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에 실패해 일용직을 전전하는 30대 청년. 부산의 한 식당에 들어가 어렵게 말을 꺼낸다. “오늘 일을 못 나가서 밥을 아직 못 먹었는데... 남는 밥 있으면 좀 주실 수 있습니까.” 식당 사장은 시큰둥하게 등을 돌린다. “아니 지금은 안 돼요. 멀쩡하게 생겨서 왜 저렇게 다니는지 모르겠네.”
매몰차게 거절당한 청년은 또 다른 백반집으로 향한다. “밥 한 끼만 얻어먹을 수 있겠습니까.” 머뭇거리며 내뱉은 그의 말에 주인으로 보이는 60대 여성이 답한다. “앉으소.” 청년은 고마움과 미안함에 고개를 들지 못한다. 공짜 밥을 내어준 여성이 무뚝뚝하지만 따뜻하게 청년을 배웅하며 말한다. “계속 열심히 사소.”
부산 지역지 국제신문이 최근 선보인 ‘부산 사람 실험카메라’ 영상 속 한 장면이다. 박호걸 국제신문 기자는 밥을 구걸하는 30대 청년을 연기하며 부산 동래구 식당 6곳을 찾았다. 그중 3곳에서 따뜻한 밥 한 끼를 대접받았다. 취재 취지를 밝히고 인터뷰를 요청하자 사장님들은 “나도 자식이 있으니 그냥 내보내기 어렵더라”거나 “새해에는 청년들이 모두 힘냈으면 좋겠다”는 말을 보탰다.
부산 시민들의 훈훈한 모습이 고스란히 담긴 이 영상은 페이스북과 유튜브에서 조회수 54만회(1월21일 기준)를 기록하며 인기를 끌고 있다. 댓글엔 ‘아직 세상은 살 만하다’, ‘감동적이다’, ‘마음이 따뜻해진다’ 같은 칭찬 일색이다. 박 기자는 “반응이 이렇게나 클지 예상 못 했다”면서 “취재를 위한 연기였지만 공짜 밥을 청할 땐 심적으로 너무 힘들었다. 사장님들의 따뜻한 말 한마디엔 눈물이 핑 돌았다”고 말했다.
국제신문 실험카메라는 신년 기획 ‘부산 온(ON·溫)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이달부터 매주 연재되고 있다. 박 기자가 팀장을 맡은 영상제작팀이 영상과 함께 관련 글 기사도 전담한다. 박 기자는 “온 프로젝트는 공감 스위치의 ON 버튼을 눌러 부산에 따뜻함을 전하겠다는 의미”라며 “단절된 사회를 부산의 정과 참견으로 녹이고 싶다는 캠페인성 기획”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3주간 ‘밥 구걸 청년’ 외에 ‘낯선 이에게 말 걸기’, ‘도움이 필요한 시각장애인을 목격했을 때 부산 사람들의 반응’편 등이 업로드됐다. 세 시리즈의 페이스북·유튜브 조회수를 모두 합하면 107만회에 달한다. 부산·경남지역 민영방송 KNN의 시사프로그램은 화제가 된 영상을 방송에 내보내기도 했다. 신문사가 제공한 디지털 영상을 방송사가 받아 TV로 방송한 것 자체가 이례적이다. 박 기자는 “10년 만에 연락 와서 영상 잘 봤다고 하는 분들도 있었다”고 웃으며 말했다.
지난해 가을 영상팀에 발령받기 전까지 유튜브 계정조차 없었다는 그는 이제 영상의 파급력을 피부로 느낀다. 지면 기사와 영상을 연계한 콘텐츠로 시너지를 내며 ‘언론’의 영역을 넓혀가는 중이다.
“편집국에 있을 땐 지면이 다인 줄 알았어요. 지금은 신문이 보지 못하는 뉴스 소비자들에게 다른 형태(영상)의 저널리즘도 전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온 국민이 크리에이터인 요즘 ‘나도 해볼까’하는 기자들은 많은데 진짜 하는 이들은 많지 않아요. 고민하는 시간에 먼저 뛰어든다면 작은 무언가라도 이룰 수 있지 않을까요.”
김달아 기자 bliss@journalist.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