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단계 사기’, ‘자금세탁’, ‘다크웹 성착취물·마약 은닉 거래’, ‘세금 회피’. 모두 서울신문의 기획 시리즈 ‘2020 암호화폐 범죄를 쫓다’에서 파악한 암호화폐 범죄 유형들이다. 서울신문 탐사기획부 안동환 부장, 박재홍·송수연·고혜지·이태권 기자는 지난 6월 ‘암호화폐 범죄를 쫓다’ 기획을 통해 암호화폐와 연관된 각종 범죄와 법·제도적 허점, 그리고 범죄 피해자들을 다루며 암호화폐 범죄가 우리 일상 속에 침투해 있음을 알렸다. 12회에 걸친 시리즈를 마무리한 이후에도 국내 대형 암호화폐 거래소 비리를 고발하며 후속 보도를 이어가고 있다.
탐사기획부가 취재 과정에서 만난 한 변호사가 “암호화폐 시장은 무법지대”라고 알려준 게 취재의 시작이었다. 당시는 ‘n번방 사건’을 통해 암호화폐가 범죄 수익으로 활용된다는 정도만 알려져 있던 상황이었다. “뭐가 더 있을까”, 반신반의하던 기자들은 두달 간의 사전 취재를 통해 암호화폐 범죄 유형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고, 광범위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기자 한 명 당 범죄 유형 하나를 맡아야 할 정도였다. 그러나 암호화폐는 기자들에게 생소한 영역이었다. 본격적인 취재에 앞서 2주 동안 경찰, 암호화폐 범죄 전문기관 등을 섭외해 강의를 들으며 암호화폐, 블록체인 지식을 축적한 이유다.
음지에 묻혀있던 암호화폐 범죄가 세상에 알려지자 사회적 반향은 컸다. 암호화폐 거래로 수십억원을 벌었음에도 세금 한 푼 내지 않는 문제를 보도한 이후 기획재정부는 암호화폐에 세금을 매기는 방안을 세제 개편안에 포함하겠다고 발표했다. 또한 해외 아동 성착취물 사이트에서 국내 한 대형거래소의 개인 지갑으로 비트코인을 송금한 사례를 포착해 제2의 손정우(세계 최대 아동 성착취물 사이트 ‘웰컴투비디오’ 운영자)가 있음을 알리며 경찰 수사도 시작됐다.
고혜지 기자는 “그동안 암호화폐 범죄가 국제단위로 넘어가면 경찰이 수사를 접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번 보도로 경찰이 국제 공조를 하는 등 변화가 생기고 있다”며 “문제는 범죄가 보도된 내용보다 더 다양한 범위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경찰이 보도된 것 외에는 수사에 나설 여력이 없어 안타깝다. 경찰에서도 다른 암호화폐 범죄들이 알려질 수 있도록 더 많은 보도를 해달라고 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암호화폐 사기로 전 재산을 날린 피해자, 반대로 대박 난 암호화폐 투자자 등 기자들은 다양한 취재원들을 만났다. 암호화폐를 이용한 다크웹에서의 성착취물·마약 은닉 거래를 중점적으로 파헤친 이태권 기자는 “다크웹 국내 이용자 커뮤니티 ‘코첸’을 조사하니 여전히 n번방 성착취물 영상이 거래되고 있었는데 이들은 n번방 사건이 이슈화됐음에도 전혀 개의치 않는 반응이었다. 그만큼 암호화폐 거래 추적이 어렵고 사각지대가 있는 것”이라며 “마약, 졸피뎀 거래 글들도 올라와 있었다. 실제로 거래 직전까지 위장해 딜러에게 자금세탁 경로 등 암호화폐를 어떻게 범죄로 이용하는지 취재했던 게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기자들은 암호화폐 범죄 피해자들을 위한 지원에도 나서고 있다. 지난 7월 블록체인 보안업체 웁살라시큐리티와 협업으로 암호화폐 범죄 피해자 지원 플랫폼 ‘코인셜록’을 출범시킨 것. 송수연 기자는 “피해자가 자신의 피해 상황을 의뢰하면 해당 암호화폐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추적한 범죄 보고서를 무상으로 제공하고 있다. 이 범죄 보고서를 가지고 피해자는 경찰, 검찰에 증거자료로 수사해달라고 요청할 수 있다”며 “출범 이후 27건의 범죄 피해 의뢰가 등록됐다. 조금이나마 피해자들에게 실질적 도움을 줄 수 있는 솔루션 저널리즘을 실천하려 했다”고 말했다.
기자들은 암호화폐 광풍이 돌던 지난 2017년 이후 3년이 지나도록 손을 놓고 있던 정부의 책임이 크다고 입을 모았다. 박재홍 기자는 “취재에서 만난 전문가들 모두 블록체인, 암호화폐가 미래를 선도할 중요한 기술이라고 말했다”며 “문제는 기술이 나쁘게 활용되고 있는 건데 암호화폐 범죄를 막을 정책, 블록체인 발전을 위한 정책 모두 부족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기자들은 암호화폐 범죄 관련 보도를 이어나갈 예정이다. 안동환 부장은 “내년 3월에 특정금융정보법 개정안 시행을 앞두고 있는데 중소형 암호화폐 거래소들의 폐업·파산, 일명 ‘먹튀’ 등으로 시장의 혼란이 커질 거라고 본다”며 “일반 피해자들에게 암호화폐 거래소 불법행위에 대해 미리 알리고, 경고하기 위한 보도가 현재진행형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박지은 기자 jeeniep@journalist.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