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3년 8월… 조선일보, 서울·워싱턴·도쿄 팩시밀리 첫 가동

[저널리즘 타임머신] (33) 기협회보 1983년 8월 10일자

김달아 기자 | 2020.09.02 14:46:25

1983년 8월 기자협회보(당시 기협회보)에는 조선일보가 팩시밀리를 처음 도입했다는 소식이 실렸다. 당시 가장 손쉽고 빠른 기사 송고 수단으로 애용되던 전화에 비하면 팩시밀리는 초고속이었다. 조선일보가 서울-워싱턴-도쿄 간에 설치한 이 팩시밀리는 가로 20cm, 세로 30cm 종이 위에 글, 그림, 사진 등을 20초 이내에 선명하게 송수신할 수 있었다.



조선일보 외신부 차장 김윤곤 기자는 팩시밀리 도입의 의미와 전망을 기자협회보 기고글로 전했다. 이 글에 따르면 당시 서울에서 해외 특파원의 기사를 받을 때는 주로 국제전화를 이용했다. 보통 전화로 불러준 기사를 그대로 받아 쓰고, 시간의 여유가 있거나 긴 것이면 녹음했다가 다시 풀어 쓰곤 했다. 하지만 송화자의 발음과 수화자의 청력이 궁합을 이루지 못해 오류가 발생할 때가 많았다고 한다. “두 아들을 중심으로”라는 문장이 “부하들을 중심으로”로 잘못 전달되는 일도 있었다.


전화 다음으로 사용돼온 텔렉스는 요금이 비교적 싼 데다가 잘못 받아 쓸 우려도 적었다. 다만 한글이나 한자를 로마자로 표기(로마나이즈)해 전송하는 방식이어서 특파원의 시간을 너무 많이 빼앗는다는 결정적인 약점이 있었다.


팩시밀리는 이러한 어려움을 한꺼번에 해결했다. 김 기자는 “특파원들은 자신이 보낸 기사가 잘못 전달될까하는 우려를 한결 덜게 됐고, 수신하는 외신부 기자들은 생색도 안나는 특파원 기사 풀어쓰기에 더 이상 시간을 허비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무엇보다 가장 큰 장점은 신문제작 과정, 시간 단축이다. 김 기자는 “이런 좋은 정보전달 수단은 사실 가장 빠른 정보매체로 자부하는 언론기관치고는 뒤늦게 그 효용성을 터득한 감이 없지 않다”며 “해외 특파원뿐 아니라 국내에서도 지방의 요소요소에 팩시밀리가 설치돼 있으면 기사 및 사진 송고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김 기자는 여러 언론사가 공동 팩시밀리망을 구축하고 서로 협조해 운영하면 비용을 절감하면서 큰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이미 미국 기자들은 팩시밀리 같은 것을 사용하지 않는다. 휴대용 컴퓨터로 기자실에서 직접 본사의 컴퓨터에 기사를 입력시키고 있다”며 “(서울에서 열리는) 아시안게임(1986년), 올림픽(1988년) 등으로 선진조국을 과시할 우리도 조만간 정보전달의 전자화를 이룩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달아 기자 bliss@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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