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효상 자유한국당 의원이 양상훈 조선일보 주필의 파면을 주장한데 대해 조선일보가 일체의 공식적인 대응을 하지 않고 있는 가운데, 강 의원을 강도 높게 비판하는 목소리가 조선 내부에서 나왔다.
자신을 “자유한국당이 공당으로서 역할을 잘 하길 바라는 조선일보 기자”라고 밝힌 닉네임 ‘어쩌다기자’는 1일 블라인드 앱에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께 보내는 공개편지’라는 제목의 글을 올려 “홍준표 대표는 당장 강효상 비서실장을 파면하라”고 주장했다.
‘역사에 한국민은 ’전략적 바보‘로 기록될까’란 제목의 어제(5월31일)자 양상훈 칼럼을 두고 “조선일보가 역사에 죄를 지어서는 안 된다”며 양 주필의 파면을 요구한 강 의원의 기자회견 이후 조선일보 내부에서 흘러나온 유일한 ‘목소리’인 셈이다. 조선일보는 전날 강 의원의 기자회견 보도는커녕 칼럼이나 사설 등을 통해 어떤 입장도 밝히지 않았다. 조선일보 관계자도 1일 기자협회보와의 통화에서 “대응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익명의 조선일보 기자는 홍준표 대표에게 쓴 공개편지에서 “언론을 자신의 영달을 위해 농락했던 자가 이번엔 주필 파면을 주장하며 논리도 없는 편지로 북한처럼 언론의 자유를 위협하는 꼴을 보니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고 분개했다.
강 의원이 방상훈 사장에게 보낸 공개서한을 ‘미러링’하는 방식으로 쓰여진 편지에서 해당 기자는 “강 의원은 청와대의 조선일보 비판 논평에 굴복해 주필의 칼럼이 나온 것처럼 선동해 조선일보의 신뢰도를 훼손했다”며 “북한을 지속적으로 샅샅이 뒤지는 핵사찰과 김정은 체제의 붕괴를 기대하는 칼럼이 청와대의 입장과 같다니 강 의원의 독해력이 의심스럽다”고 비판했다.
이어 “청와대의 한낱 논평에 위축될 조선일보가 아니”라면서 “조선일보는 사실만을 따져서 인정할 것은 인정하되 비판언론의 길을 흔들림 없이 갈 뿐이다. 강 의원 따위의 편지에도 흔들릴 이유가 없다”고 밝혔다.
편지는 또한 강 의원을 “권력에 아첨하여 편집국장에서 물러나자마자 몇 개월만에 비례대표를 받아낸 행실에 대해 부끄러움도 없다”고 꼬집으며 “이런 이중인격자를 두고 있으면 홍준표 대표도 이중인격자라는 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다. 이런 거짓보수는 당장 파면하고 출당해야 자유한국당의 명예를 지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있을 때도, 나갈 때도, 나가서도 골칫덩이인 강효상 의원과의 지긋지긋한 인연을 이젠 끝내고 싶다”며 “강효상 의원은 제발 어디 가서 조선일보 출신이라는 말은 입에 올리지 말길 바란다”고 글을 맺었다.
하태경 바른미래당 최고위원도 1일 자신의 페이스북 페이지에 글을 올려 “잘려야 할 사람은 양상훈 주필이 아니라 강효상 의원”이라고 비판했다. 하 최고위원은 “배현진 영입 때 한국당은 배씨는 언론탄압의 희생자여서 언론자유를 수호할 것처럼 떠들었다. 그런 한국당이 실제로는 언론탄압 정당임이 드러난 것”이라며 “한국당은 강 의원을 즉각 제명하여 언론탄압 정당, 블랙리스트 정당의 불명예를 씻어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더불어민주당 현근택 상근부대변인도 전날 논평을 통해 “아무리 전 직장이라고 하지만 국회의원이 특정 언론사의 주필을 파면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언론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으로서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며 “강 의원이 전 직장 선배를 비판하는 것은 자유이지만 아무런 관계가 없는 청와대를 끌어들이지 말아야 한다”고 비판했다. 양상훈 주필은 강 의원보다 먼저 편집국장을 지낸, 입사 2년 선배다.
한편 강 의원은 전날 ‘조선일보 방상훈 사장께 보내는 공개편지’란 제목의 글과 기자회견을 통해 “오늘 양상훈 주필의 칼럼을 보고 한겨레신문을 보고 있는지 깜짝 놀랐다”며 “양 주필의 칼럼은 그동안 북한의 핵 공갈에 겁먹은 한국사회 일각의 논리와 판박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공교롭게도 청와대가 공개적으로 조선일보를 협박한 이틀 뒤에 이런 칼럼이 실렸다. 관련성이 없다고 보기 어렵다. 이건 마치 조선일보가 청와대에 백기 투항을 한 것과 같다”며 “사장님이 변한 겁니까. 아니면 양상훈이 오버한 겁니까. 그것도 아니라면 양상훈이 정권과 결탁하여 무슨 일을 꾸미려는 것입니까. 도대체 조선일보에 무슨 일이 있는 겁니까”라고 했다.
그러면서 “오늘 칼럼으로 조선일보가 애국언론, 보수언론으로서의 조종(弔鐘)을 울리게 된 것이 아닌지 염려스럽다”며 “조선일보가 역사에 죄를 지어서는 안 된다. 부디 대한민국과 조선일보를 사랑하는 전직 사원의 충언을 가벼이 여기지 마시기 바란다”고 밝혔다.
비슷한 시각 홍준표 대표도 페이스북을 통해 “오늘 조선일보 칼럼을 보니 조선일보 사주가 어쩌면 이 사람(양상훈 주필)으로 바뀔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정권에 영합하지 않으면 언론도 참 힘든 세상“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