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고 나서야 알았어요, 엄마를 향한 아이들의 애틋한 마음을"

[인터뷰] 암투병기 블로그에 연재하는 양선아 한겨레신문 기자

양선아<사진> 한겨레신문 기자는 지난 1월4일 자신의 블로그에 ‘유방암’ 카테고리를 만들었다. 한 달 전 맞닥뜨린 암을 내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첫 단계였다. 19년차 기자인 그에게 2019년은 유난히 바쁜 해였다. 사회정책팀에서 교육을 담당하며 한국유치원총연합회 논란과 유치원 3법, 자립형사립고 폐지, 대학입시정책 변화 등 큼지막한 이슈를 다뤘다. 그해 10월엔 사회정책팀장까지 맡았다. 바쁘고 힘들었지만 그는 이 일 자체를 즐겼다. 열정과 긍정이 생활신조인 만큼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던 그의 몸에 2019년 12월, 느닷없이 암이 발견됐다.



“건강검진에선 문제없었거든요. 어깨가 아파서 마사지를 받으러 갔는데 가슴에 몽우리가 있다면서 병원에 가보라는 거예요. 별생각 없이 검사했는데 유방암이래요. 내가 암이라니. 그냥 멍했어요. 팀장 역할이 재밌었는데 3개월 만에 그만두게 돼 아쉽기도 했어요. 6개월이라도 해보고 암이 발견되던가, 이런 생각까지 들더라니까요.(웃음)”


지난 16일 만난 양 기자의 얼굴에선 병색을 찾아볼 수 없었다. 친정엄마가 해준 건강한 집밥과 채소, 과일을 챙겨 먹은 덕분에 거칠거칠했던 피부가 부들부들해졌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혹독한 항암치료를 8차례나 견뎌내고 수술(20일)을 앞둔 그의 표정은 밝아 보였다.


“지금은 괜찮아졌는데 처음엔 많이 울었어요. 왜 나일까. 열심히 살아온 게 죄일까? 화가 나고 자책도 많이 했어요.” 발병 초기 친한 후배가 선물한 책 ‘아픈 몸을 살다’를 읽으면서 부정적인 관점이 긍정적으로 바뀌었다. ‘다른 사회 구성원은 환자의 말에 귀를 기울어야 하고, 환자도 내 아픔을 공유하는 데 의미가 있다’는 저자의 조언을 계기로 그는 자신의 아픔을 공개적으로 기록하기 시작했다.



양 기자의 블로그에 하나둘 쌓인 투병기는 그 스스로 암을 받아들이는 과정이었다. 유방암 정보부터 항암치료의 공포와 고통, 병원에서의 장면들, 때때로 걷잡을 수 없이 무너져 내리는 마음, 소소한 일상이 주는 행복, 가족과 동료들을 향한 고마움까지. 암을 만나 겪은 일들과 그사이 든 오만가지 생각을 블로그에 촘촘하게 써 내려가고 있다. 항암치료로 엄마 머리카락이 빠지는 걸 본 아들 민규가 이불을 뒤집어쓰고 훌쩍인 이야기도 여기 실려 있다.


“아이들이 엄마를 이렇게 애틋하게 생각하는지 아프고 나서야 알았어요. 일에도 가정에도 최선을 다했지만 늘 아이들이 잘 때나 들어갔거든요. 사춘기에 접어든 딸이 친구관계에서 어떤 고민을 하는지, 무뚝뚝한 줄 알았던 아들이 애교를 부린다는 것도 알게 됐죠. 아이들, 가족의 존재가 큰 힘이 돼요.”


이번 수술과 후속치료 과정이 지나면 그는 암과 영영 이별할 것이다. 언제 아팠냐는 듯 취재현장에서, 편집국에서 기자 양선아로 살아갈 것이다. 돌이켜보면 계획한 대로 앞만 보며 살아온 그에게 암이라는 변수는 고통만큼 커다란 깨달음도 던져주었다. 평범했던 그때 그 일상이 이젠 기적처럼 느껴진다.


“지금까진 목표를 정하고 그걸 이루기 위해 애썼지만 남은 삶은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살려고 해요. 투병하는 과정에서 차근차근 삶의 방향성을 찾아봐야죠. 아프고 나니 그동안 제가 베푼 아주 작은 친절이 크게 돌아오더라고요. 앞으로의 인생은 이 감사함을 되갚으며 살아갈래요.”


김달아 기자 bliss@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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