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향이 틀리면 속도는 아무 의미 없다.’ 현덕수 YTN 기자의 카톡에 몇 년째 쓰여 있는 메시지다. 지난날, 이 한 문장은 그에게 큰 위안이었다. 2008년 낙하산 사장 반대투쟁을 벌이다 해고된 후에도, 9년 만에 복직하고서 다시 사장 퇴진파업에 나설 때도. 이 방향이 옳다는 확신을 줬다.
현 기자는 이달 초 YTN 보도국장에 내정됐다. 찬성률 77.75%로 구성원에게 임명동의도 받았다. 동의안 통과 이틀 후인 지난 16일 서울 상암 YTN 사옥에서 만난 신임 현 보도국장은 “그동안 우리는 올바른 방향을 찾기 위해 안주하지 않아서 진통과 아픔을 겪었다”며 “이제 방향을 따라 속도를 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지난 10년간 ‘낙하산’ ‘부적격’ 사장 논란, 노사갈등으로 홍역을 치른 YTN은 도약을 준비한다. 정찬형 사장 내정자와 현 국장 등 새 리더십에 쏠리는 기대도 크다. 다음 주 공식 취임을 앞둔 현 국장은 분주한 모습이다. 조승호·노종면 기자와 머리를 맞대 만든 혁신안을 실제 적용하기 위한 준비에 한창이다.
이들이 내놓은 혁신안의 핵심은 효율성과 차별화다. 비대하고 노쇠해진 보도국, 한정된 인력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운용하느냐다. 시니어 기자들에게 적절한 역할을 부여하고 젊은 기자들에겐 새로운 뉴스 개발 기회를 주자는 제안을 담았다. YTN에서만 볼 수 있는 차별화한 콘텐츠 생산도 과제다.
“젊은 기자들에게 업무가 쏠리다보니 뉴스를 제대로 고민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하루하루 때우는 방식이었죠. 이런 과정에서 평론식 보도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했고요. 업무 재편과 차별화 콘텐츠가 필요합니다. 그래야 YTN이 24시간 뉴스채널로서 우리사회에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YTN 저널리즘의 원형이 무엇인지 답을 내릴 수 있을 겁니다.”
치열한 방송뉴스 시장에서 YTN은 뒤늦게 ‘정상화’의 첫발을 내디뎠다. 부담이 클 법도 하지만 현 국장은 걱정대신 기대를 드러냈다. YTN의 ‘현장, 지금, 속보’라는 브랜드 이미지는 지금도 살아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정확하고 빠른 팩트에 맥락과 통찰을 더하고 정의, 인권, 평등, 평화, 환경, 젠더 등의 가치를 반영해 경쟁력을 높이겠다고 강조했다.
현 국장이 풀어야 할 또 다른 숙제는 YTN 내부의 화합이다. 10년간 숱한 갈등을 겪으며 구성원 사이에 불신이 생겼다. 깊게 패인 상처는 아직 아물지 못했다. 그는 더 이상 보도국에서 ‘적폐 청산’이란 말을 쓰지 않을 생각이다. 밝혀야 할 과거는 짚고 넘어가야겠지만, 적폐 청산에만 매달리면 “YTN의 불행한 역사가 반복될 것”이라고 우려해서다.
“2008년 해직 당시 저도 상대측에겐 청산해야 할 대상이었어요. 갈등의 골을 메우려면 더는 적폐 규정, 청산이 아니라 세대교체와 기회균등 차원에서 풀어야 합니다. 서로 실력을 보여주고 그에 따라 승복하면서 미래를 열어가야 한다고 봐요. 10년간 YTN을 짓눌렀던 노사갈등을 딛고 새 출발선에 선 만큼 다시 한 번 애정과 질책 부탁드립니다.”
김달아 기자 bliss@journalist.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