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개월 딸과 스위스로 여행을 다녀온 ‘용자’ 아빠가 있다. 강동효 서울경제신문 기자는 지난달 26일부터 온라인 전용 기사로 딸과 함께 한 8박9일간의 ‘스윗한’ 스위스 여행기를 연재 중이다. 지난해 12월 10년 근속 휴가를 이용해 스위스 루체른, 베른, 취리히 등을 둘러본 여정을 담은 기록이다. 군 제대 이후부터 줄기차게 혼행(혼자여행)을 즐기며 44개국을 다녀온 ‘자칭 중수 여행가’가 왜, 어쩌다, 그것도 하필이면 스위스로 떠났던 것일까.
“아이가 알프스 산맥의 정기를 받아 긍정적인 기운을 얻지 않을까 하는 이유도 있었지만, 가장 큰 건 예산 문제였죠. 여행을 많이 다니다보니 스카이팀 마일리지가 9만 점 넘게 있었고, 보너스 항공권을 검색해보니 일정상 스위스가 딱이더라고요.”
딸과 둘이서만 여행을 다녀오겠다고 하니 장모님은 물론 큰 처형까지 “애를 봐줄 테니 혼자 다녀오라”며 만류했다. 대구에 계신 부모님께는 말도 못 꺼냈다. 가족여행 제안에 딸과만 다녀오라며 농담 섞어 등을 떠밀던 아내도 처음 이틀은 초조해 했다. 하지만 걱정과 달리 딸은 비행기 안에서도 잘 먹고 잘 놀고 잘 잤고, 스위스에 가서도 엄마 한번 찾지 않는 신통한 아이였다. 여름휴가차 떠난 캐나다 여행에서 만들어져(?) 태명이 ‘로키’였던, 실제 이름도 록희가 될 뻔했던 딸 수아도, 어쩌면 그를 닮아 ‘여행 체질’인 것일까. “여행 가는 걸 좋아해요. 낯선 곳에 가면 두리번거리며 호기심을 보여요. 여행에 대한 피가 이어진 게 아닐까요?”
물론 ‘멘붕’이 찾아오는 순간도 때때로 있었다. 기껏 온천 호텔에 갔는데 수영복을 안 입겠다고 울고불고 할 때, 눈 내리는 언덕을 한 손으론 유모차를 밀고, 다른 한 손으론 캐리어를 끌며 올라갈 때, ‘내가 이러려고 여행 왔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덕분에 여행 기간 체중 2킬로가 빠졌다. 하지만 아이가 태어난 후 처음으로 둘이서만 꼭 붙어 지낸 9일간의 시간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값진 추억이 되었다. 그는 벌써 “2월쯤 일본 홋카이도에 가면 오호츠크해 유빙을 볼 수 있는데, 둘이 가볼까” 하며 딸과의 다음 여행을 구상 중이다.
“아이와 여행을 다녀오니 확실히 더 친해졌다는 느낌을 받아요. 굳이 멀리 가지 않더라도 ‘슈퍼맨이 돌아왔다’에서처럼 가까운 데 가서 같이 놀아주고 아빠 역할도 하면 좋을 것 같아요.”
그는 아이와의 여행이 부부 생활에도 도움이 된다고 했다. 배우자가 온전히 자기만의 시간을 보내며 육아 스트레스를 풀 수 있기 때문이다. 평소에도 출근하지 않는 토요일이면 그가 아이를 전담하고 아내는 자유 시간을 보내는데, 그러면서 예전보다 싸우는 횟수도 줄었다고 한다.
“옛날에 소방차 같은 그룹을 보면 그룹 가수들은 꼭 같이 활동했는데 요즘 아이돌들은 ‘유닛’이라고 해서 따로 활동하기도 하잖아요. 부부도 그런 개념으로 생각해요. 가족 여행도 하지만, 때론 혼자 하는 여행도 필요한 것 같아요. 아내도, 남편도 누구나 자기만의 시간이 필요한 거죠. 그렇게 서로 힘든 것에 대해 이해하고 공감대를 느끼면 가정이 잘 될 수 있지 않을까요?”
김고은 기자 nowar@journalist.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