ‘불법체류’ 낙인 탓에 최소한의 보살핌조차 받지 못하고 ‘그림자’처럼 살아가야 하는 아이들과의 만남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취재는 쉽지 않았다. ‘불법체류자’라는 신분 탓에 경계심은 컸고, 기사 써서 달라지는 게 뭐냐는 냉소도 강했다. 보수 신문에 대한 편견도 넘어야 할 장벽이었다. 그래도 꿋꿋하게 발품을 팔고 진심을 다하니 기획 취지에 공감하고 마음을 열어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반향은 컸다. 외국인보호소에 구금돼 추방될 위기에 놓인 미등록 청소년 페버 군의 사연이 보도되자 시민 1650명의 탄원서가 쇄도했다. 페버는 ‘구금 일시해제’ 형태로 50일 만에 풀려났다. 또 미등록 이주아동의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한 각종 법률 개정안이 국회에 발의되고, 정부는 실태 전수조사에 나섰다. “복에 겨울 만큼 반향이 많았어요.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계속 쓰라는 신의 계시인가, 하는 거창한 생각까지 들었답니다.”
수상 소식이 거듭 전해지면서 책임감은 더 커졌다. 그런 가운데 이주여성들의 ‘외칠 수 없는 미투’ 시리즈가 탄생했다. 글로 옮기기 고통스러울 정도로 참담한 이주여성들의 성폭력·성매매 실태를 취재하며 우리 사회 인권 현주소의 숨겨진 민낯을 목격했다. ‘약자 중의 약자’인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는 동안, 조 기자는 실로 오랜만에 가슴이 뜨거워지는 경험을 했다. 그리고 잊고 있던 질문 하나가 떠올랐다. 동아일보 최종 면접 때 받았던 질문이었다. “마지막 질문이었어요. ‘조은아씨의 이념은 뭡니까?’ 망설임 없이 ‘휴머니즘’이라고 답했어요. 애초에 기자가 된 이유가 그거였는데, 10년 넘게 기자 생활을 하면서 퇴색되고 잊어버린 거죠. 이번에 취재하면서 초심을 돌아보게 됐어요. 말하자면 ‘인생 기사’가 된 셈입니다.”
세상을 바꾸려고 쓰기 시작한 기사인데, 가장 많이 변한 것은 어쩌면 조 기자 자신인지도 모른다. 그는 ‘그림자 아이들’로 외부에서 받은 상금을 모두 미등록 이주아동을 위해 기부하고, 앞으로도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발굴해서 기사를 쓰겠다고 각오를 다진다.
“제가 특별히 잘 해서 상을 받은 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동안 여러 매체에서 많은 기자들이 노력해왔고, 지금도 곳곳에서 좋은 기사를 쓰고 있는 기자들이 있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모두 힘을 냈으면 좋겠어요. 변화는 같이 만들어 가는 거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