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생 기자들 “꿈꿨던 것과 다른 기자생활, 이걸 꼭 해야하나요?”

90년대생 기자의 삶과 고민

박지은 기자 | 2019.08.16 17:38:49


“새로운 세대를 알아야 한다”며 대통령도 청와대 직원들에게 책 <90년생이 온다>를 권할 정도로 90년대생에 대해 관심이 높다. 언론사라는 조직 속 90년대생은 어떻게 생각하고 살고 있을까? 90년대생 기자 세 명을 만나 기자로서의 삶과 고민을 들어봤다.

◇30대까지만 기자 하겠다는 94년생 기자
94년생인 ㄱ기자는 30대까지만 기자를 하기로 결심했다. 기자 일이 안 맞아서가 아니다. 입사 전부터 그렇게 맘 먹었다. 대학 동기들과 구룡마을 판자촌 풍경을 보고 세상에 안 알려진 이야기가 많다는 걸 깨닫고 기자를 꿈꿨다는 ㄱ기자.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걸 전해주기 위해 현장을 누빌 수 있는 기자의 나이는 딱 30대까지라고 생각했다. 그 생각은 지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현장을 누비고 다니는 기자를 상상하고 입사를 했어요. 40대가 되면 현장을 뛰어다닐 여건이 안될 것 같고, 그럴 열정도 남아있을지 의문이 들어요. 나이가 들고 차장 이상의 직급을 달면 아무래도 현장에 있는 시간보다는 데스킹이나 후배 봐주는 일을 하더라고요. 제가 책임감이 없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별로 그런 일을 하고 싶지 않아요. 뛰어다닐 수 있을 때 뛰어다니면서 30대까지 정말 열심히 기자 생활을 하고 싶어요.”


물론 이상적이라고 생각했던 ‘현장을 뛰어다니는’ 일을 마음껏 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ㄱ기자는 자신을 ‘하루살이’ 인생이라고 표현했다. “한 선배가 ‘우리 정도 되면 기자실에 엉덩이 박고 기사 처리하기 바쁘다’고 말했었는데, 요즘은 벌써 그 기분을 느끼고 있어요. 기획해보고 싶은 게 있으면 준비하는 시간이 필요하잖아요. 출입처 기사 쓰기 급급하고 그곳에서 나오는 매번 새로운 내용을 공부해서 이해하고 기사 쓰다 보면 하루가 가버리더라고요. 물론 심층 취재만 할 거라고 생각한 건 아니에요. 최근에 선배의 심층기획을 도와 직접 현장 사람들 만나면서 이야기 들었을 때 진짜 재밌긴 했어요.”


ㄱ기자는 기자 이후의 삶에 대해 아직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지는 않았다. 막연한 미래에 대해 두려움을 느낄법한데 걱정은 없어 보였다. “기자를 할 수 있는 시기가 10년에서 조금 더 남은 건데, 그동안 여러 가지를 경험할 수 있는 긴 시간이라고 생각해요. 10년 동안 배운 경험을 통해 책도 쓰고 싶고 여행도 가고 싶긴 한데, 그때 되면 하고 싶은 게 달라질 수 있으니 계획을 세우고 있진 않아요.”

◇기자도 워라밸 추구할 수 있다는 94년생 기자
94년생인 ㄴ기자는 평일 퇴근 후 운동을 한다. 꾸준히 헬스클럽을 다니고 있고, 최근 수영에 도전했다. 크로스핏도 6개월 배웠다. 원데이 클래스로 요가와 필라테스도 간간이 한다. ㄴ기자 말로는 원데이 클래스가 더 집중적으로 가르쳐줘 효과가 좋다고 한다.


운동만이 아니다. 토요일마다 어학원을 다니고 있다. 남은 주말에는 이성 친구나 가족과 시간을 보낸다. 또 있다. 한 달에 한 번 독서 모임도 나간다. 일 외에 취미, 여가 생활 등 자기만의 시간을 보장받을 수 있는지가 직장인들에게 중요한 가치가 됐지만, 여전히 기자들에게는 먼 이야기일 뿐이다. 그러나 ㄴ기자에게는 해당하지 않는다.


놀랍게도 ㄴ기자는 운동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그에게 여가 생활은 자기계발의 목적보다는 일에서 비롯한 스트레스를 해소할 탈출구다. 그래서 일부러 회사 먼 곳에서 운동을 하거나 선배들이 하지 않을 운동을 한다. “퇴근 후 바로 집으로 가면 쉰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저는 그렇게 다음날 출근하면 그날 하루 종일 기분이 좋지 않아요. 하루가 회사에만 있다가 끝나 버렸다고 생각해 억울해서요. 회사에서 있는 시간이 나를 위해 있는 시간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물론 ㄴ기자가 자기만의 시간을 이렇게 보낸다는 건 철저한 비밀이다. 좋은 시선으로 보지 않을거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제가 이러는 걸 알면 선배들이 안 좋아할 거 같아요. 대체로 나이가 많으신 선배들에게 ‘기자는 퇴근하고 나서도 항상 기사 생각을 해야 하고 그렇게 하지 않는 기자는 뒤처질 수밖에 없다’, ‘점심에도 항상 사람을 만나야돼. 혼자 먹는 게 말이 되니?’라는 얘기를 많이 들어요. 그때마다 숨이 턱턱 막히죠.”


ㄴ기자는 오래 해도 재밌게 할 수 있는 일이 기자라고 생각해 1년 동안 누구보다 열심히 언론사를 준비 했다. 인생에서 제일 많이 하는 게 일인데, 내가 하는 일이 재미 없다면 다른 삶에서 재미를 찾는다는 건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기자가 됐지만, 직장인과 다를 바 없다는 걸 느꼈다.


“입사 전만 해도 워커홀릭이 될 줄 알았어요. 전 제가 일을 통해서 즐거움을 느끼고 거기서 가치를 느끼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죠. 하지만 기사 생각만 하고 살기에는 기자라는 일이 매력적이지 않더라고요. 할 줄 모르는 수영을 시작한 건 새로운 걸 도전해 하나하나 해나갈 때마다 성취감이 쌓이기 때문이죠. 기자라는 일이 그걸 충족시켜주지 않는 것 같아요.”

◇성인지 감수성 없는 데스크와 92년생 기자
92년생인 ㄷ기자는 젠더 이슈에 무감각한 데스크와 의견 충돌을 겪곤 한다. 이번에는 ㄷ기자가 발제한 성범죄 피해자들의 2차 피해 문제에서 나왔다. 데스크는 이 문제가 보도 가치가 없는 단순 흥밋거리라고 생각했다. ㄷ기자가 “성범죄 사건 발생 보도만 한다면 그렇게 볼 수도 있겠지만, 그 문제를 넘어서서 피해자들이 또 다른 피해를 받는 상황이기 때문에 의미가 있다”고 설명해도 “유별나다”는 반응을 얻기 일쑤였다.


이전에 비슷한 사안을 발제했을 때도 데스크는 그 의도를 이해하지 못했다. ㄷ기자는 의견 차이를 넘어서서 데스크가 젠더 관련 이슈에 무지하다는 걸 느꼈다. 90년대생이 다른 세대들보다 젠더 이슈에 관심이 많다고는 하지만, 데스크가 상식적인 부분도 몰라 당황스러웠던 적도 있었다.


“왜 이 사안을 끌고 가려는지 이해를 못해요. ‘또 이런 거 갖고 왔냐’는 식으로 반응을 받다 보면 위축될 수밖에 없는 건 당연하죠. 제 일에 대한 욕심이 있어서 보도가 꼭 필요하다는 믿음이 강하게 있다면 계속 발제하겠지만, 아무래도 이전보다 자유롭게는 못할 것 같아요. 정말 중요한지 발제하기 전 한 번 더 생각하게 되겠죠.”


영화 <스포트라이트>처럼 환상적인 팀플레이를 하는 기자 생활을 꿈꿨던 ㄷ기자는 요즘 기자가 ‘개인사업자’같다고 느껴졌다. “<스포트라이트>를 보면 기자들이 팀으로 일하면서 치열하게 토론하고 취재하며 사실을 캐내는데, 막상 입사하니 개인적으로 사람들을 많이 만나야 그 사람에게 기사 아이템이 나오더라고요. 그리고 회사 안에서는 누가 단독을 썼는지 경쟁하는 것 같아 아쉽긴 해요.”

◇‘90년대 세대론’에 대한 편견
‘회식을 싫어한다’, ‘심한 경쟁 속에서 자랐다’. 90년대생을 이렇게 한두마디로 규정지을 수는 없다. 그런데도 선배들은 그런 인식을 드러내곤 한다. ㄴ기자는 “‘지적을 잘 받아들이지 못하고 기사만 많이 쓰고 싶어하는 건 너네가 어릴 때부터 경쟁만 해서 그런 건가?’라는 식으로 얘기한 선배가 있었다. 데스킹 과정에 의견 차이가 있어 얘기하면 되바라졌다고 생각하고, 자신의 태도를 돌이켜 보기보다는 ‘쟤네는 왜 저러지?’ 하면서 우리에게서 문제를 찾으려고 하는 것”이라며 “회식이 싫은 이유도 내 저녁 시간을 빼앗겨서가 아니라 결국 선배들은 훈수만 두고 우리는 들러리만 되기 때문이다. 소통한다며 회식하자는데 결국 소통이 일방적으로 하달만 하는 방식”이라고 말했다.


선배들의 소통 노력에 대해서는 세 기자 모두 부정적인 반응이었다. ㄷ기자는 “어떤 말을 하고 나서 ‘아 이러면 꼰대인가?’ 이러는 분들이 있는데, 결국 그 꼰대 같은 말을 알고 하면서 물어보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ㄱ기자는 “본인들의 자녀 세대와 비슷하니, 우리에게 여러 가지 물어보는데, 결국 자식들에 대한 질문뿐이었다”고 말했다.


이렇게 불만을 털어놓는 그들도 결국 선배의 눈치를 보고, 할 말 못 하는 직장인이었다. 항상 출근 시간보다 10분~20분 먼저 도착하고, 인터뷰 중간에 선배에게 보고하고, 따로 시간을 내기가 어려워 저녁 늦게나 점심시간에 인터뷰를 하는 그들은 90년대생 기자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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