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창립 30돌을 맞은 전국언론노동조합은 지금 전환기에 있다. 보수정권 9년간 언론운동 진영을 연일 싸움터로 내몰았던 ‘언론장악’이라는 적은, ‘촛불’ 이후 적어도 눈앞에서는 사라졌다. 해직언론인이 돌아왔고, 황폐화되었던 공영방송은 이른바 ‘정상화’ 수순을 밟아가고 있다. 그 모든 투쟁의 구심점 역할을 했던 언론노조는 이제 안팎으로부터 새로운 과제를 요구받고 있다. 지난 4일 취임한 오정훈 신임 언론노조 위원장이 “누구도 가지 않은 길을 가겠다”고 한 것은 그런 배경에서다. 오 위원장은 “이전의 적이 있는 싸움보다 더 섬세하고 정책적이고 힘든, 언제 끝날지 모르는 싸움이 될 것”이라고 앞으로의 2년을 전망했다.
작금의 언론환경 변화는 전보다 훨씬 복잡하고 다층·다면적이다. 공영방송 정상화의 물꼬는 텄지만 신뢰 회복은 더디고, 미디어 업계 내 경쟁은 더 치열해졌으며, 그만큼 언론노동자들이 처한 조건도 악화일로에 있다. 언론계 내부의 업종·직종간 이해충돌 양상도 이전보다 복잡해졌다. 이런 상황에서 언론노조는 “단순한 조정자 역할에 머물러선 안 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오 위원장은 “언론의 위기를 돌파하는 핵심적인 기치는 공공성 확보”라며 “제대로 된 저널리즘을 살리고 언론의 공공성을 확보하는 투쟁이 광범위하게 펼쳐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핵심공약으로 대통령직속 미디어개혁국민위원회(가칭) 설치를 제안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전임 9대 집행부에서 수석부위원장을 지낸 오 위원장은 “2기 산별노조의 완성”이라는 과업도 안고 있다. 언론계 유일한 산별노조로서의 역할과 책임을 강화하고, 업종별 산별 교섭도 확대 추진하겠다는 계획이다. 앞서 지난해 언론노조는 산별 전환 이후 18년 만에 처음으로 지상파 방송 4사와 공정방송, 제작환경 개선 등을 골자로 한 산별협약을 체결하며 전환점을 마련했다. 오 위원장은 “지상파 4개사와 협약을 맺음으로써 다른 방송사나 노조가 구성되지 않은 사업장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며 “유럽식 산별로 가는 첫 단추를 끼웠다”고 자평했다. 그러면서 “향후 언론노조 산하의 대형 일간지, 뉴스통신사업자의 공동협약을 추진하는 등 산별협약을 확장할 것”이라고 밝혔다. 우선 당면과제인 근로시간 단축과 관련해 언론노조는 각 사업장에 법률자문과 협상 가이드라인 등을 제공하며 “끊임없이 소통”하고 있다. 오 위원장은 “조합원들이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쉴 수 있는 취재·제작현장을 보장하며 최장 노동시간을 막겠다”고 했다.
그는 취임사에서 “비정규 노동자들에게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 조합원들에게는 더 가까운 산별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언론노조는 지난해 비정규직 노조인 tbs지부와 방송작가지부를 설립하며 비정규직 조직화의 첫 걸음을 뗐다. 오 위원장은 “여전히 특수고용노동자를 포함해 많은 미조직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존재하고, 조직 상담과 법률 지원 요청도 많이 받고 있다”며 “정규직 노조와의 이해충돌도 있지만 비정규 노동자들의 노동의 가치가 인정받을 수 있도록 정규직 노조와 연대하고 이익을 나눌 수 있는 논의들을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시대가 변하고 발전하면서 언론환경도 어려워졌고 힘든 노동강도가 버티고 있다. 하지만 우리 곁에는 힘들어하는 비정규 노동자들이 함께 있다”면서 “외연을 확대하면서도 가까이서 힘을 줄 수 있는 노조가 되기 위해 노력 중이다. 함께 힘을 보태달라”고 당부했다.
김고은 기자 nowar@journalist.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