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올림픽에 콘돔 15만개를 뿌린다고?

[이슈 인사이드 | 스포츠] 양지혜 조선일보 스포츠부 기자

양지혜 조선일보 스포츠부 기자 도쿄 올림픽이 예정대로 열린다고 해도 양상은 예전과 많이 다를 것이다. 메달에 감격해 동료를 얼싸안는 선수, 선수 바로 옆에서 소감을 묻는 기자, 환호성을 내지르는 관중 등은 도쿄에서 보기 어렵다.


이달 초 IOC와 도쿄올림픽조직위원회가 공동으로 35쪽 분량의 ‘프레스 플레이북(Press Playbook)’을 공개했다. 도쿄 올림픽 취재진들이 대회 기간 내내 준수해야하는 규범 안내서다. 내용을 읽어나갈수록 코로나 시대에 올림픽을 치른다는 것이 얼마나 난망한 일인지 실감이 됐다. 악수 금지, 포옹 금지, 대중교통 이용 금지, 마스크 쓰기, 2m 거리두기, 수시로 손 씻기 등 절대 해서는 안 될 것과 반드시 해야할 사항들의 범벅이었다. 심지어 14일간 어디서 어떻게 지낼지 기자 개인의 활동 계획을 일본 당국에 사전 보고하고 승인받아야 한다는 조항까지 발견하고선 맥이 풀렸다. 이럴거면 올림픽 취재를 굳이 해야해?


그럼에도 다시 눈이 번쩍 뜨인건, 도쿄올림픽 조직위원회가 AFP통신과 한 인터뷰를 보고 나서다. 조직위 관계자가 “선수들에게 콘돔 15만여 개를 무료로 나눠준다는 계획은 아직 유효하다”고 발언했다. 포옹과 악수는 커녕 서로 2m씩 떨어져 지내길 강제하는 올림픽인데, 콘돔 쓸 일이 당연히 있을거라고 조직위는 예상하는 것인가. 15만개 배포는 무슨 근거로 정한 것일까.


올림픽 무료 콘돔은 1988 서울 올림픽에서 처음 선보였다. 에이즈(AIDS)가 퍼지기 시작하면서 올림픽에서도 예방의 필요성이 강조됐기 때문이다. 당시 콘돔 8500개가 제공됐는데 선수 1인당 1개 꼴이었다.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선 무려 9만개(1인당 9.6개)를 뿌렸다가 1996 애틀란타 올림픽에선 1만5000개로 줄었다. 2000 시드니 올림픽에서 다시 9만개로 늘었고 이후 2004 아테네 올림픽 13만개, 2012 런던 올림픽 15만개 등으로 급증세를 나타냈다. 2016 리우 올림픽에선 45만개(1인당 40개)가 제공됐는데 당시 남미 지역에 뇌손상을 유발하는 지카 바이러스가 퍼졌기 때문이다.


도쿄 올림픽 전체 선수단 규모가 약 1만명이니 15만개를 뿌리면 선수 1인당 15개 꼴로 분배된다. 대회가 17일간(7월23일~8월8일) 열리는 것을 감안하면 선수들이 얼추 하루 한번씩 뜨거운 순간을 누릴 수 있는 넉넉한 양이다. 그들이 선수촌에서 코로나 감염 위험을 무릅써가면서 그 순간을 누리려 할지는 모르겠지만. 신축년 새해에도 도쿄 올림픽이 ‘취소설’과 ‘연기설’ 사이에서 휘청거리고 있는데 조직위는 이렇게나 낭만적인 콘돔 계산을 하고 있었다. 일본 총리가 “인류가 코로나 사태를 극복했다는 상징으로 도쿄 올림픽을 꼭 열겠다”고 몇십번을 말해도 개최에 회의적이었는데, 저 콘돔 숫자를 보고 나선 “어쩌면 가능할지도 몰라”라고 생각하게 됐다. 작위적으로 빗대면 집단 수용소에서 학교 책가방을 발견한 소녀의 마음 같은 것이 생겼다.


도쿄 올림픽은 아직도 안갯 속이다. 성화 봉송을 다음달 25일 시작한다는데 모리 요시로 도쿄올림픽조직위원장이 여성 비하 발언으로 최근 사퇴해 위원장이 공석이고 후쿠시마현 앞바다에선 규모 7.3 강진이 발생했다. 코로나는 여전히 맹렬하다. 그럼에도 도쿄 올림픽을 한다면, 기꺼이 날아가 기쁘게 취재하겠다. 어쩐지 거기서 희망을 목격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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