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26돌 한겨레21, 통권호 발행으로 활로 찾을 것"

[인터뷰 정은주 한겨레21 편집장

그것은 분명 ‘러브레터’였다. 유학생 시절 PDF 파일을 내려받아 보며 한겨레21 기자가 되겠다는 꿈을 품은 순간부터 10년도 더 지나 진짜 한겨레21에 출근하며 ‘캬앗’ 비명이 터지려는 걸 참아야 할 만큼 행복했던 순간까지. 그렇게 사심 가득, 애정 고백을 담은 첫 ‘만리재에서’를 쓰고 제목에는 ‘설렘’ 두 글자를 적었다.


한겨레21 제15대 편집장 정은주. 그는 창간 26돌을 맞은 한겨레21의 첫 여성 편집장이기도 하다. 서울신문에서 8년, 한겨레로 옮긴 뒤 신문에서 2년, 그리고 그토록 꿈꾸던 한겨레21에서 기자로 4년을 일한 뒤 다시 신문을 거쳐 지난달 편집장으로 부임했다. 3년 전 처음 편집장 제안을 받고 손사래를 쳤던 그는 이번엔 “후배들이 추천했다”는 말에 흔들려 직을 수락했다.


정은주 한겨레21 편집장. /정용일 한겨레21 기자 제공

93학번인 그와 한겨레21의 인연은 각별하다. 94년 창간한 한겨레21을 학보사 기자 시절부터 구독했고, 캐나다에서 저널리즘을 공부할 때도 PDF로 챙겨봤다. 그런 그를 한겨레는 채용 시험에서 세 번이나 떨어뜨렸다. 원망스러웠을 법도 한데 그의 첫 마음은 변함이 없다. 여전히 한겨레21은 “굉장히 좋아하는 매체”이고, 요즘도 가끔은 출근하는 게 “신기하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애정하는 매체가 지금 어느 때보다 힘든 상황이다. 한겨레21만의 일도 아니고 주간지 시장 공통의 위기다. 전임 편집장은 그래서 후원제를 도입했다. 약 1년이 된 지난 3월5일 기준 정기·일시 후원자를 합하면 620명쯤 된다. 정 편집장은 여기에 보태 몇 가지 계획을 세웠다. 그는 “한겨레21이라는 배가 지금 바다에서 가라앉고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이 바다를 벗어나려고 한다”고 말했다. “배에 바퀴를 달아 산으로도, 바다로도 보내는 멀티형 배를 만드는 것이 목표예요. 바다는 지면이고, 산은 다른 플랫폼이 되겠죠.”


계획의 요지는 ‘통권호’다. 먼저 30일 마감하는 5월10일자를 ‘어린이날 특집호’로 만들고, 앞으로도 두 달에 한 번은 한 가지 주제로만 통권호를 제작할 계획이다. 부록을 포함해 2권 분량으로 통권 특집호를 제작하고 한 주는 발행을 쉬는 것이다. “선택과 집중을 하는 거죠. 통권호는 e북이나 한 권의 책으로도 손색없게 하려고 해요. 타임지나 뉴요커도 실행 중인 모델이에요. 통권호가 구독자에게는 물론 후원제 모델에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통권호 아이디어를 떠올린 것은 넷플릭스 드라마 ‘킹덤’을 보면서였다. “기존의 TV 드라마는 월화, 수목 이런 식으로 방송됐잖아요. 그런데 킹덤은 시즌을 한꺼번에 풀어요. 수요자 중심인 거죠. 공급자로선 띄엄띄엄 만드는 게 편한데, 수용자는 기다릴 이유가 없잖아요. 기사도 마찬가지예요. 통권호에 어떤 이슈에 관해 A부터 Z까지 다 담으면 수용자도 소장할 이유가 생기지 않을까요. 소장하고 싶을 만큼 잘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한 가지 이슈를 파고드는 것은 그 자신이 잘하는 것이기도 하다. 지난 2015년부터 3테라바이트에 달하는 방대한 자료와 싸우며 세월호 탐사보도에 매달릴 수 있었던 것도 특유의 끈질긴 근성, 그리고 잡지라는 매체의 성격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한겨레21은 지난 20일부터 세월호에 대한 기록을 다시 시작했고, 세월호를 주제로 한 통권호도 준비 중이다. 디지털 성범죄는 임기 동안 쭉 다룰 이슈다. 특집 통권호는 물론 인터랙티브 뉴스로도 제작할 계획이다. 잡지와 디지털을 접목하기 위해 한국언론진흥재단 지원도 받아뒀다.


그가 말하는 것은 결국 “잘 하는 것을 더 잘하자”다. 기자들에게 바라는 것도 같다. “편집장의 역할은 페이스메이커라고 생각해요. 기자들의 옆에서 같이 뛰어주며 좋은 성적으로 결승선을 통과할 수 있도록 돕고 싶어요. 기자들은 각자가 잘 하는 것을 잘하면 되는 겁니다.”


김고은 기자 nowar@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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