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실에 쌓인 수십년치 영상, 누가 이 노다지를 애물단지라 했나

[방송사들 ‘레트로 콘텐츠’ 활용]
영상 저작권 걱정없이 자막·효과 입혀 디지털화
기성세대 추억 상기시켜... 다양한 연령으로 시청자 확장

박지은 기자 | 2019.11.27 15:01:41

“이렇게 입으면 기분이 조크든요.” ‘힙’한 옷을 입은 여성의 도도한 말투로 유행이 됐던 영상 출처는 바로 1994년 MBC 뉴스데스크다. 20년이 훌쩍 넘은 이 뉴스는 MBC 디지털 영상 브랜드 ‘14F’의 ‘이 세상 힙이 아닌 90s 패션, 옷 좀 입었던 90년대 스타일 대방출’ 콘텐츠로 재탄생했다. 14F는 ‘90s’, ‘00s’ 코너를 통해 옛날 뉴스 영상을 활용한 디지털콘텐츠를 내놓고 있다. 일부 영상은 페이스북과 유튜브를 합해 조회수 350만회를 넘어섰다. 손재일 MBC 디지털뉴스혁신팀장은 “20대 제작진이 신기해하는 영상을 선별하고 90년대 학번 제작진이 전체적인 흐름을 짚어주는 방식으로 다양한 연령층이 함께 만들고 있다”며 “14F 유튜브 채널 주요 연령대가 18~35세인 것과 90년대 문화를 젊은 세대가 즐기고 있다는 것을 감안해 공감대를 얻을 만한 90년대의 뉴스를 주로 다룬다”고 했다.


올해 문화와 소비 시장의 트렌드인 뉴트로(Newtro, New+Retro)가 디지털 뉴스에도 넘어왔다. 특히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지상파 방송사에게 영상 아카이브는 큰 자산이자 종편 등 다른 방송사와 차별화되는 강점이다. KBS, MBC, SBS, YTN 등은 80~90년대 과거 뉴스 영상을 각자의 기준에 맞춰 선별하고 재미있는 자막, 효과 등을 가미해 시청자에게 새로운 ‘뉴스’로 선보이고 있다.



KBS가 2030을 타깃으로 론칭한 디지털 브랜드 ‘크랩’에는 80~90년대 KBS 뉴스가 콘텐츠 아이템으로 자주 등장한다. ‘90년대 아재들의 삐삐 감성 대방출’, ‘뉴스에서 보여준 간접흡연 실험, 클라스가 다릅니다’, ‘저세상 스웩 90년대 압구정 오렌지족 하루’ 등이 있다. 울산MBC는 유튜브 채널에 뉴트로 뉴스 코너를 따로 만들었다. ‘그땐 그랬지~뉴스 PICK’은 과거의 오늘 일어났던 사건을 하루에 하나씩 골라 그 시절의 울산 지역 뉴스를 다시 되돌아보는 코너다. ‘울산호랑이! 울산현대 축구단의 과거와 오늘’, ‘개가 만원짜리를 물고 다녔다는 그곳 장생포를 아시나요?’ 등 현재까지 30여개의 영상이 있다. 천난영 울산MBC 뉴스 PD는 “울산MBC를 비롯한 지역 언론은 디지털 제작 인력이 부족하고 여건이 어렵다. 울산MBC가 갖고 있는 아카이브가 방대하니 그 안에서 활용해보자고 생각해 시작했다”며 “80~90년대 촬영 테이프들이 자료실에 다 있다. 자료를 잘 찾기만 하면 저작권 문제없이 마음 놓고 영상을 쓸 수 있다는 게 제작진에게 큰 장점”이라고 말했다.


YTN은 ‘N년전 뉴스’를 YTN 유튜브, 인스타그램, 틱톡 등 다양한 플랫폼에 주 1회 게재하고 있다. 윤현숙 YTN 디지털뉴스팀장은 “수능이나 광복절같이 계절별, 시의성에 맞게 콘텐츠를 내놓고 있다”며 “공감과 재미를 이끄는 영상도 있지만, 광복절을 맞아 1995년 8월15일 경복궁에 있었던 일본 조선총독부 건물 철거 현장 보도를 보여주는 등 당시의 시대상과 역사를 되짚을 수 있도록 했다”고 말했다.



YTN은 최근 개설한 ‘돌발영상’ 유튜브 채널에 지난 2003년부터 방영한 아날로그 돌발영상을 디지털화해 올리고 있다. 영상들 가운데 큰 화제를 모았던 내용을 모은 코너와 역대 대통령의 모습이 나오는 돌발영상만 따로 모아놓은 ‘대한민국 대통령 on 돌발영상’ 코너 등이 있다. 돌발영상 제작진은 “하루가 지나면 사라지는 뉴스가 아니라 디지털콘텐츠로 영상들의 생명 주기를 연장해 좋은 뉴스 콘텐츠는 사라지지 않고 오래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고 취지를 밝혔다.


뉴트로 뉴스 콘텐츠는 추억과 새로움을 동시에 전달한다는 점에서 연령대 상관없이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유현우 KBS 디지털뉴스부 기자는 “아카이브 콘텐츠에는 유독 좋은 댓글들만 달린다”며 “기성 세대에게는 추억을 곱씹게 하고 20대들에게는 새로움을 준다. 지금은 없는 ‘오렌지족’이라는 단어와 간접흡연 실험 같은 과거의 무지가 어린 세대에게는 신선함으로 다가올 수 있다”고 말했다. 윤현숙 팀장은 “시청자 확장성이 가능하다는 측면이 있다”며 “예전 수능 고사장 모습과 대학 합격자 이름들이 벽보에 붙어있던 당시 영상의 댓글들을 보면 그 시대 보냈던 분들은 ‘그땐 그랬지’라며 경험을 공유하고, 어린 연령대는 ‘전혀 몰랐다’, ‘엄마 아빠에게 물어봐야겠다’는 등 반응들이 나오는데, 그만큼 다양한 연령층이 보고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지은 기자 jeeniep@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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