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2년간 젠더 분야를 담당한다는 이유로 강연 자리에 설 기회가 종종 있었다. 대부분 언론사의 젠더 보도 경향을 톺아보는 자리였다.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요청에 기꺼이 응했다. ‘기레기’란 말이 통용되고 특히 젠더 이슈에 관해선 기사가 2차 피해를 양산한다는 비판도 받는 현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 기자들이 더 나은 보도를 위한 고민을 한다는 것, 독자들과 그 고민을 나누고 싶어한다는 것을 알리고픈 마음이 컸기 때문이다. 하지만 매번 마음 한 쪽에선 “요즘 누가 신문을 본다고”, “기자의 말에 누가 관심을 갖겠어”란 회의감이 불쑥 튀어나오곤 했다.
다행히도 이런 예상은 대개 빗나갔다. 질문이 계속 이어져 예정된 시간보다 30분 이상 늦게 끝나는 경우도 잦았다. 특히 30대 이하는 성별과 무관하게 높은 관심을 보였다. 성차별적인 보도가 반복되는 구조적 원인은 무엇인지, 페미니스트 기자들의 연대가 있는지, 성평등 보도로 어떤 담론을 만들 수 있다고 보는지 등 이들이 던지는 질문은 그 스펙트럼이 넓고 깊었다. 이들에겐 젠더 이슈가 정치·법·사회·언론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는지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잣대이자 생존, 즉 삶과 직결된 문제라는 걸 새삼 자각할 수 있었다. “20만명 동의를 달성해 청와대로부터 답변을 받은 국민청원 10개 중 4개가 젠더 이슈”(한국여성정책연구원)일 정도로 주요 현안이 됐단 점도 실감이 났다.
하지만 높은 관심에 견줘, 언론사에서 젠더 이슈는 여전히 쉽게 주변화되는 것으로 보인다. ‘미투’ 운동 이후 그나마 일부 언론이 성범죄 보도에 주의를 기울이지만, 성인지적 관점이 정치·노동·복지 등 다양한 분야로 확장되는 경우는 드물다. 회사 안팎의 동료들과 대화하다 보면, 젠더 이슈는 늘 ‘젊은 여성 기자’가 자발적으로 열정을 바칠 때에야 겨우 보도 가능한 경우가 많았다. 유독 젠더 이슈에 대해서만큼은 “무지를 부끄러워하지 않는 분위기”란 얘기도 나왔다.
젠더 이슈의 뉴스가치를 평가 절하당한 경험도 공통적이다. 장은미 서강대 언론문화연구소 책임연구원이 지난해 기자 인터뷰를 토대로 ‘젠더 이슈 보도 실태 및 개선 방안 연구’를 진행한 결과를 보면, “젠더 이슈를 보도하는 것은 정치·경제적 권력에 대한 감시와 비판보다 덜 중요한 것으로 판단하는 편집국 내부의 분위기가 암묵적으로 작동한다” “(데스크가) 젠더 이슈에 대해서는 더 엄격한 잣대를 적용하면서 더 새롭게 만들어보라고 요구한다”는 내부 발언들이 뒤따른다. 한 언론사의 8년차 기자는 “(이슈가) 그렇게 많은데 하필 넌 왜 맨날 여성 이슈만 쓰냐?”는 지적을 받은 일화를 털어놓으며 되물었다. “아니, 항상 노동 기사 쓴다고 뭐라 하진 않잖아요?”
이러한 모습은 언론사 역시 오랜 기간 남성 중심적인 사회를 구성해 온 주축이자 이를 기록해 온 주체였단 점과 무관치 않다. 하지만 언론의 임무가 당대 사회를 기록하는 것이란 점을 상기한다면, 적어도 판단의 기준이 과거로 회귀하는 형태여선 안 된다. 한 사회의 성별이 단일하지 않은 이상 정치·경제·불평등·돌봄·노동·평화 등 그 어떤 이슈도 젠더와 동떨어져 있지 않다. “넌 왜 젠더기사만 쓰니?”라고 물을 게 아니라 세상 모든 이슈를 성인지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훈련이 필요한 것이다. 새해에 이러한 편집국(보도국)의 변화를 바라는 건 욕심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