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의 댓글을 읽어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 독자가 되었다

[잃어버린 독자를 찾아서] ④ 독자와 소통하는 기자들

김달아 기자 | 2019.01.23 17:04:43

KBS 기자·PD가 자발적으로 만드는 유튜브 채널 <댓글 읽어주는 기자들> 제작진. 왼쪽부터 KBS 홍성희 기자, 선상원 촬영기자, 김기화 기자, 오귀나 라디오PD, 박은진 작가, 옥유정 기자, 강병수 기자. 지난 17일 서울 여의도 KBS 라디오 부스에서 <댓읽기> 촬영 중인 이들을 만났다. /김달아 기자

매주 목요일 ‘KBS 뉴스9’가 끝난 밤 10시. 별난 방송을 하는 KBS 기자들이 있다. KBS 기사에 달린 댓글을 모아 기자들이 직접 답변하고, TV 뉴스에선 볼 수 없는 취재 뒷이야기를 다루는 유튜브 채널 <댓글 읽어주는 기자들>(댓읽기) 제작진이다.


김기화 KBS 기자가 자발적으로 기획한 댓읽기는 현업에서 일하는 기자들과 PD가 “사내 수공업”으로 만든다. 주제 선정부터 기자 섭외, 댓글 취합, 영상 촬영, 편집, 자막 작업, 유튜브 업로드, 대댓글 작성까지 콘텐츠 제작 전 과정이 이들의 손끝에서 이뤄진다.


댓읽기를 진행하는 김기화·홍성희·옥유정·강병수 기자, 영상담당 선상원 촬영기자, 제작총괄 오귀나 라디오PD, 박은진 작가는 목요일 밤마다 촬영을 위해 한자리에 모인다. 목요일이던 지난 17일 오후 10시쯤 서울 여의도 KBS 라디오 부스에서 이들을 만났다. 각자 업무를 마치고 퇴근할 시간에 다시 일하는 셈인데, 피곤한 기색 없이 촬영 내내 웃음이 터졌다. 이날 ‘양승태 전 대법원장’ 이슈를 다룬 촬영은 자정을 넘겨서야 끝났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이들은 왜 사서 고생하는 걸까.


후배들에게 댓읽기 제작을 제안한 김기화 기자는 뉴스 소비자와의 괴리감을 이유로 들었다. 김 기자는 “기사를 쓰고 나면 부장의 칭찬이나 기자들끼리의 평가에만 관심 갖고, 소비자(시청자·독자)의 반응은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며 “기자와 소비자 모두 답답해하고 오해도 생겼다. 이제 쌍방향으로 이야기할 때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옥유정 기자에게도 같은 문제의식이 있었다. 특히 넉 달 동안 파업을 마치고 지난해 1월 복귀한 이후 시청자와 멀어진 거리를 다시 한 번 체감했다. 옥 기자는 “파업할 땐 거리에서 사람들을 만나 직접 소통했지만 복귀하고선 그러지 못했다”면서 “KBS 뉴스는 시청자를 너무나 많이 잃었다. 우리가 직접 다가가서 시청자들의 바짓가랑이라도 붙잡아야 했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지난해 8월 “본격 KBS 소통 방송”을 내세운 유튜브 채널 <댓읽기>를 시작했다. 포털사이트·SNS·커뮤니티 등에서 KBS 기사에 달린 댓글을 가감 없이 소개하는 콘셉트다. 기자들은 댓글에 직접 답변하면서 소통한다. 날선 비판엔 고개를 숙이고 실수를 지적하면 적극적으로 사과한다. 방송에서뿐 아니라 실제로도 기자와 네티즌이 댓글에 대댓글을 달며 대화하는 과정이 이어진다. 또 취재기자들이 출연해 기사에 담지 못한 이야기를 풀어내면서 콘텐츠의 깊이를 더한다.


초반엔 주목받지 못했던 댓읽기가 올해 들어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다. 최근 2주 만에 유튜브 채널 구독자 수가 2배 이상 뛰었다(현재 8500여명). 유튜브 영상엔 댓글 수백 개가 달렸다. 이제 악플보단 “KBS 뉴스를 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젊은 기자들을 한 번 믿어보겠다”, “수신료도 아깝지 않다는 생각이 생에 처음 들었다” 등 응원이 많다. 6개월 전 기자들이 자발적으로 시작한 댓읽기는 이런 호응에 힘입어 다음달 KBS1 라디오 편성을 앞두고 있다.


강병수 기자는 “더 말하고 싶은 기자와 더 듣고 싶은 시청자(구독자)의 니즈가 딱 맞아떨어진 것 같다”며 “이야기꾼인 기자에게 시청자가 댓글로 추임새를 넣어주니까 더 신나게 취재하고 방송하게 된다”고 말했다.  


매주 주말 시간을 쪼개 댓읽기 영상을 편집한다는 선상원 촬영기자는 “누가 시켜서 한 일이면 금방 지쳤거나 반발했을 것”이라면서 “방송사에선 방송 뉴스가 제일 중요한 채널이지만, 시청자와 소통하려면 디지털도 일상 업무공간으로 인식해야 한다. 댓읽기가 더 잘돼야 변화해야 한다는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다”고 했다.


구독자 수가 늘어나고 댓글이 쌓이는 만큼 기자들도 깨닫는 게 많다. 홍성희 기자는 “댓글을 통해 시청자가 무엇을 원하는지 자연스럽게 파악할 수 있다”면서 “시청자를 추상적으로 생각하는 것과 댓글로 하나하나 구체화해 만나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 댓글을 보면서 내 기사가 ‘야마’로 잡은 것과 달리 다양한 시각에서 소화될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고 했다. 옥유정 기자는 “대부분 누가 이 기사를 보는지 전혀 알지 못하고 취재하지 않느냐”면서 “직접 소통해보니 시청자가 생각보다 더 가까이 있음을 느낀다. 자주 댓글 다는 분들이 친근하게 느껴지고, 어떤 반응일지 기다려진다”고 말했다.


댓읽기의 사회자이자 ‘프로 대댓글러’로 불리는 김기화 기자는 기자들이 뉴스에 댓글 다는 이들을 방치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김 기자는 “매일 대댓글을 달아보니 악플러들은 나쁜 사람이 아니더라”면서 “처음엔 험한 말로 댓글을 썼던 분들도 제가 ‘오해다, 죄송하다, 열심히 하겠다’고 대댓글을 달면 ‘KBS 파이팅!’으로 마무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동안 기자들이 댓글러를 챙겨야 할 장치가 없었다”면서 “우리는 그 수단으로 댓읽기를 만든 것”이라고 덧붙였다.


체험형 기사 <남기자의 체헐리즘>을 연재하는 남형도 머니투데이 기자. 지난해 10월27일자 ‘홍대의 중심에서 구토물을 쓸다’편에 실린 남 기자의 모습이다. 8시간 동안 환경미화원으로 일한 남 기자가 새벽 5시 홍대에서 쓰레기를 쓸고 있다. 오른쪽 사진은 남 기자의 평소 모습.

체험형 기사 <남기자의 체헐리즘>을 연재하는 남형도 머니투데이 기자는 포털사이트 뉴스페이지 댓글창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자신의 기사에 댓글을 단 독자들의 반응을 일일이 확인하고 질문을 남긴 이들에겐 답글을 달아준다. 체헐리즘 시리즈 댓글마다 이 기사를 쓴 이유, 취재하면서 느낀 점, 다음 취재 계획 등도 직접 밝힌다.


그는 지난 12일자 ‘미세먼지를 눈으로 봤다’편 댓글창엔 “기사를 작성한 남형도 기자입니다. 미세먼지는 사실상 매일 견뎌야 할 일상이 됐는데 그저 들이마셔야만 하는 게 답답했습니다. 대체 이게 뭔지, 눈으로 직접 보면 경각심을 높일까 싶어 시작한 기사입니다. 추후 대책에 대해선 앞으로 꾸준히 기사를 쓸 예정입니다”라고 남겼다. 독자들은 고맙다는 댓글로 남 기자를 응원했다.


포털사이트에서 자신이 쓴 기사에 댓글 다는 기자는 흔치 않다. 남 기자도 처음엔 주저했다. 하지만 독자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가려운 부분이 어디인지 직접 물어보고 싶었다. 남 기자는 “기사를 보는 건 독자들”이라며 “쌍방향으로 소통해야 독자 눈높이에 맞는 취재를 할 수 있겠다 싶었다”고 말했다.


남 기자의 댓글창에선 기사에 대한 평가부터 취재 아이템, 제보 등 다양한 의견이 오고간다. 그는 “댓글창이 독자들과의 대화의 장이 된 것 같다”면서 “기사에서 미처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댓글로 전하면서 재미를 느낀다. 이런 피드백이 기사의 품질을 높이는 데도 큰 도움이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연지 CBS 기자는 2017년 10월부터 유튜브 채널 <기자 김연지>를 운영하고 있다. IT분야를 담당하는 김 기자는 주로 새로운 기술·제품을 쉽게 설명하는 영상 콘텐츠를 올리고 있다. 김 기자는 “유튜브에서 구독자들과 댓글을 주고받다 보면 잘 아는 사람과 직접 이야기하는 기분이 든다”고 말했다.

김연지 CBS 기자는 포털사이트 대신 유튜브를 택했다. 매일 셀 수 없이 쏟아지는 기사 가운데 포털 메인에 걸리는 건 손에 꼽을 정도다. 오랫동안 취재하고 공들여 쓴 기사라도 포털이 외면하면 독자에게도 읽히지 못한다. 김 기자는 “포털 알고리즘에 따라 내 기사의 완성도나 평가가 좌우되는 현실”이라며 “독자들에게 ‘우리가 좋은 기사를 썼으니 와서 봐라’가 아니라 이걸 가지고 사람들이 많이 있는 곳(유튜브)으로 찾아간 것”이라고 설명했다.


IT분야를 담당하는 김 기자는 2017년 10월부터 유튜브 채널 <기자 김연지>를 운영하고 있다. 새로운 기술·제품 리뷰 영상이 주력 콘텐츠다. 구독자는 4800여명. 김 기자는 “유튜브 댓글은 일반적인 기사에 달리는 것과 확연히 다르다”면서 “유튜브에서 구독자들과 댓글을 주고받다 보면 잘 아는 사람과 직접 이야기하는 기분이 든다”고 말했다.


검색 기반으로 콘텐츠가 유통되는 유튜브에선 오래전 영상에도 새 댓글이 달린다. <기자 김연지>에서도 업로드 당시엔 조회수가 두 자리였던 영상이 1년 후 1~2만회를 넘어선 것들이 있다.  


김 기자는 “예전 영상에 새로 달리는 댓글을 보면서 ‘아직 여기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있구나, 이렇게 생각하기도 하는구나’ 등 다양한 피드백을 얻는다”며 “유튜브 운영이 힘들지만 재미와 보람이 더 크다. 믿고 봐주는 구독자들이 실망하지 않도록 제대로 기사 쓰고 좋은 영상을 만들어야겠다는 의무감이 생겼다”고 밝혔다.


기자 개인의 노력이 아니라 회사 차원에서 독자에게 다가가는 시사IN, 한겨레21 기자들에게 독자는 더욱 피부에 와 닿는 존재다. 시사인 기자들은 2017년부터 ‘중림동 다이내믹’ 행사 등을 열어 독자를 직접 만났다. 한겨레21도 지난해 7월 ‘독편3.0’(독자편집위원회)을 시작해 오프라인 모임, 카톡방 개설 등 독자와 접점을 늘리고 있다.


장일호 시사IN 기자는 오프라인에서 독자와 마주한 경험을 “나의 쓸모를 확인하는 순간”이라고 설명했다. 장 기자는 “내 글을 읽는 사람이 누구인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직접 얼굴 보고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좋았다”며 “마감하고 나면 기사가 공중에 흩어지는 기분이었는데, 독자를 만나고선 내 기사를 읽어주는 이들이 있다는 게 큰 힘이 되더라”라고 말했다.


다만 장 기자는 독자와 대면하는 것만으로 기자에게 전적인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라고 봤다. 독자의 피드백은 중요하지만 기자가 이를 따라가다 균형감각을 잃을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 한다는 것이다. 장 기자는 “독자의 반응은 여러 의견 중 하나인데 기사 쓰는 데 절대적인 영향을 끼쳐선 안 된다는 생각”이라며 “기사를 조금 더 친절하게 쓴다거나 기사 후 이야기를 다양하게 만들어내는 식으로 독자의 의견을 풀어내야 한다”고 말했다.


독편을 통해 ‘독자 참여 저널리즘’을 실험 중인 한겨레21도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다. 독편 담당자인 진명선 한겨레21 기자는 “기자 또는 뉴스룸이 독자들의 의견을 활용해 기사 퀄리티를 높이려면 어떤 방식으로 해야 할지, 그 황금비율은 어떻게 되는지 찾아야 한다”며 “일단 독자들을 만나기 시작했지만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뉴스룸에선 보도의 품질을 높이는 계기가 되고, 독자들에게는 소속감·효능감을 줄 수 있는 지점이 어디일까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달아 기자 bliss@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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