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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팡이 코멘트를 거부했다"

[이슈 인사이드 | 금융·증권] 이혜진 서울경제신문 증권부 차장

이혜진 서울경제신문 증권부 차장 | 2021.03.30 23:07:31

이혜진 서울경제신문 증권부 차장

쿠팡은 바쁜 한국인들에게 구세주였다. 워킹맘과 워킹 대디들은 아이 학용품이나 장보기 때문에 근무시간에 전전긍긍하지 않게 됐고, 자취인들도 시간을 쪼개 물건을 사다 날라야 하는 노고를 획기적으로 줄여줬다. 당일 배송이라는 전에 없던 서비스 덕택이다. 김범석 의장이 꿈꿨다는 고객들의 반응, “쿠팡 없이 어떻게 살았지?”라는 감탄이 실제로 나왔다. 

 

쿠팡의 유통 혁명은 기존 업체들에 자극이 됐다. 변화에 굼떴던 유통 공룡들은 ‘얼마나 가나 보자’했던 루키가 시장을 빠르게 잠식해가자 필사적인 몸부림을 치고 있다. 소비자들은 고마울 따름이다. 


쿠팡은 유통업계뿐만 아니라 증권가와 산업계에도 여러모로 신선한 충격을 줬다. 뉴욕 증시에서 아시아 기업으로는 알리바바에 이어 두 번째로 큰 기업공개(IPO)에 성공했다. 상장 초기의 주가 과열이 걷히고는 있지만 롯데쇼핑, 신세계 등 전통 유통 강자들의 기업가치를 여전히 웃돈다. 이를 본 마켓컬리를 비롯한 한국의 유니콘들은 뉴욕행을 서두르고 있다.      


금수저 갑부들만 즐비하던 한국 재계에서 똑똑한 창업가가 10년 만에 재벌 2·3세를 제친 점도 사람들의 입을 벌어지게 했다. 김 의장은 SK, 현대차, LG, 롯데의 후계자들을 누르고 한국 부자 2위에 올랐다. 


쿠팡은 한국 산업계의 외래종 같은 존재다. DNA가 다르다고 해야 할까. 물론 창업자인 김 의장을 비롯한 임원진 대부분이 미국인이고, 주요 주주가 일본인인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 등 외국인이기에 하는 소리는 아니다. 삼성전자, 네이버의 외인 지분율이 50%를 넘지만 외국 회사로 여기지 않는다. 


DNA가 한국 기업과 다르다고 느껴지는 이유는 쿠팡의 성장 스토리가 아마존, 테슬라와 같은 실리콘 밸리의 신화적인 기업들과 똑 닮았다는 점 때문이다. ‘이 구역의 미친 X는 나야’라고 외치듯, 보통 기업들은 도저히 감당하기 힘든 적자, 온갖 비관론을 오로지 혁신으로 돌파해내고 끝내 세상의 인정을 받는 그 매력적인 성장 스토리가 너무나 닮았다.  


그래서인지 김 의장도 유독 성장 스토리를 강조한다. 2021년 꺼내 들기엔 다소 구태의연한 표현까지 써가면서. 그는 상장 직후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은 1960년 세계에서 가장 못사는 나라 중에 하나였지만 세계 10위 경제 대국이 되는 한강의 기적을 이뤘다”며 “쿠팡은 한국의 성장의 한 부분이자 증거”라고 말했다. 


우물안에 있던 우리의 눈을 번쩍 뜨이게 한 쿠팡의 화려한 성장에도 이면은 있다. 바로 노동자들에 대한 처우 문제다. 그리고 관련 보도를 대하는 방식이다. 쿠팡의 노사 문제는 일반 기업보다 중대하다. 쿠팡의 혁신은 로켓배송이고 그 핵심은 ‘쿠팡친구’(쿠팡맨)이기 때문이다. 최근 파이낸셜타임즈는 배달 직원들의 과로사를 다룬 기사를 산업면 톱으로 보도했다. “빅데이터와 AI를 활용해 노동자를 쥐어 짰다”는 노동계 주장을 다룬 이 기사에는 “쿠팡이 코멘트를 거부했다”는 구절이 5번이나 등장한다. 지난 2년간 인터뷰를 거부했다는 내용도 있다. 


국내 언론엔 더 야박하다. 기자협회보에 따르면 쿠팡은 노동인권 보도에 줄소송으로 대응하고 있다. 기자들이 꼽는 가장 악랄한 행태의 대응인 기자 개인에 대한 소송을 제기했다. 취재 단계에서 응하지 않다가 기사가 나간 뒤에 서면으로 반박하고, 정정보도를 수용하지 않으며 소장을 들이미는 방식은 추가 보도를 틀어 막는 전형적인 외국계 수법이다. 다른 DNA가 이런 데서도 발휘되는 것일까. 


21세기 언론은, 한국 사회는 쿠팡이 외국 기업인지 아닌지에는 큰 관심이 없다. 다만 쿠팡이 그토록 강조하는 성장에 어떤 리스크가 있는지를 물을 뿐이다. 쿠팡이 성장 스토리를 아름답게 완성해 가고 싶다면 성숙한 태도로 답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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