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도 상어 춤을 춥시다

[스페셜리스트 | 스포츠] 양지혜 조선일보 스포츠부 기자

양지혜 조선일보 스포츠부 기자. 워싱턴 내셔널스가 2019년 월드시리즈를 제패했다. 창단 50년만에 첫 우승한 기념으로 구단 연고지 미국 워싱턴 D.C.에선 도심 퍼레이드 등 각종 환영 행사가 열렸다. 그때마다 헤라르도 파라(32)가 맨 앞에 서서 트로피를 자랑했다. 그의 월드시리즈 성적은? 대타로 타석에 3번 나와 삼진 두 차례, 볼넷 한 번 얻은게 전부. 그런데도 자타공인 우승 주역으로 대접받는다.


베네수엘라 출신인 파라는 올 봄 방출 선수 신분으로 내셔널스와 1년 계약을 맺었다. 당시 내셔널스는 연패를 거듭해 데이브 마르티네즈 감독이 경질될 위기였고, 파라는 입단 직후 22타수 무안타로 부진했다. 파라가 자괴감에 시달리는 모습을 본 마르티네즈 감독은 뜻밖의 말을 했다. “당신을 왜 영입한 줄 아나요? 주변을 끊임없게 웃게하는 에너지에 반했기 때문입니다. 침통한 팀 분위기를 파티장처럼 만들어주세요. 홈런보다 그게 더 필요해요.”


파라는 타석 등장곡을 어린 딸이 좋아하는 ‘상어 가족’ 노래로 바꿨다. ‘뚜루루뚜루~’ 멜로디로 친숙한 노래다. 그는 출루하면 손바닥을 붙였다 뗐다하는 상어 율동을 추면서 동료와 팬이 따라하도록 독려했다. 호투한 투수나 득점한 타자가 있으면 달려가 안겼다. 상어 에너지로 하나된 내셔널스 선수단은 이후 연승을 질주해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더니 구단 역사상 5전 6기 도전 끝에 월드시리즈 우승까지 해냈다.


파라는 포스트시즌 통틀어 타석에 여섯번 섰지만, 최정예 25명만 뽑히는 월드시리즈 명단까지 들었다. NASA와 실리콘밸리 출신들이 데이터 전력 분석을 맡는 메이저리그에서 이례적인 경우다. 특히 월드시리즈 상대팀 휴스턴 애스트로스에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올 시즌 메이저리그 승률 1위를 기록한 애스트로스의 기조는 ‘이기면 장땡’. 사람보다는 돈과 데이터가 먼저다. 기업 컨설턴트 출신인 제프 르나우 단장은 다년간 고의적인 꼴찌 추락으로 유망주 끌어모으기, 선수 협박해 연봉 후려치기, 전자기기로 상대팀 사인 훔치기 등을 용인하며 성적을 냈다. 구단 직원들도 일회용 종이컵처럼 쓰고 버렸다.


애스트로스의 독한 야구는 2017년 창단 첫 우승을 하는 성과를 냈지만, 그 힘이 지속 가능하진 않았다. 올해는 사이영상 수상자가 포진한 투수진에 리그 MVP 후보들이 즐비한 막강 타자진까지 갖추고도 내셔널스에 졌다. 내셔널스는 아무도 우승 반지를 껴본 경험이 없었고, 선수단 평균 나이(30.1세)는 메이저리그 30개 구단 중 가장 많았다. 그런데도 상어 춤을 추면서 거침없이 1루로, 2루로, 3루를 돌아 홈을 밟았다.


사람이 기사 쓰면 ‘기레기’라고 욕부터 먹는 요즘 미디어 환경을 보면 자주 아연해진다. 당사자에게 불리한 뉴스는 ‘가짜 뉴스’로 공격 받는다. 기자는 극성 팬들의 야유를 한 몸에 받는 타자같은 처지다. 기죽지 말고 홈런을 날리자. 상어 춤을 추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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