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에 필요한 어젠다 끈질기게 따져물어... 시민 신뢰 확보할 것"

[와이드 인터뷰] 권석천 JTBC 보도총괄

태블릿PC 보도가 있었다. 한국 사회를 뒤흔든 국정농단의 스모킹건. JTBC란 언론사의 영향력과 존재감이 정점에 섰던 순간이다. 그런 JTBC에 요즘 위기감이 감돈다. 뉴스 시청률과 신뢰도를 보여주는 지표들이 예전만 못하다. JTBC 보도에 대해 말하는 시민사회의 목소리도 희미해졌다. 손석희 앵커가 뉴스룸에서 물러나고 반 년, JTBC의 위기를 말하는 목소리는 결코 실체가 없지 않다.


권석천 JTBC 보도총괄이 지난달 1일 임명돼 이제 한 달 남짓, JTBC 뉴스룸에서 변화의 조짐이 보인다. 그는 ‘어젠다 세팅과 키핑’을 수차례 언급하며 “(우리의) 미션은 2020년 한국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밝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구성원에겐 “손석희가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우리가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고 전했다. 다 부수고 새로 짓는 ‘재건축’이 아니라 언론인 손석희의 유산에 대한 철저한 ‘리모델링’이 그가 선택한 위기 타개 방안이다. 다만 이를 ‘손석희’ 없이 해내야 한다.


기자협회보는 쉽지 않은 과제를 부여받은 권석천 보도총괄을 지난 11일 서울 상암 JTBC 신사옥에서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JTBC 뉴스룸의 변화와 임명배경, 삼성과의 관계 등을 물었다. 1990년부터 이어온 기자로서 삶, 소문난 ‘글쟁이’ 권석천에 대해서도 질문했다. 아래는 일문일답.

권석천 JTBC 보도총괄은 손석희 앵커가 '뉴스룸'을 지키던 2016년 말부터 2년간 JTBC 보도국장직을 수행했다. 지난 2018년 12월 인사에서 중앙일보 논설위원으로 발렸났던 그는 지난달 1일 보도총괄로 임명되며 다시 JTBC로 복귀했다. 사진은 권 보도총괄이 지난 11일 서울 상암 JTBC 신사옥(창조관)에서 인터뷰를 마친 후 사진촬영에 응한 모습.
-보도총괄직을 맡고 한 달 가량이 지났는데 소회는?


“보도국장을 마치고 1년 반 만에 돌아온 건데…쉽지 않은 상황인 건 맞다. 보도국장 때는 시청률을 비롯해서 좋은 흐름들이 이어지고 있었다. 지금은 많이 달라진 여건에서 다른 접근이 필요하고, 전혀 새로운 고민거리들을 껴안고 싸워야 한다. 특히 보도총괄은 보도 전반에 대한 권한과 책임을 지고 있는 자리다. 국장을 할 땐 당시 손석희 보도부문 사장(현 대표이사)이 있었지만 지금은 물러설 곳이 없다. 저 한 사람의 결정과 판단, 태도 하나하나가 보도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더더욱 경각심을 갖게 된다. 단호한 자세를 저 스스로에게 주문하고, 다짐하고 있다.”

-보도총괄직을 제안 받고 고민은 안했나? 그럼에도 수락한 이유는 뭔가?


“고민을 안했다면 거짓말일 거다. 하지만 오래 고민하진 않았다. 한국 사회에서 저널리즘의 중요한 가치들을 선도하고, 많은 시민들의 신뢰를 받았던 JTBC 뉴스룸이 위기란 생각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뭐든 해야 겠다’고 마음먹게 됐다. 뉴스룸이, 그리고 선배·후배기자들이 노력해온 일들이 이대로 끝나선 안 된다는 절박감이 컸고, 그로 인해 지금까지 제가 갖지 못했던 책임감도 가지게 됐다. 


또 하나, 해볼 만 하다는 믿음이 있었다. 제가 신통한 능력이나 특단의 무기를 가진 건 아니지만 ‘비빌 언덕’이 있다고 생각했다. 지난 7~8년 간 우리가 해왔던 일들이 있고, 그 일을 해온 기자들은 그대로 있다는 점에서 ‘다시 하면 할 수 있다’는 승산, 가능성을 봤다.”

-JTBC의 시청률이나 신뢰도를 보여주는 지표도 많이 하락한 상태인데 현재 상황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나. 취임사에서 “제가 JTBC로 돌아오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우리 뉴스룸이 이렇게 주저앉아선 안 되기 때문”이라고 하기도 했는데


“이대로 주저앉아서 안 된다는 건 현재 주저앉았다는 얘기가 아니다.(웃음) 이대로 계속 가면 주저앉게 된다는 얘기다. 시청률이 주요 지표라고 보지만, 현재 상황에서 우선적인 과제는 시민들의 신뢰를 확보하는 것이다. 무슨 신기한 시도로 주목도를 올려 시청률이 상승할 거라고, 그런 시청률이 계속 이어질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들의 진심과 노력을 시민들이 믿어주시고 공감해주시면 견고한 시청률 상승으로 이어질 거라 본다. 


손석희 사장의 뉴스룸이 걸어온 길을 보면 계속 어젠다 키핑을 해왔고, 그렇게 신뢰가 확보된 상태에서 국정농단을 거치며 시청률까지 결합됐다. 그런 점에서 ‘왜 지금 한국 사회에 JTBC 뉴스룸이 존재해야 하는가’를 보여줄 수 있는 보도를 지속적으로 해야 한다. 시청률을 끌어올리기 위해 좋은 코너를 만들고 바꾸려는 노력은 계속해야겠지만 우리가 시민사회를 위한 어젠다를 얼마나 제대로 제시하고 지켜나가는지가 가장 중요하다.”

-한동안 JTBC가 백화점식 보도를 많이 한다는 얘기가 있었다. 반면 지난달 25일 현대중공업 산재 문제를 톱뉴스 5꼭지 연속 보도한 것처럼 ‘선택과 집중’을 통한 심층 보도 경향이 다시 나타나기도 했는데, 뉴스룸 변화의 시작인 건가. 


“(백화점식 보도가 많았다는) 지적에 공감한다. 뉴스룸 구성원들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더라. ‘우리만의 뉴스를 하지 않으면 뉴스룸이 설 곳은 없다’고 밝혔을 때 많은 기자들이 공감을 보내왔다. 백화점식 뉴스나 동타 뉴스를 갖고 타 방송사와의 경쟁에서 우리가 우위를 확보하고 차별성을 갖기는 쉽지 않은 여건이라 판단했다. 그래서 ‘죽지 않고 일할 권리’ 같은 어젠다를 지속적으로 보도하려는 것이다. 다른 사안들에 있어서도 한국 사회가 가장 필요로 하는 어젠다가 무엇인지 계속 따지고 물으려 한다.”

JTBC 신사옥 곳곳에는 이 같은 포스터가 붙어있다. "'사실, 공정, 균형, 품위' / JTBC 뉴스가 추구해 온 가치 / 앞으로도 지켜갈 가치 / 시대가 바뀌고, 환경이 바뀌어도 / 뉴스가 할 일을 합니다 / JTBC뉴스룸"이란 문구가 보인다.
-현 JTBC 조직이 그런 구상을 발휘할 역량이 된다고 평가하나. JTBC 보도 조직의 장점과 단점은 뭔가.


“2013년 손 사장이 온 다음부터 ‘선택과 집중’을 다른 어떤 매체보다 적극적으로 해왔다. 결코 타 방송사보다 인원이 많다고 볼 수 없는데, 일단 어젠다가 설정되면 그 이슈에 집중해서 만드는 훈련이 매우 잘 돼 있다. 어찌 보면 사회성 기사들에 특화된 역량인데, 정치나 경제 문제까지도 사회부적으로 취재해 온 게 저는 장점이라 생각한다. 사회부적으로 파고들어 밝혀내고, 문제를 제기하는 노하우와 역량이 축적돼 있기 때문에 탐사기획1,2팀을 만들고 1~2주도 지나지 않아 ‘죽지 않고 일할 권리’ 같은 집중보도를 할 수 있었다고 본다. ‘톱으로 올리자’는 것은 저와 보도국장의 결정이지만 ‘이것을 취재해서 보도하겠다’는 건 현장 기자들의 기량이 살아있어야 가능한 거다. 1보, 2보 같은 속보는 놓칠 수 있다. 첫 보도를 못해도 지속적으로 문제의식을 갖고, 저희가 할 수 있는 걸 최대한 쏟아 부어야 한다.


다만, 영상 중심의 뉴스를 해야 한다는 것은 우리의 과제다. 아직 텍스트 중심에 가깝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보다 방송의 문법, 방송 저널리즘에 맞는 콘텐츠를 만들어야 한다는 점을 다들 인식하고 있는 만큼 나아지리라 본다.”

기자협회보와 인터뷰 중인 권석천 보도총괄이 책 '저널리즘의 기본원칙' 일부 구절을 언급하고 있다. 책 사이사이 빼곡하게 붙은 '포스트잇'이 눈에 띈다. 30년차 언론인으로서, 법조 분야에 오래 몸담았던 기자로서, 언론과 기자의 잘못을 지적하고 반성해 온 칼럼니스트로서 그의 고민이 엿보인다.
-취임사에서 “손석희가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우리가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이를 ‘손석희 앵커’ 없이 해야 하는데 복안이 있나. 달리 보면 ‘손석희의 뉴스룸’이 아니라 ‘JTBC의 뉴스룸’으로 거듭날 시점이란 의미도 있는 거 같은데.


“손석희 사장과 JTBC 기자들은 국정원 댓글 사건부터 세월호, 국정농단, 미투까지 한국 사회의 어젠다를 세우고 지켜왔다. 달라질 건 없다. 우리 기자들은 이미 그런 일들을 해온 사람들이다. 다만 이제는 기자들의 역량이, 함께 토론하고 함께 일하는 시스템이 중요해졌다. 축구에 비유하자면 킥을 얼마나 잘 하느냐도 중요하지만 패스를 얼마나 정확하게 하고, 센터링을 얼마나 제대로 하느냐가 중요하다.


‘손석희의 뉴스룸’이 견지했던 저널리즘을 JTBC 기자들의 일하는 방식으로, 시스템으로 어떻게 구현해낼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 손 사장이 앵커로서 뉴스룸의 전면에 있었으니까, 부족한 부분이 있어도 메워질 수 있었는데 이제는 우리가 일하는 방식과 시스템으로 구현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됐다. 일하는 방식(work rule)을 개선해나가려고 한다. 기자 한 사람 한 사람의 성장을 어떻게 도울지, 일하는 방식을 어떻게 바꿀지를 원점에서부터 고심하고 있다. (그런 측면에서) 위기이자 기회라 보고 있다.”

-손 사장은 과거 보도에 전권을 부여받아 온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권 총괄은 어떤가. 사주가 있는 회사다 보니 개입을 우려하는 시선도 있는데 걱정은 없나? 


“없다(웃음). 보도 부문의 독립성, 그러니까 정치적‧경제적 고려 때문에 보도가 왜곡되지 않는다는 것은 그동안 잘 만들어져온 시스템이고, 내부에 공유된 믿음이다. 그 믿음이 깨지는 순간 심각한 아노미 상태로 갈 수밖에 없다. 그런 상태로는 시민들의 신뢰를 확보할 수 없을 거라 본다. 뉴스룸이 서 있는 기반 자체가 날아가는 거라는 점에서 반드시 지켜야 할 소중한 가치라고 생각한다. 늘 예민하게 의식하고 있다.”

-보도총괄 임명에 손 사장 의중이 많이 반영됐다는 말이 있던데 어떤가. 손 사장과는 자주 커뮤니케이션 하는 편인가.


“인사가 나기 전 (홍정도‧손석희 사장) 두 분을 만나서 뜻을 전달 받았을 뿐 인사배경은 잘 모르겠다(웃음). 보도국장을 만 2년 한 게 고려 대상이 되지 않았나, 짐작하고 있다. (손 사장은) 도움말을 많이 해주고 있다. 어떤 보도를 하라, 하지 말라는 건 아니고, 아이디어와 제안을 많이 주고 있다. 특히 어떤 뉴스를 방송적으로 어떻게 구현해야 하는지에 대해선 (손 사장과) 견줄 사람이 사실상 없다.”

-취임사에서 ‘합리적 진보’란 워딩을 사용했는데, 어떤 의미인가.


“사회를 과거로 퇴행시키는 문제들을 찾아내고 지적해야 하는 이상, 언론은 ‘진보’일 수밖에 없지 않나, 생각한다. 사회가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데 ‘다 별 수 없는 사람들’이란 식으로 환멸을 부추기고, 냉소하게 만드는 것은 언론이 할 일이 아니다. 


지금 시민들이 언론에 갖고 있는 비판적인 시각은 한마디로 ‘언론 너희들이 단정적으로 모든 걸 예단하려고 하지 마라. 그게 사실이 아닌 때가 많다는 걸 우린 봐왔다’는 게 아닌가 싶다. 또 ‘검찰이 뭐라고 말했다’ ‘검찰 조사 결과 어떻게 나왔다’… 기자들이 져야 할 보도의 책임을 검찰에 떠넘기는 식으로 해온 수사 보도가 시민들의 비판을 받아왔다. 언론 보도는 어디까지나 결과가 아니라 과정인데, 자꾸 오버해서 최종적인 답을 내려했던 게 비판의 지점이었다고 본다. ‘합리적’이란 것은 이를테면, 우리도 모든 진실을 아는 것은 아니라고 결론을 열어놓는 거다. ‘100이 있으면 우리가 60~70까지 확인했다. 여기까진 맞는 거 같은데 남은 30~40은 더 확인돼야 한다. 나머지 의문은 상대방이 답해야 한다’고 하는 게 합리적인 태도다.”

-조직개편을 했는데, 어떤 목표를 뒀나.


“가장 큰 건 탐사팩추얼본부(구 탐사기획국)를 만든 거다. OTT 시장에서도 먹히는 팩추얼 영상 콘텐츠를 만들겠다는 취지로 확대 강화했다고 보면 된다. 보도국에선 탐사기획 1,2팀을 만들었다. 기존 9명 인력을 15명 정도로 늘려서 어젠다 세팅과 키핑 기능을 맡겼다. 탐사기획 1,2팀 뿐 아니라 일반 취재부서에서도 기획 취재를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데일리 뉴스, 오늘의 뉴스만 처리해선 기자 개인의 발전도 없고 차별화도 안 되기 때문에 일주일 짜리든, 2~3일 짜리든 기획 취재를 하고, 각 부서들이 협업을 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고 싶다. 탐사기획팀이 마중물이 돼서 다른 취재부서에도 기획 취재, 탐사 취재의 분위기가 확산되길 바라고 있다. 호흡의 길이가 다를 뿐, 같은 일을 하는 거다. 대략 일주일 취재하는 기획이 (양쪽 부서들의) 접점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간 언론이 육하원칙 중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까지만 취재해 전달했다면 우린 ‘어떻게’(how)와 ‘왜’(why)에 집중하려 한다. 무슨 일이 어떻게 일어났는지 디테일을 보여줘야 한다. ‘배후’에 뭐가 있는지 보여줄 순 없다 해도 ‘배경’을 보여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거기에 우리의 차별성이 있고, 거기에서 우리의 어젠다가 생길 것이라고 본다. 예를 들면, 쿠팡에서 코로나19 확산이 됐다면 ‘확진자가 몇 명으로 늘어났다’는 건 한 줄이면 된다. 비정규직이 대부분인 사업장에서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를 파헤쳐야 한다. 그래서 알바 직원들이 어떻게 고통 받았고,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 디테일하게 보여주면 시민들이 공감하고 공명할 거라 본다.”

-조직개편으로 디지털 모바일 대응 역시 달라지는 게 있나. 기존 간부 중 일부가 보도총괄 직속 전문위원으로 임명됐는데 이들의 역할은 무엇인가. 


“모바일 보도보다 뉴스룸(방송 뉴스)에 집중해 온 게 사실이다. 모바일에서 유통되는 것 역시 뉴스룸 리포트들이 주로 활용돼왔다. 아직 말씀드릴 단계는 아니지만 뉴스룸만의 모바일 콘텐츠도 논의 중이다. 어떤 특정한 조직을 만들어서 한다기보다는 모든 기자들이 모바일의 중요성을 실감하고, 같이 해나가야 한다. 전문위원들은 각자의 분명한 역할이 있다. ‘정치부회의’를 진행하고, 뉴스제작의 전반적인 전략과 리모델링을 맡고, 중·장기 디지털 전략을 취재디지털담당(부국장)과 함께 강구하고 있다. 하나하나가 현재 뉴스룸의 현안들이다.”

권석천 JTBC 보도총괄은 손석희 앵커가 '뉴스룸'을 지키던 2016년 말부터 2년간 JTBC 보도국장직을 수행했다. 지난 2018년 12월 인사에서 중앙일보 논설위원으로 발렸났던 그는 지난달 1일 보도총괄로 임명되며 다시 JTBC로 복귀했다. 사진은 권 보도총괄이 지난 11일 서울 상암 JTBC 신사옥(창조관)에서 인터뷰를 마친 후 사진촬영에 응한 모습.
-보도총괄로서 보도 외 경영 등 영역에도 신경을 쓸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삼성으로부터 광고가 끊긴 지 꽤 됐는데 삼성과의 관계 부분에서 고민은 없나. 따로 견지한 원칙이 있나? 


“그간 뉴스룸이 삼성 보도를 해온 것은 삼성이라서가 아니다. 한국의 대기업으로서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는지, 사회적으로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하는 것은 아닌지 감시하고 비판해온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변하는 것은 없다고 본다. 잘못한 게 있다면 언제라도 잘못했다고 지적할 것이다. 그건 우리 구성원들은 아무도 의심하지 않는 상식이라고 본다. 책 ‘저널리즘의 기본원칙’을 보면 이런 구절이 나온다. ‘그들은 비즈니스를 이해하는 기자인가? 아니면 저널리즘을 이해하는 비즈니스맨인가? 구분점은 충성심의 문제다.’ 우리가 충성해야 할 대상은 오직 시민들이다.”

-바쁜 와중에 산문집(‘사람에 대한 예의’)을 냈다. 책 소개와 소감을 부탁드린다.
“제겐 아픈 손가락 같은 글들이다. 저 자신이 그간 말하지 못했던, 내밀한 이야기도 있고, 한국 사회에 대한 고민을 담은 것도 있다. 소설체, 편지체, 인터뷰 형식, 심지어 보도자료 형식까지 신문 칼럼에서 해보지 못했던 다양한 스타일을 시도해보려고 했다. 꼭 어떤 결론을 맺기보다는 함께 생각해봐야 할 문제들을 펼쳐놓고 싶었다. 그렇게 서른일곱 개의 글을 써놓고 보니 ‘사람에 대한 예의’란 제목이 나왔다. 저널리즘도 결국은 ‘사람에 대한 예의’를 묻고 따지고 주장하는 것이란 점에서 기자들이 눈 여겨 봤으면 하는 지점들도 있다. 좋게 읽히기를 바라지만 그건 쓴 사람의 욕심일 거 같다.(웃음)”

-기자 권석천은 글쟁이로 대중에게 알려져 있다. 글쓰기가 개인적으로 갖는 의미가 있을까. 


“제게 글쓰기는 쓰디쓰면서 달콤한 일이다. 그 이유는 철저한 재구성이기 때문이다. 무엇이 문제인지를 따져보면서 줌인(zoom in)해야 할 것은 뭔지, 줌아웃(zoom out)해야 할 것은 뭔지를 고민하는 과정이다. 결코 무난한 과정, 내 생각이 싸워서 이기는 과정이 아니다. 내 안의 통념이 부서지고 깨져나가는, 패배와 좌절로 점철된 과정이다. 그렇게 묻고 되묻고, 고치고 또 고치다보면, 마치 토스트기에서 식빵이 구워져 튀어나오듯, 데드라인(마감시간) 직전에 글 하나가 나온다. 그러고 나면 무엇보다 나 자신도 달라져 있다. ‘내가 글을 쓰는 게 아니다. 글이 나를 쓴다’는 건 그런 의미에서다.”

-2014년 세월호 현장 취재가 기자 인생의 변곡점이 됐다고 했는데 그 사건으로 기자의 일에 대한 인식이나 언론관이 달라진 게 있나. 


“2014년 4월 팽목항 현장에 갔을 때 당시 실종자 가족들이 취재진에 보였던 분노를 접하며 기자란 직업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 우린 우리가 100미터 달리기를 하듯 살고 있고, 그래서 만성적인 피로와 동시에 집단적인 자기연민을 느끼곤 한다. 하지만 정작 자신들이 어떤 일을 하고 있고,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해왔는지는 깨닫지 못해온 것 아닌가, 현장과 괴리된 ‘속보’에 매달려 시민들에게 진짜 알려야 할 것들은 외면해왔던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기자란 직업인이 아니라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제대로 살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되묻는 계기가 됐다.”

-항상 사법부나 검찰 등 법조 부문, 그리고 이 분야가 언론이 맺는 관계에 관심이 많았다. 이 문제들은 기자 권석천에게 어떤 의미인가. 


“법원과 검찰에 대한 관심은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내가 법조 기자의 경로를 밟아왔기 때문이다. 법조 담당 논설위원이 되어 사회 문제를 생각하고 글을 쓰게 되면서 사법권력·검찰권력이 한국 사회에서 차지하고 있는 비중이 너무도 크다는 점, 그럼에도 법원과 검찰을 움직이는 사람들이 그만큼의 책임감이나 공감능력, 윤리의식을 갖지 않고 있다는 점을 계속해서 알게 되었다. 쉬지 않고 이어지는 사건들을 통해 한국 사회의 내면을 바라보게 되면서 점점 더 비판적인 시각을 갖게 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1990년 언론사에 입사했으니 올해 30년 차 기자가 됐다. 어떤 기자였다고 자평하고, 어떤 기자로 남고 싶나.


“돌아보면 아찔하다. 30년 간 기자생활을 하게 되다니…. 내 앞에 놓인 것들에 고개를 끄덕이며 믿기보다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회의하는 기자 생활을 해온 것 같다. 무엇이 진실인지를 계속해서 묻는 기자로 남고 싶다. 진실은 찾아지고 밝혀지는 결과물이 아니라, 찾고 밝히는 과정 속에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최승영 기자 sychoi@journalist.or.kr
김성후 기자 kshoo@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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