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6시. 퇴근하려는 조용히 씨에게 상사가 ‘찌릿’하며 말한다. “매일 칼퇴하네?” 뒤따르는 용히 씨의 반격. “칼퇴 아니고 정시퇴근인데요.”
인기 인스타툰(인스타그램에서 연재되는 웹툰) <삼우실> 속 한 컷이다. 주인공 용히 씨는 사무실 ‘꼰대’에 맞서 사이다 발언을 쏟아낸다. <삼우실>이 그리는 직장생활에 구독자 9만3000여명은 공감하고 또 통쾌해한다.
지난해 11월 웹툰 작가 ‘디기’는 <삼우실> 연재를 시작했다. 베일에 싸여 있던(?) 그의 정체는 CBS 디지털미디어센터 김효은 기자와 강인경 그래픽디자이너다. ‘디’자이너와 ‘기’자의 첫음절을 합해 디기란 작가명을 만들었단다. 그간 웹툰에서 CBS 소속임을 밝히지 않았던 두 사람은 지난달 31일 기자와 만나 “이제 공개할 준비가 됐다”며 웃었다.
김 기자와 강 디자이너는 새로운 디지털 콘텐츠를 고민하다 웹툰을 떠올렸다. 종종 사회 이슈를 만화로 그려냈던 게 좋은 반응을 얻었던 터였다. ‘직장생활 호신술’을 주제로 잡고 캐릭터를 짰다. 회사생활을 알 만큼 아는 중고신입 조용히를 핵심 인물로 내세웠다. 두 사람이 직접 겪은 일, 지인들의 경험, 커뮤니티 글을 기반으로 스토리를 구성했다. ‘글작가’ 김 기자가 스케치북에 콘티를 그려 넣으면 ‘그림작가’ 강 디자이너가 웹툰으로 구현하는 식이다.
한 달여의 준비 끝에 지난해 11월 <삼우실> 1화가 인스타에 올라갔다. 2화, 3화…. 회차는 늘어갔지만 초반부터 구독자의 이목을 끌진 못했다. 김 기자와 강 디자이너는 24시간 인스타에서 살았다. 다른 이들의 계정을 찾아다니며 먼저 댓글을 달고 ‘좋아요’를 눌렀다. #주말데이트 #불금 #네일아트 #봄코디 처럼 직장인들이 검색해볼 만한 해시태그를 달기도 했다. 두 사람의 노력이 먹혀든 걸까. 구독자 수는 가파른 상승곡선을 그렸다. 지난 3월 1만명이던 구독자는 지난 6월엔 5만명, 현재는 10만명을 눈앞에 두고 있다.
“공감의 힘이 큰 것 같아요. ‘나만 불편한 게 아니었어’, ‘우리회사 얘기인 줄’ 같은 댓글이 많아요. 사이다 캐릭터 용히에게선 대리만족을 느끼죠. 그래서인지 저희에게 회사생활 고충을 털어놓는 분들이 꽤 있어요. 고민상담 메시지를 받을 때마다 곧바로 답변해요. 11년차 기자생활을 바탕으로 이런저런 조언을 건넵니다. ‘작가님이 직접 답장해줘 고맙다고’들 하시는데, 오히려 제가 더 감사하죠.”(김효은)
10개월째 웹툰 작가로 살고 있는 두 사람은 늘 창작의 고통을 느낀다면서도, <삼우실> 이야기를 하는 내내 즐거워 보였다. “그래픽디자이너로 입사했는데 만화가가 됐네요.(웃음) 우리 만화가 좋은 반응을 얻고 구독자 수도 점점 늘어나는 걸 보면 뿌듯해요. 삼우실이 엄청 유명해졌으면 좋겠어요. 앞으로도 이것저것 해볼 게 많거든요.”(강인경)
곧 기존 웹툰에 음성·움직임을 더한 영상 콘텐츠를 선보일 예정이다. 다음달 단행본 출간을 앞뒀다. 광고·협찬 문의도 잇따르고 있다. 인스타툰 구독자들은 광고에 대한 거부감이 크지 않은 편이다.
“일단 시도해보자던 웹툰 연재가 안정적으로 자리 잡고 있어요. 영화 <청년경찰> 주인공의 대사처럼 ‘열정·집념·진심’이 통한 것 같아요. 하하. ‘CBS가 만드는 삼우실’이 아니라 ‘삼우실 재밌던데, CBS가 만들었대’라는 말을 듣고 싶어요. 앞으로도 <삼우실> 작가로 재밌게 일하겠습니다!”(김효은)
김달아 기자 bliss@journalist.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