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 밝히겠다는 기자의 진정성을 봤다, 그것이 내가 말 한 이유다"

독립언론 셜록·뉴스타파의 힘 <하> 그들은 어떻게 독자의 신뢰를 받았을까

박상규 기자는 매달 돈을 빌리러 다녔다. 지난해 설립한 진실탐사그룹 셜록의 형편이 녹록지 않았다. 2014년 오마이뉴스 퇴사 후 스토리펀딩에 연재한 <재심 3부작>은 ‘대박’을 쳤지만 독자 후원모델을 내세운 셜록은 흥행하지 못했다.


셜록 기자 2명의 월급날이 다가올 때마다 박 기자는 주변에 손을 벌릴 수밖에 없었다. 오죽 답답했으면 그가 기사로 공격했던 이에게까지 돈을 빌렸을까. 재심 3부작 중 <가짜 살인범 3인조의 슬픔>편에 언급된 ‘삼례 나라슈퍼 살인사건’의 진범에게 도움을 청했다.


박 기자는 보도 이후에도 연락을 주고받았던 진범에게 어렵게 말을 꺼냈다. 당장 여윳돈이 없다던 그는 이내 150만원을 부쳐줬다. “신용카드 현금서비스로 받을 수 있는 금액이 이것뿐이다. 박 기자가 나한테까지 돈을 빌려달라고 할 정도면 얼마나 힘들었겠느냐”면서.


셜록은 <몰카제국의 황제 양진호> 보도를 시작한 이달 들어서야 걱정을 조금 덜었다. 아직 많은 수는 아니지만 기존에 비해 후원자가 2배가량 늘었다. 셜록과 협업해 양진호 사건을 취재·보도한 독립언론 뉴스타파도 후원자 수가 소폭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광고나 협찬 없이 독자 후원금만으로 운영되는 독립언론의 힘은 ‘보도’에서 나온다. 기성언론에 비해 정치·자본 권력, 출입처 등의 압력에서 벗어나 넓고 깊게 취재할 수 있다. ‘양진호 보도’에 앞서 박 기자의 재심 3부작(익산 약촌 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 삼례 나라슈퍼 살인사건, 무기수 김신혜 사건), 뉴스타파의 <조세도피처의 한국인들>, <이건희 회장 성매매 의혹> 등은 기성언론에서 쉽게 볼 수 없었던 보도다. 이들은 탐사보도를 무기로 굵직한 보도를 이어가며 독자의 신뢰를 쌓아가고 있다.



‘양진호 폭행 영상’ 속 피해 당사자인 위디스크 전직 직원 A씨, 또 다른 폭행 피해자 대학교수 B씨가 자신을 찾아온 셜록·뉴스타파 기자들을 믿고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것도 그간 두 언론이 해왔던 보도 덕분이었다. 폭행 피해자 A씨는 기자협회보와의 통화에서 “뉴스타파는 생긴 지 얼마 되진 않았지만 굵직굵직한 보도를 해왔던 걸 알고 있었고 셜록은 처음 들어봤다”며 “기사를 찾아보고 기자들과 대화하다 보니 신뢰가 갔다. 적극적으로 도와준다는 말을 믿고 실행에 옮기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A씨는 “이번 일을 겪으면서 큰 언론사보다 독립언론에 대한 믿음이 커졌다. 기자들이 소신 갖고 일하는 게 눈에 보였다”며 “작은 언론사 기자에게 소신이 없다면 사회적 반향을 일으키는 보도를 하기 어렵고 국민에게 신뢰도 얻지 못할 것 같다”고 말했다.


기자들이 취재 전후로 보여준 모습도 이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취재는 보도를 위한 일회성 만남이 아니라 기자와 취재원이 관계를 맺는 과정이었다. 기자들은 피해자들에게 변호사 등 도움을 줄 수 있는 이들을 연결해주고 잘 지내는지, 필요한 것은 없는지 지속적으로 안부를 묻고 있다.



언론에 반감이 있었다는 폭행 피해자 대학교수 B씨는 셜록·뉴스타파 기자들에게 진정성, 책임감, 사명감을 느껴 인터뷰에 응했다고 했다. B씨는 “언론은 사건의 본질이나 문제 해결보다 보도 자체에만 관심을 둘 것이라는 인식이 있었다”면서 “두 언론사 기자들을 만나보니 보도가 목적이 아니라 사건의 진실을 밝히겠다는 의지가 진정성 있게 와 닿았다”고 말했다. B씨는 “셜록과 뉴스타파, 나중에 합류한 프레시안을 보면서 직업인으로서의 사명감, 마땅히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됐다”며 “이들이 보여준 모습은 기자사회에서 귀감이 되는 모델이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매일 정해진 분량대로 기사를 써야 하고 방송을 만들어야 하는 기성언론에선 독립언론 같은 탐사보도는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최근 여러 언론사가 탐사보도팀을 꾸렸지만, 단시간에 성과를 내야한다는 내부 압박이 상당하다. 취재부서 기자들의 경우 출입처 중심의 취재관행 속에서 쏟아지는 정보를 하루하루 소화하다보면 탐사보도나 장기취재에 나설 여력이 없다. 양진호 사건을 취재한 강혜인 뉴스타파 기자는 “출입처에 나가 있는 기자 상당수가 취재 시간이 충분하지 않아 힘들어한다. 수습 때부터 야마(기사의 중심 주제)를 잡고 그에 맞게 취재하는 방식을 배우는 것도 짧은 시간에 기사를 완성해야 하기 때문”이라며 “탐사보도는 여러 가능성을 열어두고 처음부터 끝까지 취재하는 작업이라 시간이 많이 든다. 뉴스타파는 지금도 ‘양진호’를 계속 추적하고 있다”고 말했다.


강현석 뉴스타파 기자도 “기성언론에 있었다면 ‘폭행 피해 교수님’ 같은 사례는 실패하기 좋은 아이템”이라며 “교수님의 증언만 있는 상황, 이미 양진호는 검찰 기소단계에서 혐의없음 처분을 받았다. 취재기자가 증언을 뒷받침할 증거를 바로 가져오지 못하면 킬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저희는 취재과정에서 교수님이 폭행당한 정황을 목격한 이들을 찾았고, 이들이 묘사한 당시 상황이 교수님의 증언과 일치하는 것을 확인했다”며 “취재에 시간적 여유가 없는 기성언론에선 어려울 수밖에 없다. 저희 같은 탐사보도 매체가 그런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상규 기자는 많은 기자들이 탐사보도하는 보람을 느끼길 바란다고 전했다. 박 기자는 “이번 보도로 양진호가 구속된 것보다 폭행 피해자 A씨와 B교수가 자존감을 회복하는 과정을 지켜보는 게 더 기뻤다”며 “탐사보도하며 그들과 관계 맺고 오래 만나다보면 그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다른 기자들도 이런 감동을 느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달아 기자 bliss@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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