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주말, 무료하게 낮잠을 자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잠을 좋아하긴 하지만 이제 정말 낮잠은 지겹다.’
마흔을 코앞에 둔 15년차 기자의 하루하루는 재미없이 흐르고 있었다. 단조로운 일상, 새로운 무언가가 필요했다. 그길로 발레 학원을 찾았다. 어릴 적 배우고 싶었던 발레에 무작정 도전한 것이다.
어느덧 취미 발레 4년차. 그간 “몸을 다시 빚다 보니” 눈에 띄게 살이 빠졌고 굽었던 어깨가 펴졌다. 답답하고 우울했던 마음도 사라졌다. “체력이 좋아져서 심한 감기를 앓지 않아요. 비염이 사라지고 거북목도 교정됐어요. 더 말하면 발레 ‘간증’처럼 보일까 봐, 그만할게요. 하하.” ‘발레 전도사’로 변신한 최민영 경향신문 기자의 이야기다.
최 기자는 최근 에세이 <아무튼, 발레>를 펴냈다. 일상의 소소한 즐거움을 주제로 한 ‘아무튼’ 출판 시리즈에서 ‘발레’편 작가로 참여했다. 4년간 발레를 배우며 보고 듣고 느낀 걸 솔직하게 풀어냈다. 그의 글 곳곳에선 발레를 향한 열정이 담뿍 묻어난다. “클래식 피아노 선율에 맞춰 내 몸을 온전하게 몰입하는 기쁨은 그 어디에서도 얻을 수 없어요.”
기사를 쓰면서 ‘이성적인 언어’로 살아가던 최 기자에게 발레는 신세계였다. 이렇게나 ‘감성적인 몸짓’이라니! 언어만큼이나 몸에도 풍부한 세계가 있다는 걸 난생 처음 깨달았다. 아주 조금이라도, 지난번보다 나아진 동작이나 근력을 확인하며 발레하는 기쁨을 느꼈다.
무엇보다 발레가 준 가장 큰 교훈은 목표를 이루는 순간보다 목표를 향해 가는 순간이 더 즐거울 수 있다는 거였다. 20대 중반에 기자가 된 그는 지난 10여년을 전속력으로 달려왔다. 부서질 듯 노력하고 몰입하는 삶에 익숙했다. 스스로가 소진될 정도로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늘 불안했고 죄책감에 시달렸다. 이런 그에게 발레는 몸과 마음의 힘을 빼게 해줬다.
“우울에 빠진 사람들은 보통 자기 자신을 괴롭히고 쥐어뜯어요. 이럴 땐 생각의 방향을 돌리는 게 도움이 될 수 있어요. 발레는 피아노 선율에 맞춰 몸을 느리게 또 빠르게 움직이잖아요. 온전히 집중하지 않으면 수업을 따라갈 수 없으니까, 그 시간만큼은 자신 힐난하기를 멈출 수 있어요. 잠깐이라도 몸을 움직이면 삶의 무게가 가벼워지더라고요.”
최 기자는 동료들에게 발레뿐 아니라 오래 할만한 취미를 권하고 있다. 좋은 기자로 롱런하기 위해선 개인의 삶 역시 건강하게 가꿔야 한다는 생각이다. 또 다양한 삶의 결을 품는, 행복한 개인이 기자로서 좋은 저널리즘도 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는 10년 뒤 “실버 아마추어 발레단 입단”을 목표로 취미 발레를 이어갈 계획이다. “몸의 언어를 배우는 기자로서, 앞으로 이 경험을 저널리즘에 어떻게 접목할지 저 자신도 기대됩니다.”
김달아 기자 bliss@journalist.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