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현장에서 16년, 앞만 보며 치열하게 살았다. 그러다 문득 공허함이 찾아왔다. ‘내가 이러려고 기자가 됐나? 기자를 계속한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 어지러운 생각에 휩싸였던 그때 김지은<사진> 한국일보 기자는 목적 없이 누군가의 삶에 귀를 대는 인터뷰를 시작했다.
“2002년 입사하고 인터뷰를 수없이 했는데 기억에 남는 게 몇 안 되더라고요. 돌아보니 그간 썼던 인터뷰는 늘 목적이 정해져 있었어요. 논쟁적인 사안에 대해 가장 잘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을 찾아야 했거든요.”
김 기자가 9년을 보낸 정치부에선 특히 더 그랬다. 아침에 인터뷰하고 그날 마감한 기사는 다음날 반짝 소비되고 사라졌다.
“지난해 초 정치부에서 디지털콘텐츠국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새로운 콘텐츠를 고민했어요. 오래 남는 인터뷰를 해보면 어떨까. 하루가 아니라 1달, 1년, 10년 뒤에도 의미 있는 인터뷰를 써보자고 뛰어들었죠.”
김 기자는 지난해 2월부터 한 사람의 삶을 오롯이 녹여내는 인터뷰 코너 <삶도>를 연재하고 있다. ‘삶도’라는 이름은 삶의 길에서 지키고자 했던 ‘삶의 도’를 들여다본다는 뜻이다. 자신의 인생뿐 아니라 사회에도 가치 있는 획을 그은 이들을 인터뷰이로 마주한다.
2주에 한 번 인터뷰할 때마다 보통 5시간, 길게는 9시간이 걸린다. 디지털에 연재하는 덕분에 분량 제한 없이 하고 싶은 이야기로 꽉 채운다. 작법도 기존 인터뷰와 다르다. 기사 사이사이 맥락을 녹이고 기자의 감정도 싣는다. 이미 유명한 이들의 삶이 여기선 더 깊고 생생하게 다가오는 이유일 것이다.
“대부분 저와 처음 만나는 분들이잖아요. 한두 시간은 지나야 진짜 이야기가 나와요. 섭외할 때 ‘5시간 정도 걸린다’고 말씀드리면 왜 이렇게 오래 걸리느냐고 하시거든요. 그런데 막상 하고 나면 ‘벌써 이렇게 시간이 흘렀네?’ 하세요. 몇 시간을 함께 울고 웃다 보면 너무 재밌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거든요. ‘내가 이런 이야기까지 하다니’, ‘이 인터뷰는 다르네요’ 같은 말을 들을 때 인터뷰어로서 희열을 느끼죠.”
지금까지 마흔 명의 이야기가 삶도 인터뷰에 실렸다. 김 기자는 이 가운데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아온 여성 12인의 목소리를 골라 담아 최근 인터뷰집 <언니들이 있다>를 펴냈다. 그는 세상의 시선에 ‘다르게 살기’로 맞서온 언니들의 삶이 독자들에게 어떤 힘을 주리라 믿는다.
“‘언니가 있다’는 말은 당신 혼자가 아니라는 의미예요. 저는 다행히 회사에서 좋은 언니들을 만났어요. 그런 언니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이제야 들더라고요. 인터뷰를 연재하면서 제 삶도 되돌아보게 됐어요. 언니이자 기자니까 후배들, 동생 세대에게 글로써 위로와 용기를 주고 싶어요.”
김달아 기자 bliss@journalist.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