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재범 사건'… 체육계 성폭력 조명

[제341회 이달의 기자상] SBS 이슈취재팀 이경원 기자 / 취재보도1부문

이경원 SBS 기자. 지난해 말, 쇼트트랙 금메달리스트인 심석희 선수가 조재범 전 코치로부터 수차례 성폭력을 당했다는 제보를 받게 됐습니다. 저희는 첫 보도를 하기 전까지 심석희 선수 변호인 측과 열흘에 가까운 조율 과정을 거쳤습니다. 낙종 가능성이 있더라도, 2차 피해를 차단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 5차례가 넘는 회의를 통해 보도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회람했고, 팩트 하나하나를 어떻게 전달해야 할지 다듬는 과정을 거쳤습니다.


먼저, 피해 당사자 인터뷰에 집착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웠습니다. 당사자의 눈물 섞인 인터뷰는 단기적인 시청률 견인에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성폭력 피해자가 동정의 대상으로 비쳐 사건의 본질을 흐릴 수 있는 맹점이 있다고 봤습니다. 저희는 심석희 선수가 동정의 대상이 아니라, 남들이 선뜻 하지 못한 걸 앞장서 해냈던 용기의 대상으로 소비되길 원했습니다. 이 때문에 심석희 선수 인터뷰에 집착하지 않았습니다. 최초 보도는 심 선수가 아닌 심 선수 측 변호인 인터뷰로 갈음했습니다.


다음은 ‘성폭행’이란 표현을 최소화고 ‘성폭력’으로 표현을 통일하기로 했습니다. ‘성폭행’이라는 구체어보다 ‘성폭력’이라는 포괄어가 피해자의 상처를 최소화할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사건의 구체적인 일시, 장소, 범행 수법도 배제했습니다. 이를 적시하는 건 피해자에게 고통의 순간을 상기시켜, 2차 피해로 직결된다고 봤습니다.


끝으로, 첫 보도부터 체육계의 구조적 문제를 짚어야 한다는 원칙을 세웠습니다. 만일 이 사건이 심 선수 개인의 일화에 그친다면 유명인의 성폭력 스캔들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을 겁니다. 스포츠에 몸담은 선수들, 나아가 메달에 집착하는 우리 모두의 자화상이기도 했습니다.


저희가 보람을 느꼈던 건, 단순히 사건의 1보를 전했기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보도 이튿날 정부가 대국민 사과를 하고, 대통령까지 나서서 철저한 수사를 지시했기 때문도 아닙니다. 성폭력 관련 보도를 어떻게 할지 나름의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이를 실천했다는 점이 큰 성과였음을 깨닫습니다.


SBS는 이번 보도에서 만든 가이드라인을 사내 백서로 만들어 향후 성폭력 보도의 기준으로 삼는 것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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