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후원모델 도입해 디지털 유료독자 10만 확보할 것"

[와이드 인터뷰] 김현대 한겨레신문 사장

한겨레신문 사장실엔 명패가 없다. 사장뿐 아니라 한겨레 간부 누구도 명패를 두지 않는다고 한다. 지난 3월23일 취임한 김현대 한겨레 대표이사 사장 집무실에선 한쪽 벽면에 걸린 한겨레21 표지가 명패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김 사장의 얼굴로 채워진 표지엔 '현대야, 행복하게 살자'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한겨레21 선임기자로 활동하다 사장으로 선출된 그를 축하하기 위해 한겨레21 후배들이 마련한 선물이다. 김 사장은 "저에겐 아주 대단하고 가장 좋은 선물"이라고 치켜세웠다.


김현대 한겨레 신임 대표이사 사장은 지난 2월 치러진 선거에서 구성원 65.85%의 지지를 받아 당선됐다. 지난 3월23일 취임한 그는 오는 15일 한겨레 창간 32주년, 18일에는 지령 1만호를 맞는다. 지난 7일 오후 김 사장의 집무실에서 2시간여 동안 인터뷰를 진행했다. 신임 사장으로서의 포부와 공약 실현 계획 등을 물었다. /한겨레 제공
그는 지난 1987년 한겨레 창간사무국에 입사한 '1호 사원'으로 자신을 소개한다. 편집국에서 증권팀장, 사건총괄팀장, 법조팀장, 기동취재팀장 등을 거쳤고 전략기획실장, 출판국장 등을 역임했다. 2017년부터 한겨레21 선임기자로 일해오다 지난 2월 사장 선거에 출마해 65.85%라는 압도적인 지지율로 당선됐다.

한겨레는 오는 15일 창간 32주년, 18일에는 지령 1만호를 맞는다. 이를 앞둔 지난 7일 오후 김 사장의 집무실에서 2시간여 동안 인터뷰를 진행했다. 신임 사장으로서의 포부와 공약 실현 계획 등을 물었다. 다음은 김 사장과의 일문일답이다.

-취임식에서 “벅차오르기보다 송구한 마음이 앞선다”는 심경을 밝혔습니다. 지난 3월23일 공식 취임 후 50일 가까이 흐른 지금은 어떤 마음인가요.
“우리 후배들을 보면 당당하기보다 위축된 모습이 많이 보였거든요. 내가 알고 있는, 살아온 한겨레의 모습이 아니었잖아요. 창간 때부터 한겨레를 지켜온 사람으로서 한없이 송구스럽죠. 취임식에서 사장이 됐으니 잘하겠다고 말할 수 있지만 그보다 송구스러운 마음부터 이야기하는 게 마땅하죠. 실제 제 마음도 그랬고요. 취임 이후엔 그간 두서없이 흩어져있던 조직을 재구성했습니다. 사장 자리에 앉게 되니 책임감이 더 크고요. 갈 길이 멀고 험하죠. 어느 언론사도 어려움을 타개하고 새로운 미래를 여는 데 성공한 곳은 아직 없잖아요. 차근차근 나아가자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지난 2월13일 치러진 사장 선거에서 65.85%라는 압도적인 지지율로 당선됐습니다. 한겨레 구성원들이 왜 표를 줬다고 생각합니까.
“제가 잘난 게 뭐 있겠습니까. 그만큼 사람들이 답답했고 지금 이 상태는 아니라는 변화의 갈망이 컸던 거죠. 그랬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반사효과를 누렸다고 할까요. 다만 김현대가 하면 거짓말은 안 하겠다, 한겨레의 정체성을 해치지 않고 이끌어나가겠다는 믿음을 주려고 노력했고 거기에 구성원들이 신뢰를 가졌던 게 아닐까 합니다.”

-2014년 사장 선거에선 낙선한 경험이 있죠. 이번에 또다시 사장에 도전했던 이유가 궁금합니다.
“한겨레엔 창간 때부터 경영자가 따로 없었어요. 기자를 하던 누군가가 경영쪽 경험을 쌓거나 주위의 신망을 얻으면 사장이라는 짐을 짊어졌던 거죠. 그게 계속 이어져 오면서 구성원들은 유능한 경영자를 바라는 마음은 커졌는데 그에 부응하지 못하면서 실망이 깊어지곤 했죠. 여전히 그런 상황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고 봅니다. 저도 기자를 하다가 경영파트 경험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짊어져야 할 책임이라고 생각한 거고요. 그걸 피할 일은 없는 거고요. 앞으로는 언론에 대한 양식이 있고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외부 경영 전문가들도 한겨레 CEO가 될 수 있는 길을 열어놔야 한다고 봅니다. 지금과 같은 사장 직선제하에서는 한겨레 내부 사람 아니면 어렵습니다.”

-취임 후 1년 반 안에 사장 선출제도 개선안을 마련하겠다고 했습니다. 사장 직선은 언론계에선 보기 드문 문화인데, 한겨레에선 폐해가 더 크다는 지적이 계속돼왔습니다. 왜 그런 겁니까.
“한겨레가 선도적으로 사장 직선제를 도입해 여러 경험을 해왔지만 지금 제도는 부작용이 많이 누적돼 있습니다. 선거 때는 치열하게 싸우게 되죠. 그 이후엔 조직 안에서 같이 일해야 하는데 선거 때 대립했던 관계가 남아있는 거예요. 그럼 어떻게 되겠습니까. 자조적으로 인적 가동률이 50%도 안 된다는 이야기도 하거든요. 조직으로서 효율성이 지극히 떨어지는 거죠. 사람 사이의 갈등도 커지면서 행복하지가 못해요. 이제는 지금의 직선제를 뛰어넘는 변화는 도모해야 하겠다는 공감대가 생긴 겁니다. 그게 직선제 보완일 수 있고 추천제일 수도 있고 두 방식을 혼합하는 것일 수도 있고요. 온갖 상상력을 열어놓고 생각해야 합니다. 사장 선출제도 변화는 한겨레의 근간이 되는 지배구조 문제와 직결돼 있어 어떻게 내부 공감대를 모으느냐가 중요하죠. 사장이 이런 쪽으로 나가는 게 좋겠다고 이야기할 수는 있겠지만 구성원들 전체, 대표적으로는 노조와 사주조합이 같이 마음을 모아내지 않으면 새로운 제도로 가기 어렵습니다. 1년 반이라는 시간을 제시한 건 추상적인 공론에 빠지지 않도록, 늦지 않게 논의를 하자는 취지입니다.”

-취임 직후 단행한 첫 인사에는 어떤 기준이 있었습니까. 특히 이번 선거 경쟁자였던 정남구 기자를 당선인 보좌팀장에 이어 경영전략담당 상무이사로 발탁하기도 했습니다.
“선거 끝나던 날 가까운 친구를 만났는데 이런 말을 하더군요. 모두를 위한 CEO가 됐으면 좋겠다. 앞서 직선제의 폐해를 말씀드렸는데, 그동안 누적돼온 갈등을 극복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였죠. 철저하게 일을 중심으로 인선했습니다. 제가 공약집에서도 '사람주의자'라고 표현을 했죠. 사람마다 장점을 잘 살리는 게 CEO의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어떤 분야에서도 1인자는 아닙니다. 경영기획 전략에서는 정남구 상무가 저보다 낫고, 편집은 백기철 편집인이 저보다 낫고, 이상훈 전무(자회사담당)가 사업쪽에서는 저보다 훨씬 낫죠. 지금도 그렇습니다. 그분들 믿고 의견을 존중하고 따르는 식으로 일을 진행합니다. 또 하나의 기준은 화합이죠. 한겨레 구성원들이 불편하고 불행했던 지점이 거기였으니까요. 그저 담담하게 일 중심으로 인선하는 게 곧 화합이더라고요. 편집국에선 정치부장, 경제부장, 국제부장이 여성인 걸 자랑하고 싶네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중앙 언론사 중에는 처음일 겁니다. 편집국 전체로도 여성 부장이 절반이 됩니다. 편집국장 말로는 특별히 여성을 발탁하려고 한 것은 아니고 부서마다 적절한 사람을 골랐더니 이렇게 되더랍니다. 한겨레가 언론사에서 양성 균형을 실질적으로 이뤄나가는 선례가 되는 겁니다.”

-취임사에서 “오늘의 한겨레는 제가 알고 있던 한겨레의 본모습이 아니다”라고 언급했습니다. 현재 한겨레의 가장 큰 문제는 무엇입니까.
“한겨레는 공공재 언론이자 우리 사회의 약자들이 마지막으로 기대는 보호체였어요. 그런데 지금 언론이 ‘기레기’라고 욕을 먹는 데 한겨레도 일부 도매금으로 넘어가는 일이 벌어지고 있어요. 이게 무슨 일입니까. 통탄할 일이죠. 한겨레의 존재 이유 자체가 흔들리고 있잖아요. 결국 우리가 풀어야 할 가장 큰 과제는 ‘신뢰 연결’, 즉 신뢰 회복입니다. 취임 후 신뢰 회복을 위한 발동 정도는 걸었다고 봅니다. 신설한 저널리즘 책무실을 중심으로 지난 2007년 제정된 취재보도준칙을 개정하고 2010년 제정한 ‘한겨레미디어 범죄수사 및 재판취재보도 시행 세칙’을 마련해 곧 발표할 예정입니다. 편집국에선 콘텐츠개편TF를 운영 중입니다. 좋은 보도를 하고 그걸 신문뿐 아니라 디지털 환경에서도 극대화해 전달할 수 있는 결과물을 만들어낼 겁니다.”

-이번에 신설된 ‘저널리즘 책무실’은 어떤 역할을 합니까. 지난달 초 이봉현 책무실장이 팀장을 맡아 ‘윤석열 검찰총장 별장 의혹 보도’ 관련 조사TF를 구성했는데,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요.
“저희가 취재보도준칙을 2007년 처음 만들었는데 실제 적용은 잘 안 되고 있었습니다. 굉장히 잘 만들어진 원칙이라서 그것만 실행해도 신뢰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데 문제가 없을 겁니다. 책무실은 이 준칙을 기자들의 일상에 스며들게 만드는 역할을 합니다. 취재-보도 과정, 취재원을 만날 때의 태도 등을 점검‧지원하고 피드백을 받아서 편집국 전체에 준칙이 구체적으로 작동되도록 하는 겁니다. 기자들 한 사람 한 사람 일상에 적용되게 만드는 거죠. 우리사회가 갈구하는 일을 하는 조직입니다. 이봉현 책무실장이 독자‧시민들과 소통하고 기자들과도 늘상 접하면서 그렇게 만들어나갈 겁니다. ‘윤석열 검찰총장 의혹 보도’ 관련 조사 결과는 이번 주 중 발표할 겁니다. 다만 지난해 10월 보도 당시 신속하게 입장을 내지 못하고 지금까지 시간을 끌어온 것이라 조심스러운 부분이 많습니다. 어떻게 표현하더라도 억측이나 지적이 있을 겁니다. 단어, 문장 하나하나가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사실 이에 앞서 가장 중요한 대원칙은 정직이죠. 보도에 구멍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면 정직하게 인정하는 게 중요한데, 그 시점을 놓쳤죠. 조금 늦었지만 독자들에게, 윤 총장 당사자에게, 한겨레 구성원들에게, 사회에 조사 결과를 설명할 겁니다.”


김현대 사장의 집무실 한쪽 벽면엔 그의 얼굴 사진과 함께 '현대야, 행복하게 살자'라는 문구가 실린 한겨레21 표지가 걸려있다. 한겨레21 선임기자로 활동하다 사장으로 선출된 그를 축하하기 위해 한겨레21 후배들이 마련한 선물이다. 김 사장은 "저에겐 아주 대단하고 좋은 선물"이라고 자랑하면서 이를 직접 들고 포즈를 취했다. /김달아 기자
-한겨레는 1988년 한국 최초의 국민주 신문으로 탄생했지만 지금은 시민사회와의 괴리감이 느껴진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관계 재정립을 위한 복안이 있습니까.
“한겨레는 80년대 이후 대한민국 민주화의 가장 소중한 산물입니다. 시민사회와 괴리감이 느껴진다는 지적을 받는 건 저희들로선 굉장히 부끄러운 일이죠. 하다못해 퇴직한 선배들에게도 꾸중을 듣고 있거든요. 대화가 잘 안 되는 거죠. 당장 5월15일 창간기념일 날 한겨레 가족의 밤 행사를 열려고 합니다. 소원했던 선배들 모시고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는 자리를 마련하는 거고요. 올해 32년 만에 처음 배당을 하는데 이를 계기로 주주님들과의 관계도 되살리고 싶습니다. 잃어버린 주주님들의 정보를 복원하는 작업도 할 것이고요. ‘주주 신진대사’를 이루는 길도 찾아가겠습니다. 퇴직한 선배들, 주주들, 독자에서 시민사회까지 열린 자세로 대화할 수 있는 길을 꾸준히 개척해가겠습니다.”

-지난해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보도 국면에선 사내 세대별 인식 차이도 드러났습니다.
“당시 내부에서도 고참들은 후배들 걱정을 많이 했고 특히 퇴직한, 한겨레 창간했던 선배들의 우려가 컸습니다. 대화가 부족했던 게 큰 문제였다고 생각하거든요. 생각이 다르면 대화하면 되잖아요. 언론이라는 게 공론의 장인데, 우리는 내부 공론의 장도 잘 못 만들었습니다. 바깥에서 들려오는 독자들의 목소리가 오진남(50대‧진보‧남자) 중심이다 보니 건강한, 활발한 논쟁이 못 벌어지는 거죠. 그 독자들이 소중하지 않은 게 아닙니다. 무지 소중하죠. 그분들이 있었기에 한겨레가 있었고요. 다만 그분들과만 대화해선 미래가 없다는 겁니다. 주로 신문에선 5060 독자들과 대화하되 디지털에선 2040을 포괄하는 적극적인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내부 인식 격차도 자연스럽게 해소될 수 있다고 봅니다. 지금은 다층성의 시대인데 그동안 한겨레는 대결의 시대에 갇혀있었던 것 같아요. ‘진보’라고 하더라도 생각이 다 같은 건 아니거든요. 지금보다 독자 구성이 다층화해야 한다, 디지털 환경이 그 문을 열 수 있는 기회다, 그게 후원모델로 갈 수 있는 기폭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주요 공약 중 하나가 후원 모델 개척과 디지털 유료 독자 10만명 확보입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로드맵이 있습니까.
“다들 ‘될까?’ 그러면서도 전적으로 부정적으로 이야기하진 않는 것 같아요. 그런데 이거 말고는 무슨 길이 있습니까. 언론이 공공재 기능을 제대로 하면서 경영의 지속가능성도 유지할 수 있는 길이 뭐가 있을까요. 검증된 길은 뉴욕타임스 유료화 모델과 가디언 후원 모델 두 가지 정도라고 봅니다. 10만명을 언제 어떻게 달성할 거냐고 물으시면 솔직히 저도 자신 있게 이야기 못 합니다. 하지만 이쪽이 아니면 지금처럼 대기업 협찬광고, 디지털 조회수 올리기에 매달리면서 공공재 언론을 포기하게 되는 길로 끌려가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10만명이란 수치는 하나의 이정표로 제시했지만, 이 정도라면 언론으로서 지속가능성을 유지할 수 있는 바탕도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미디어전략부가 후원 모델을 개척하고 있는데요. 신뢰받을 수 있는 뉴스 품질 확보, 디지털 기술 극대화, 마케팅까지 3박자가 유기적으로 결합해야 구체적인 결과물을 낼 수 있다고 봅니다. 대한민국 언론사에서 쉽지 않은 일이겠죠. 단기적으로 성공할 수 있는 모델도 아니고 체질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하잖아요. 그래도 할 수 있도록 격려 부탁드립니다.”

-한겨레는 디지털 선두주자였지만 다른 언론사와 마찬가지로 아직 ‘성공 모델’을 만들어내진 못했습니다. 디지털 분야에서 새로운 돌파구가 있습니까.
“디지털에 일찌감치 진출해 이런저런 시도는 많았지만 크게 성과를 낸 적은 없었습니다. 기자들은 매일매일 바쁘고 편집국은 잘 바뀌려고 하지 않잖아요. 편집국이 변해야 하는데 경영진이 변화의 방향을 디자인해서 끌고 가다 보니 기자들은 자발적인 동력을 찾지 못했던 것 같아요. 그런 점에서 위에서 언급한 미디어전략부는 디지털 기술에 가장 밝고 소통에 능한 기자 3명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현장 기자들을 중심으로 편집국 조직에서 변화의 길을 찾아가고 있기 때문에 그 전과는 다른 에너지를 분출할 거라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영상부문의 유튜브 라이브 뉴스가 큰 주목을 받았지만 진행 과정에서 내부 문제가 불거진 바 있습니다. 그 이후 디지털 영상 콘텐츠 전략은 어떻게 수정됐습니까.
“이제 막 추스르고 다시 워밍업을 하는 단계입니다. 그전보다 구독자 수는 뚜렷하게 늘고 있지만 경영적인 측면에서 투입 대비 성과를 이야기하기에는 아직 이릅니다. 유튜브 라이브 방송 실험과는 별개로 보도전문PP, 종합편성채널 등 TV 방송 진출을 꼭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30년 전 한겨레 창간 이전 이른바 민주화세력은 월간지 ‘말’에 의존했거든요. 일부 해직기자들이 이것 가지고는 안 된다, 일간신문 내자고 주장했는데 사람들은 다 불가능하다고 했어요. 그런데 국민주 방식으로 일간 신문 한겨레를 만들었잖아요. 그게 사회적 소임이라고 생각했고 지금이 그런 국면 아닌가 생각합니다. 신문만 가지고는 한계가 있죠. 우리의 사회적 소임을 다하기 위해서는 그에 상당하는 영향력을 가져야 한다는 겁니다. 이기적인 영향력이 아닌 거죠. 그런 점에서 방송은 필수라고 보고요. 아직 구체적인 방안이 있는 건 아니지만 계속해서 이런 목소리를 내고 실제 실질적인 논의도 할 겁니다. 사회적인 성원을 모아내는 일도 중요하겠죠.”

-코로나19 사태로 언론사 경영상황이 악화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습니다. 현재 한겨레는 어떤 상황인지요. 한겨레 매출은 최근 10년간 800억원대 머물러 있는데 임기 내 1000억원대 매출을 달성하겠다는 공약도 내세웠습니다. 실현 가능할까요.
“경기가 나쁜 상황에서 코로나19 사태가 닥쳤고 그 여파는 3월, 4월로 점점 커지는 것 같습니다. 일부 기업들은 광고비를 20~30%씩 줄이겠다고 이야기하고 실제로 삭감한 곳도 있고요. 전체적으로 10% 정도 감소한 것 같습니다. 얼마나 더 나빠질지 예측할 수 없다는 게 가장 무섭죠. 코로나19 사태뿐 아니라 장기적으로 미디어 산업 자체가 하향하고 있는데, 제가 1000억 매출을 이야기하는 게 앞뒤가 안 맞게 들릴 겁니다. 하지만 안정적인 재원 줄을 만드는 것이 제가 사장으로서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상 제자리를 걸어온 지난 20년을 돌아보면 흑자가 났을 땐 비용을 통제한 결과였어요. 성장이 있어야 사람들이 뛰죠. 사활을 걸어야 합니다. 한겨레라는 신뢰 브랜드를 가지고 외부 집단과 사업을 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할 수도 있고요. 제가 사장으로 할 수 있는 게 결국 3가지입니다. 신뢰의 한겨레, 1000억 매출이라고 이야기한 굵직한 매출원, 선거제 개편을 포함한 지배구조 개선 이렇게 삼각 축입니다.”

-한겨레에선 매출 이야기를 할 때 늘 ‘삼성 문제’가 언급됩니다. 이 문제를 해소할 방안이 있습니까.
“삼성이라는 단어 자체에 고정관념이 씌워져 있습니다. 제가 어떻게 이야기하든 부풀려지죠. 다만 삼성이 다른 언론사에 비해, 한겨레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저희를 부당하게 대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서두르지 않겠습니다. 저희가 제대로 신뢰 있는 보도를 하면 삼성에서도 그에 상응한 액션을 할 겁니다.”

-임기 중 한겨레 신뢰도 1위 회복을 약속했습니다. 어떻게 해야 떨어진 신뢰도를 높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저널리즘 원칙을 지키는 거죠. 어느 언론사가 저널리즘 기본 원칙에 충실하다고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기레기’라고 비판받는데, 언론사 스스로도 돌아봐야 할 점도 많잖아요. 3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오보 사후 대응입니다. 오보, 낼 수 있죠. 틀렸다면 정직하게 인정하고 피해를 받은 당사자에게 사과하고 상응한 조치를 해야 합니다. 둘째는 익명보도 지양입니다. 익명 코멘트 3개면 없던 기사를 있게 만든다고 하잖아요. 불가피하지 않으면 익명보도 하지 않는 거죠. 마지막은 반론입니다. 반론 대상자의 속마음을 살펴 항변하는 내용을 충실하게 다뤄줘야 하는 거죠. 우리는 언론이잖아요. 정치적인 메시지를 전하는 게 아니잖아요. 비판 기사를 쓸 때도 우리 가치 기준에 따라 해야 하는 거지 미운놈이라는 마음을 먼저 가지면 안 되는 거죠. 그게 신뢰를 갉아먹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겨레는 거짓말이 안 통해, 쟤네는 아주 ‘언론’이야, 팩트에서는 한 치도 양보 안 해, 이런 이야기는 들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게 기자들의 자부심이 되는 거고 신뢰가 쌓이다 보면 큰일이 벌어졌을 때 한겨레에 후원자가 몰릴 겁니다. 보통 후원 모델을 한다고 하면 특정 진영에 부합해야 하는 거 아니냐는 이야기를 하는데, 사람들 속에는 그걸 뛰어넘고 싶은 마음이 조용히 깔려 있어요. 거기에 어필하자는 거죠. 때가 올 겁니다.”

-한겨레는 오는 15일 창간 32주년, 18일에는 지령 1만호를 맞습니다. '한겨레 1호 사원'으로서 사장이 되어 만나는 1만호 지면의 의미가 남다를 것 같습니다.
“자랑스러우면서도 진심으로 부끄럽습니다. 1987년 한겨레 창간사무국에 입사할 당시 제일 막내로 지라시 들고 뛰어다니면서 주주님들을 찾아다녔어요. 지금은 나이로도, 직급으로도 제일 높은 사장이 됐네요. 주주님들이 만들어 주신 사장 자리에 앉아 있다 보니 더 진화된 한겨레를 보여드리지 못해 부끄럽습니다. 그때 그 힘, 돈, 정성이 모여 한겨레를 세웠다는 걸 잊지 않겠습니다. 부끄럽지 않게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큽니다.”

-한겨레 앞에 놓인 문제들을 함께 풀어가야 할 구성원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은.
“편집국에서도 독자서비스국에서도 변화의 움직임이 느껴져요. 기존의 관행에 매이지 않고 스스로 능동적으로 나서는 모습이 보입니다. 어렵지만 열심히 뛰고 있는 젊은 친구들이 자랑스럽고요. 고참 동료들에겐 참 고생 많았다고 이야기하고 싶네요. 이제 막 출발선에 섰지만 사장으로서 미안한 게 많습니다. 도전하라고, 실패 두려워하지 말라고 큰소리는 쳐놓고 고삐를 죄고 있거든요. 코로나19로 인한 불가피한 상황이라지만 앞뒤가 안 맞는 처신을 하는 건데요. 마음이 참 안 좋습니다. 불가피하게 쪼일 건 쪼이더라도 꼭 풀어야 할 건 유연하게 대응하겠습니다. 전체 구성원들에게는 우리 모두 겸손하자는 말씀을 드리고 싶네요. 취재원, 독자들, 스스로, 서로에게요. 공공재 언론의 진정한 용기는 겸손에서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취재보도 원칙을 겸손하게 지키는 자세에서 새로운, 신뢰의 한겨레가 시작된다고 봅니다. 기자로 놓고 보면 겸손할 때 팩트를 가장 정확하게 볼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내 마음이 앞서면 어떤 취재를 하더라도 상대방의 이야기를 그대로 듣지 못해요. 겸손, 또 겸손하게 해야 어느 집단이나 세력의 압력에서도 위축되지 않고 당당하게 보도할 수 있습니다. 한겨레 기자들은 겸손한 언론인이라는 소리를 듣는 정도까지 가야 합니다. 들을 말 다 듣고 있는 그대로 쓰면 어떤 로비도 통할 수 없죠. 한겨레 정도면 그 정도는 가야 하는 거 아닙니까.”

-3년간의 임기를 마친 이후, 어떤 사장으로 기억되고 싶습니까.
“제가 늘 저걸(집무실 벽면에 붙어있는 한겨레21 표지. 김 사장의 얼굴과 함께 ‘현대야, 행복하게 살자’는 글귀가 쓰여 있다) 보거든요. 한겨레21 후배 기자들이 만들어준 건데요. 저에게는 아주 대단하고 가장 좋은 선물이죠. 한겨레 사장 3년 마치고 나가면 기진맥진한다고 할까요, 다들 힘들게 나가셨죠. 저는 저 글귀처럼 행복하게 나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웃음) 몸과 마음의 건강을 잃지 않고 나갈 수 있으면 행복한 거겠죠. 국민주 언론 한겨레를 후원시민 언론 한겨레로 다시 세웠다, 이런 이야기 들을 수 있으면 정말 좋겠어요. 그때 국민주가 지금의 후원자라고 생각하거든요. 시민들이 후원하는 한겨레로 다시 세웠다는 평가. 디지털 환경이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시민 언론 한겨레로. 괜찮지 않습니까.”

김달아 기자 bliss@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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